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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낙서들/Just Essay

칠면조 온 더 블럭!

by 구운체리 2022. 6. 28.

홍대는 홍익대학교의 준말이다. 그렇다면 홍대입구는 홍익대학교의 입구라는 뜻일 것이다. 오히려 너무나도 당연해서 나는 그것을 한동안 알아차리지 못했다. 의식하지 못했다는 표현이 보다 정확하겠다. 나에게 있어 홍대입구는 2호선 신촌역 옆에 붙어있는 지하철 역 이름이었으니까. 심지어 홍익대학교의 입구는 홍대입구 역에서 그렇게까지 멀지도 않은데. 

홍대입구는 홍익대학교의 입구라는 뜻이다.

어떤 이름들은 때로 그 본질을 넘어서기도 한다. 홍익대학교는 물론 훌륭한 학교일 것이다. 다녀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듣자하니 그런 것 같다. 한국전쟁 이후 처음 세워졌을 적부터 산학일체의 건립이념을 갖고있던 기관이다. 60년대 대학정비령의 칼날비 속에서도 미술학부의 입지만큼은 인정을 받아 살아남았고 지금까지 맥을 이어오고 있다. 앞으로도 그러겠지.

하지만 어느 알 수 없는 이유로 대학의 맥이 싱크홀에 빠지듯 뚝 끊어진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홍대를 기억할 것이다. 홍익대학교 말고 홍대를. 홍대입구 그 시끌벅적한 인파의 온도, 습도와 홍대병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특유의 실험적인 예술인들이 활개할 것만 같은 공기를. 외국인들도 홍대를 알더라. 홍익대학교는 모르는데 홍대는 알아서, 굳이 신촌에 온 김에 홍대를 둘러보고 싶다고 했었다. 터키에서 온 친구들이었다.

2018년 터키에서 찍은 사진첩을 뒤지고 뒤지다 꽂혀서 그냥 아무거나 가져왔다.

터키의 공식적인 이름은 튀르키예로 바뀌었다. 최근에 일어난 일인데, 현재진행형인지 과거형인지 잘 모르겠다. 내 친구 은주는 이름을 윤경이로 바꾸었다. 아, 방향이 반대였나. 아무튼 무슨 심사인가를 거쳐서 주민등록 정보 자체를 바꾸었고, 얼마 전에 최종적인 승인을 받았다고 했다. 이제 우리는 친구의 옛 이름을 잊으려고 노력 중이다. 하지만 친구가 개명신청을 했을 때부터 잠재적인 새로운 이름에 익숙해지려고 노력을 했다. 물론 다시 만나면 첫마디는 ‘근데 너 이름이 뭐지?’겠지만.

아무튼 몇 년 쓰지 않은 사람 이름 바꾸는 것 받아들이는 데에도 이렇듯 혼란이 생기는데, 나라의 이름이 바뀐다니. 게다가 바뀌는 이름이 고르곤졸라나 유칼립투스 같은 완전히 색다른 종류의 이름도 아니고, 원래 이름을 그 나라식으로 발음하는 ‘튀르키예'라니. 우리나라의 대외적인 이름을 'Korea'에서 'Daehanminkook'으로 바꾸겠다는 것과 비슷하다. 글쎄 좀 등X같은데 나만 그런가.

튀르키예즈 온 더 블럭 (since 2022.06.24.)

개그맨 이용진이 운영하는 '터키즈 온 더 블럭'이라는 유튜브 채널 이름이 시청자 투표를 거쳐 '튀르키예즈 온 더 블럭'으로 바뀌었다. 그게 옳다나. Germany는 '독일'이라고 부르면서? 물론 그저 이용진이 입에 붙지 않는 '튀르키예즈'를 읊느라 고통받는 것을 보고싶은 사람들이 80% 이상이겠지만, 내 주변에도 눈에 띄는 모든 터키들을 '튀르키예'로 고쳐주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왤까. (인스타에 터키 어쩌구 하는 스토리/노트를 올려놨더니 친절하게 올바른 새 이름을 알려주는 대여섯개의 DM이 왔다.)

4년 전에는 1유로가 5리라인게 터키에선 밈이었다.

마침 얼마 전에 터키 친구들을 만났다. 그쪽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서 물어봤다. 일단 대다수의 국민들은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조차 모른단다. 5년 전에 1유로에 5~6리라 정도였던 환율이 지금은 19리라로 뛰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기 때문인것도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뭐 어쩌라고 이런 마음가짐이라고. 하긴, 우리나라 영어 명칭이 고려에서 대한민국이 된다고 무슨 상관이겠냐마는. 유튜브 채널 이름이 바뀐 사정을 얘기하자 혀를 찼다.

지금은 18...

터키의 대통령은 에르두안이다. 대충 20년째 해먹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찾아보니 8년이다.) 지금 나이가 80은 된 것 같은데 다음 대선에도 출마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찾아보니 70정도다.) 3선이 불가능한 터키 국내법상 법적으로는 불가능한데, 우리나라에도 이웃나라에도 그런 한계를 뛰어넘어 장기집권한 지도자들이 있었으니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푸틴이나 박정희 대통령은 뚜렷한 업적과 그에 대한 지지층이 존재했다는 것 정도? 어제 기준으로 1유로는 19리라 정도 였는데, 오늘은 또 어떨지 모르겠다.

터키 친구들의 초상권을 위해 약간의 편집을 더했다. 지키는 김에 내 것까지 지켰다.

국호를 튀르키예로 바꾼 것도 에르두안의 작품이라고 했다. 아니 농간이라고 했다. 한국에 놀러온 터키 친구들은 저항하는 지식인 계층에 속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뚜렷한 해석을 갖고 있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대 초임교수쯤 되는 사람과 그의 제자였다. 그들이 보기에 지금 에르두안이 하고 다니는 짓들은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국내외로 온갖 잡음을 만들어 국민들의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한 목적이 다분하다고 했다. 그래도 혹시나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지 않겠는가, 편향된 시각이 반영되었을 가능성은 없겠는가, 물어보니 이렇게 대답했다.

최근에 터키 국회는 '가짜뉴스 금지법'을 통과시켜 정부 인사를 제외한 전문가가 인플레이션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시켰다. 잘못된 정보가 국민들 사이의 혼란과 내분을 초래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함이란다. 국호를 튀르키예로 바꾸려는 이유로 들먹인 한가지는, '터키'가 영어 단어로 칠면조를 뜻하기 때문에 국격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단다. 터키 사람들 대부분은 '터키'가 '칠면조'를 뜻한다는 것을 모른다.

당췌 칠면조는 어디에서 왔을까.

카더라지만 다른 친구는 이렇게 얘기했다. 영국에서 칠면조를 '터키'라고 부르게 된 어원은 'Turkeyhen'에서 왔다고 했다. 터키에서 온 암탉이라는 뜻이다. 닭 같이 생겼는데 우리 땅 녀석은 아니고 좀 멀리 터키에서 온 녀석, 터키핸, 줄여서 터키. 그러니까 나라 이름이 칠면조랑 같은게 아니라 칠면조 이름이 나라의 그것을 본딴 셈이다. 애초에 그게 본 목적이 아니니 중요한게 아닌가.
아, 참고로 그 친구 왈 칠면조를 터키에서는 '힌디'라고 부른단다. 힌디는 인도 어쩌구라는 뜻이다. 그리고 인도에서는 칠면조를 '페루'라고 부른단다.(찾아보니 인도는 아니고 포르투갈어로 페루였다.) 뭐 그게 사실이라면, 이유는 다들 비슷하겠지. 당췌 칠면조는 어디에서 왔을까.

뭐, 터키인들이 튀르키예라는 이름을 싫어하는 건 아니다. 그들은 애초부터 그렇게 불러왔다. 다만 에르두안이 밖에서 그렇게 설치고 다니고, 다른 나라 사람들이 그 영향을 받고 있는 부분에 대해 어쩐지 미안하고 불편한 마음이라고 했다. 그날 우리는 터키의 파탄난 경제 상황과 정치적 난리 속에 교수직에서 제명당한 또 다른 친구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터키'라는 단어를 스무번은 넘게 언급했지만 단 한번도 '튀르키예'라는 이름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튀르키예는 '터키'라는 뜻이다.

칠면조는 어디로 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