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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편 연재/연우씨의 재판 vol 1. 본심 (드라마, 판타지)10

연우씨의 재판 1부 - (10) 完 10. 총통이 죽었다. 자연사였다. 총통의 죽음이 체제의 혼란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총통 개인이 가진 권력의 크기는 상상 그 이상이었지만, 오랜 시간 다듬어진 시스템이 그의 부재를 충분히 대비하고 있었다. 특히 그가 공식적인 외교의 자리에서 한번 졸도한 이후로는 위기관리 특별국이 총통의 승인 하에 신설되어 수많은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지나가던 길고양이를 총통의 자리에 앉혀놔도 당분간은 나라가 기능할 수 있도록 공을 들여 설계해두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세심함은 현 정부의 특임 관료들이 체제가 자신들의 안위를 지켜주는 동안 도망칠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었지, 자신들의 황금기를 억지로 연장하거나 혹은 불가능한 영생의 권익을 추구하기 위함은 아니었기에 정권의 교체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현 정부 내의 인사들이 .. 2022. 7. 9.
연우씨의 재판 1부 - (9) 9. 장내에 방송이 나오자 연우씨는 제 발로 당당하게 햇살을 향해 걸어나갔다. 두번째 교수대를 찾은 그는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해야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것처럼 행동했다. 매일 아침 해오던 운동인것마냥. 그런 그의 의연함이 사실 두려움을 이기기 위한 억지스러운 자기 세뇌로부터 오고있다는 것을 소리는 알았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이 사람들에게 새로운 서사를 불어넣고 있을 것이다. 오늘 아침 기록관이 유출한 어제의 대화 내용들 위에 살을 입혀서. 기록관이 거기까지 계산한 것인지 모르지만, 그녀는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던져 현 총통의 정부를 향해 살을 쏘아올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현 정부에 대항해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고자 하는 시민단체들과 야당의 인물들이 그녀를 확보하고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 할 것이다. 현 .. 2022. 7. 6.
연우씨의 재판 1부 - (8) 8. 소리는 연우씨에게 다시 한 번 교수형 급속집행의 확정을 선고했다. 연우씨의 재심의 검사석에는 원래 예정되었던 오규남이 아닌 배인혁이 특별히 고용한 검사가 앉았다. 배인혁의 사람이 변호인석이 아닌 검사석에 앉아있다는 사실은 지난 4주 간의 특별 조사와 그 과정에서 새롭게 밝혀진 사실들이 아무 쓸모없이 버려질 것임을 의미했다. 배인혁은 무언가 맘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연우씨를 쏘아보고 있었다. 소리가 의례적인 선고문을 다 읽어갈때쯤 배인혁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법정 전체를 쏘아보더니 가장 먼저 일어나 법정을 떠났다. 그의 큰 덩치 때문에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부산스러웠고 사람들 틈을 비집고 지나가면서 신음소리들을 유발했기 때문에 소리는 폐회의 문장을 읽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누가 시키지 않았으면 자원.. 2022. 7. 3.
연우씨의 재판 1부 - (7) 7. 연우씨에게 남은 마지막 삼일 중 이틀 동안 연우씨를 살리는데 도움이 되는 이야기들이 소리의 사무실로 많이 보고되었다. 조사관의 정식 공무를 거친 공문서의 형태도 있었고 연우씨의 이웃이라 주장하는 이가 보낸 편지들도 있었고 익명의 포럼에 투고된 형식의 것도 있었다. 그들은 일관되게 연우씨의 불우한 가정사와 7살 부근의 그가 무척 선량하고 유약한 소년이었으며 동생을 끔찍하게 사랑했다고 주장했다. 연우씨의 부친이 거리에서 객사한 이후로 모친의 정신상태도 이상해졌으며 집안에서는 종종 비명에 가까운 곡소리가 들렸다는 것이다. 그들 중 누구도 직접 얘기하지 않지만 암시하는 바는 분명했다. 모친이 나라에서 금지한 이단 종교인 발장교에서 배포하는 붉은 알약을 주기적으로 복용하며 미쳐버렸다는 것이다. 발장교는 어디.. 2022. 7. 2.
연우씨의 재판 1부 - (6) 6. "정판사님, 일을 아주 거칠게 하시네요." 오 검사가 변죽을 올렸다. "동준이가 아주 열심히 살던 친구였는데, 졸지에 돈 벌어다주던 아들과 오빠를 잃은 가족들은 얼마나 슬플까요." "규남씨, 우리 일을 좀 세련된 방식으로 하자. 자기 이제 목숨도 몇 개 안 남았잖아, 그렇지?" 소리는 미소를 머금은 채 딱하다는 표정으로 규남을 쳐다봤다. "그 따위로 내려다보지 마 이 건방진..." "니가 키가 작은 걸 어떡하라는거니 그럼? 설치지말고 앉아있어. 너 그 친구한테 약점잡힌거 있지않아? 내가 니가 보낸 쥐새끼한테 겁이라도 먹을 줄 알았어? 오 검사님, 검은 약 드신지 좀 됐죠?" "개소리 그만둬!" 규남이 부들거리며 벌떡 일어났지만 법복을 두른 채 일어난 소리보다 키에서도 덩치에서도 한참 모자랐다. 소리.. 2022. 6. 29.
연우씨의 재판 1부 - (5) 5. 3주차부터는 정소리 판사와 연우씨의 독대가 가능했다. 정소리 판사가 연우씨에게 사형 확정을 선고한 당일 진행된 면담 이후로는 처음으로 갖는 독대의 자리였다. 범죄자가 로비를 시도하거나 판사가 개인적인 연민을 갖게 됨으로 정당하지 못한 판결을 내릴 것을 대비해 둘은 제도적으로 만날 수 없게 되어있었는데, 특심의 과정에 있어서는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사람을 수뇌부의 판단으로 되살린 것이므로 많은 제약들이 사라져 연우씨는 비교적 자유로운 처지가 될 수 있었다. 보다 넓은 자유를 주었을때 어떤 행동을 하는지 관찰하려는 의도 또한 내포되어 있었다. “도저히 기억이 안 나요 연우씨?” 소리는 연우를 정중하게 대했다. 그가 원하는 바를 들어주기보다는 잘 설득해서 다시 교수대-급속집행을 받을 수 있도록 전략.. 2022. 6.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