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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편 연재/연우씨의 재판 vol 1. 본심 (드라마, 판타지)10

연우씨의 재판 1부 - (4) 4. 특심에는 4주의 기간이 주어졌다. 이번 특심은 특히 예외적이었다. 집행이 확정된 형을 중지시킬 수 있는 권한은 관료체계의 수뇌부 중에서도 특임으로 구성된 최고위 관료에게만 있었다. 즉 현 총통 또는 그가 직접 임명한 각 공무 부처의 수석 및 차석 관료 중의 한 명이 형을 중지시켰다는 것이다. 게다가 집행 직전에 멈추는 일은 전무했으므로, 아마 그 자리에 참석해 관람을 하던 누군가 연우씨를 알아보고 그 자리에서 집행 중지를 요구했을 가능성이 높다. 소리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특심 동안에는 소리가 진행했던 재판에 대한 정보를 비롯해 연우씨가 출생한 순간부터 현 시점까지의 모든 유의미한 순간들이 검토되었다. 3년의 집행확정 조사기간보다도 훨씬 많은 인력들이 투입되어 심층적인 조사가 이루어진다는 뜻이었다... 2022. 6. 25.
연우씨의 재판 1부 - (3) 3. 소리의 방으로 세 알의 검은 약이 배달되었다. 보안국 소속의 하급 관료가 은색 트레이 위에 디저트처럼 접시에 담아 서류와 함께 방까지 가져왔다. 앙증맞은 리본이 달린 반구형 덮개가 씌여진 모양이 온갖 장식에 환장하는 현 수뇌부의 악취미를 보여주고 있었다. 저들은 교수대에 사용하는 밧줄에도 나비넥타이를 달고 싶어했으나 시민단체와 야당의 반발로 무산된 바가 있다. “뭔데 세 알이나 가져왔어? 나보고 일만하다 뒈지라는거야?” “요즘 일이 바쁘시…” 소리는 나이어린 보안국 관료에게 쏘아붙이면서 그 중 두 알을 집어 물과 함께 삼켰다. 관료는 무어라 항변하려는 듯 입술을 꿈틀댔지만 소리가 손가락을 들어 입 다물고 있으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법관들은 대개 속이 시꺼멓고 성깔이 드러우며 잘못 걸리면 없는 죄도 .. 2022. 6. 22.
연우씨의 재판 1부 - (2) 2. 연우씨에게는 여동생이 한 명 있다. 아니 있었다. 연우씨는 그녀를 연희라고 불렀지만 본인은 더이상 그 이름을 사용하지도 않았고 기억하지도 못했다. 새로 받은 이름인 정희로 십칠년을 살아왔기 때문이기도 하고 꾸준히 복용해 온 하얀 알약 때문에 어릴 적의 일들에 대한 기억이 대부분 지워졌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가 또렷하게 기억하는 다섯살 때의 사건 하나가 있었다. 그녀의 오빠가 홀로 오누이를 키워준 어머니를 느리고 잔혹하게 살해했던 것. 무딘 가위로 두눈을 포함해 일곱 군데에 자상을 냈으며 비명을 지르며 살려달라 애원하는 어미를 뒤로하고 미친 짐승처럼 온 집안을 헤집어놓다 부엌칼을 들고 돌아와 다시 스무번의 칼질을 통해 끝을 내버린 사건. 오빠가 일부터 이십까지 세는 것을 똑똑히 듣고있던 탓에 정희는 .. 2022. 6. 19.
연우씨의 재판 1부 - (1) 1. “연우씨, 제 얼굴 봐요. 이거 이렇게 덮어놓으면 눈앞이 보이나, 연우씨, 들려요?” 주황색 두건을 뒤집어 쓴 젊은 청년의 숨소리가 무겁다. 두꺼운 천으로 가려져 제대로 전달되지는 않았지만 미세하게 부들거리는 몸의 진동이 연우라고 불린 청년이 느끼고 있는 긴장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그 모습은 온 세상에 방송되고 있었다. 보조 집행관의 역할을 맡은 정소리 판사는 연우씨가 자신의 몫을 충실하게 이행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고 있었다. 연우씨에게 위안이 되는 사실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똑같이 주황색 옷을 입은 동료들이 이미 앞에 네명이 갔고, 뒤에는 다섯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른쪽에는 보조집행관이, 왼쪽에는 근육과 곤봉으로 무장한 안전담당관 곤이 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2022. 6.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