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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연재/연극이 끝난 후, Play for me (드라마, 관계)13

연극이 끝난 후, Play for me - (8) 8. 축제는 모두에게 쉽게 가시지 않는 여운을 남겼다. 고생의 양만큼 서로 돈독해진 것도 있었고, 정욱이 축제 외적으로도 많은 신경을 써둔 것이다. 처음 시도되는 연극제이니만큼 서투르거나 아쉬운 부분들이 많을 법도 한데, 그때마다 그것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아 이거 제대로 된 카메라로 찍어뒀으면 두고두고 볼텐데’라고 누가 말하니 방송국에서 쓸 법한 커다란 영상장비가 준비된 것이 보였고, ‘연극보다 메이킹필름이 더 재밌을 것 같지 않아’라고 누군가 말하니 현장을 맴돌며 꾸준히 카메라를 들이대던 성중이나 영규같은 친구들이 카메라를 흔들었다. ‘포스터랑 예고편도 만들어서 아주 영화제 같은데 뿌려볼까’라고 말하니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깔끔한 포스터와, 연습 장면들을 적절히 짜집기한 예고 영상이 상영되.. 2022. 5. 4.
연극이 끝난 후, Play for me - (7) 7. 정욱이 어떤 마법을 부린건지는 모르겠지만, 정말로 모든 일이 술술 해결되었다. 장군은 예전보다 더 정욱을 싫어하고 있었고 민구와 그의 친구들은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을 채 숨기지 못했지만, 규민은 주인공이 되었다. 담임인 창수는 억지스러울 정도로 규민에게 과한 친절을 베풀었고, 장군은 공개적으로 규민이 주인공을 맡는 것을 지지했다. 장군과 패거리가 규민에게 호의를 보였다는 것은 아니다. 예전처럼 괴롭히거나 폭력을 휘두르지는 않아도 너를 인간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기색을 드러내곤 했다. 하지만 장군은 규민을 지지했다. 어느 날 민구와 규민을 한 자리에 불러 타협안을 제안한 것이다. 그리고 둘을 정욱에게 데려가 타협안을 통보했다. “가장 하이라이트 장면에는 노래가 들어가고, 이 둘이 듀엣으로 부른다. .. 2022. 5. 2.
연극이 끝난 후 (Play for me) - (L) L. MK는 데뷔 3년차에 제법 팬층이 두터운 싱어송라이터로 자리를 잡았다. 잘생긴 외모에 부드러운 유머감각을 지녔지만 검소한 생활태도와 수더분한 성격 덕분에 불쾌한 가십에 휘말리는 일이 없었다. 일을 가려서 받았고 누구나 꿈꿔볼법한 대형 기획사의 제안과 예능 출연 등을 숱하게 거절해 온 덕에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대신으로 얻은 그의 두터운 팬덤은 그가 느닷없이 신도림역에서 스트립쇼를 한다고 해도 기꺼이 곁에 남아 응원해 줄 높은 충성도를 지녔다. MK가 고정욱 의원이 속한 정당에서 내민 조그만 제안을 거절했고, 그로 인해 미운털이 박혀 방송 출연이 뜸해졌다는 소문이 들렸지만 어차피 소극장 콘서트와 음반 작업으로 생계를 유지해왔기 때문에 MK 본인도 팬들도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그런 .. 2022. 4. 30.
연극이 끝난 후, Play for me - (6) 6. 규민이 동흥제의 주인공 후보로 거론된 이후로 동흥제에 올릴 연극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오고갔다. 당사자인 규민의 의견을 직접 묻지는 않았지만 이띠금씩 정욱의 친구들이 다가와 생뚱맞은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노트에 필기하듯 받아적어 갈때면 무언가 진행되고 있다는 예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욱이 규민을 따로 불러냈다. “규민아, 우리 뭐 하고 있는지 알지?” 규민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 수 밖에 없었다. “너를 위한 연극을 만들고 있어. 동흥제 메인에 올릴거야. 어때, 함께해줄거지?” ‘나를 위한 연극.’ 규민은 정욱의 그 문구에 흠뻑 젖어있었다. 동흥동에서 18년을 지냈고 앞으로 18년 어쩌면 81년을 더 살지도 모르는 와중의 단 한번뿐일지 모르는, 주인공으로 참여하는 동흥제에서 역.. 2022. 2. 11.
연극이 끝난 후, Play for me - (5) 5. 정욱의 신변에 관해 한바탕 소란이 있었다. 창수가 정욱을 붙들고 한시간 넘게 호통을 쳤다는 소문도 들렸고, 반대로 창수가 학생주임이나 교장선생으로부터 그만큼의 꾸지람을 들었다는 소문도 들렸다. 잠시동안 정욱은 의기소침해보였고 그만큼 창수의 기세가 살아난 것 같다는 뒷말들이 돌았지만, 표면적으로 바뀐 것은 없었다. 정욱이 장군네 패거리와 어울려 학교 뒷공터에서 몰래 담배를 피워왔으며 그로 인한 징계를 받았다는 소문이 들렸을 때 규민은 크게 당황함과 동시에 당혹스러웠다. 분명 피우기 전에 말렸는데, 장군네 양아치들의 모략질에 넘어간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생각했지만 따지고보면 조용히 넘어갈 수 있었던 일에 경거망동하다 사건을 키워버린 것이 규민 자신이니 진상을 밝혀낼 수도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학생.. 2022. 2. 9.
연극이 끝난 후, Play for me - (M) M. “후보님, 잠시 세차를 맡겨뒀는데 방금 끝났다고 하네요. 민준이 보내서 찾아오게 시켰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시죠.” “그래요. 바퀴에 뭐가 좀 묻었다고 하셨던가요?” “신경쓰실 것 없는 사소한 일이에요. 그래도 깔끔하게 보여지는 것이 중요하니까 일정 보시는 사이에 얼른 맡겨둔건데, 이렇게 일찍 나오실 줄은 몰랐네요.” “도저히 견딜수가 없어서요. 늙은 위선자들 입에서 악취나는 거짓말들이 멈추지를 않는데, 조금만 더 어울리다가는 저한테도 냄새가 옮을 것 같아서 양해 구하고 먼저 자리를 떴습니다. 바쁘다고 했는데, 이러고 서있는 모습을 보면 조금 곤란하겠어요.” “만약 의원님들 중에 누가 나오는 것 같으면 제 뺨을 후려치고 욕을 하세요. 제 독단으로 후보님을 속여서 불러낸 것으로 합시다.” “아니 그래도.. 2022. 2.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