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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연재/연극이 끝난 후, Play for me (드라마, 관계)

연극이 끝난 후, Play for me - (8)

by 구운체리 2022. 5. 4.

8.
 축제는 모두에게 쉽게 가시지 않는 여운을 남겼다. 고생의 양만큼 서로 돈독해진 것도 있었고, 정욱이 축제 외적으로도 많은 신경을 써둔 것이다. 처음 시도되는 연극제이니만큼 서투르거나 아쉬운 부분들이 많을 법도 한데, 그때마다 그것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아 이거 제대로 된 카메라로 찍어뒀으면 두고두고 볼텐데’라고 누가 말하니 방송국에서 쓸 법한 커다란 영상장비가 준비된 것이 보였고, ‘연극보다 메이킹필름이 더 재밌을 것 같지 않아’라고 누군가 말하니 현장을 맴돌며 꾸준히 카메라를 들이대던 성중이나 영규같은 친구들이 카메라를 흔들었다. ‘포스터랑 예고편도 만들어서 아주 영화제 같은데 뿌려볼까’라고 말하니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깔끔한 포스터와, 연습 장면들을 적절히 짜집기한 예고 영상이 상영되는 식이었다.
 축제의 열기 자체에 취해있던 친구들은 사실 연극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 알지 못했다. 다만 걱정했던 조악한 소품들이 티가 나지 않았고, 상덕의 엄선된 애드리브는 전부 관객들을 빵빵 터뜨렸고, 규민은 긴장한 탓에 조금 말이 빨라졌지만 대신 한마디도 더듬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마지막 음악의 후렴부에서 규민의 목소리는 새처럼 날았다. 살면서 뱉어본 가장 시원하고 긴 호흡을 뱉으며 규민은 자신의 영혼이 하늘을 날고 있다고 생각했다. 준비해둔 무대장치 덕분에 실제로 무대 위에서 조명을 받으며 둥둥 떠있기는 했지만, 규민은 불안함도 두려움도 그 무엇도 그 순간에는 느끼지 못했다.
 모두가 규민을 주목하며 숨을 죽였고, 규민은 멀찌감치 떠오른 달을 바라보며 호흡을 거두었다. 막이 내리고,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져나오며 민구가 그의 머리를 쓰다듬고 등을 두들겨 줄 때도 얼떨떨한 기분은 가시지 않고있었다. 민구 뿐 아니라 끝까지 규민의 노래실력을 걱정하던 윤지나 현아같은 친구들도 규민에게 하이파이브를 건네며 머리를 쓰다듬고 칭찬을 쏟아부었다.
 멀게만 느껴지던 여자 친구들이 그를 마구 쓰다듬으며 호의어린 시선과 말들을 건네는 와중에도 규민은 현실 감각을 한동안 찾지 못한 채 황홀감에 취해있었다. 정욱이 다가와 악수를 건넬 때에서야 규민은 감격의 눈물을 흘릴 수 있었고 정욱은 그를 일으켜세워 토닥여주며 다독였다.
 “인사하러 갈 시간이야 규민. 커튼 콜이라고, 널 위한.”
 “날 위한… 그래, 날 위한 연극.”
 규민은 명실상부한 동흥제의 주인공이었다.

 집에 오는 길에 규민의 아버지는 잘했다는 칭찬을 건넸다. 처음 장면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잘못된 행동들을 할 때에 마음이 불편해 제대로 보지 못하셨다는 당신은 한참을 밖에서 서성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규민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돌아와 연극의 내용은 거의 알지 못하신다고 했지만. 사실상 규민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는 부분을 전부 놓쳤지만, 그래도 그 마지막 장면과 목소리에서 진심이 전달되었다고, 아주 훌륭했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내내 울고만 계셨다.

 남은 학교 생활동안 유일하게 아쉬웠던 점은, 그 기간이 무척 짧다는 것 뿐이었다. 규민은 항상 친구들 사이에 둘러쌓여 있었고 그들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우러나오는 진심으로 규민을 좋아하거나 심지어 동경했으며 그런 긍정적인 흐름 속에서 규민은 실제로 괜찮은 사람이 되어갔다.
 규민은 일년 재수를 하고 겹치는 친구들이 거의 없는 대학에 들어갔고 완전히 새로운 집단에서 인간관계를 새로 구축해나갔지만, 잠깐의 두려움에 기죽지 않고 능숙하고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게 되었다. 정욱의 연극은 실제로 규민을 부쩍 성장시켜 놓았다. 그래서 장군이 정욱에 대해서 한 말이 전부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규민은 정욱을 지지했고, 사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