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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연재/우주, 효영 - Bloody Oscar (관계, 범죄)9

우주, 효영 - Bloody Oscar (끝) X. 잘못된 시간축들을 건너 다시 만난 소은과 종윤, 두 손을 X자 모양으로 엇갈려 마주잡는다. 소은은 오른손으로, 종윤은 왼손으로, 서로의 다른 손을 계속 쓰다듬는다. 서로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입을 맞추려는 찰나 소은이 볼을 찡그린다. 종윤도 곧 따라서 찡그린다. "눈이다." "우리의 겨울이 돌아왔네." "눈사람!" 둘은 두 손으로 눈을 받아모아 뭉치려는 듯 꿈틀대다 축축해진 손을 서로의 옷깃에 닦으며 눈을 마주치고 웃는다. "우리 둘이 행복하자. 세상 따위는 어떻게 되던지 상관없어" 소은의 말에 종윤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소은이 몸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를 꺼내 건네고 종윤이 눈을 감은 채 버튼을 누른다. 꼬여진 채 잘못 흘러가던 시간 속에 둘의 이기적인 악의가 개입해 모든 것을 파괴하기 시작한다.. 2023. 9. 28.
우주, 효영 - Bloody Oscar (7) 7. "진짜 얼굴 한번 직접 보고 싶어서 그래." 매니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우주는 '제프'와의 인터뷰 일정을 잡았다. 단, 직접 대면하는 조건이었다. 그리고 우주가 동의하기 전까지는 둘의 만남에 대한 일체 언급을 하지 않는 것도 추가 조건으로 걸었다. 주요 언론이 개입되어 대중 여론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을 원천차단하기 위함이었다. 제프는 그 조건을 흔쾌히 승낙했다. 적을 많이 두고 살기에 안전 상의 이유로 외부와의 직접 접촉을 꺼리는 그로서도 직접 만남을 갖는 일은 아주 드물었다. 그런 경우에는 제프 본인도 만남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 것을 선호했다. 게다가 천우주 급의 슈퍼스타가 먼저 만남을 제안하는 일은 처음인지라 신이 나서 몇가지 일방적인 조건들이 더 있었음에도 재지 않고 수락한 것도 .. 2023. 9. 28.
우주, 효영 - Bloody Oscar (6) 6. "너는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잖아!" 종윤이 소은을 향해 악을 쓰고있다. 소은의 표정에서는 아무것도 읽을 수 없지만 눈에서는 눈물이 조용히 흐르고있다. 둘이 서있는 메마른 섬을 둘러싼 얼음조각들이 녹아내리고 있다. "나를 이용했어! 너는 나를 이용했어! 너네 집안은, 애초부터 나를!" "네가 나를 이용하려고 접근한 걸 알고 있었어." 두사람의 발밑으로 자박하게 물이 고이고 있다. 소은의 눈에서는 계속 눈물이 흐르고 있다. "투정부리지마. 종윤아, 우리 시작했던 곳으로 돌아가자. 전부 잊자." "너 그게 무슨 뜻인줄..." "죽자. 그래야 계절이 다시 흘러. 저 세상 속 소은이랑 종윤이가 행복할 수 있게, 우리는 우리의 집으로 가자. 바로잡는거야." 소은의 눈물이 그치고, 녹아내리던 얼음조각들이 다시.. 2023. 9. 26.
우주, 효영 - Bloody Oscar (5) 5. 우주가 등장해 인사를 하고 준비된 대본의 들임말을 어색하게 읽었다. 뒤이어 우주가 한명 더 등장하더니 자신의 친언니를 세상에 소개했다. 잠시 어색한 정적이 흐르고 우주의 언니가 우주에게 팔짱을 끼며 억지웃음을 짓자 우주가 '하던대로 하자'며 핀잔을 준다. 민망한 표정을 짓는 언니를 앉혀두고 벌떡 일어나더니 영화의 명대사가 포함된 몇 장면을 연기해보였다. 펑펑 울다가, 미친 사람처럼 꿇어앉은 채 울부짖다가, 사랑을 속삭였다. 그러더니 자리로 돌아가 언니의 손을 꼭 쥐며 말했다. '이거란다' 남은 영상 내내 우주는 준비한 말들을 뱉었고, 효진은 소품처럼 앉아서 무언가 감정표현을 하려했지만 그때마다 우주가 영화 내의 각종 장면들을 인용하는 연기를 시연하며 틀어막았다. 영화를 보지 않은 효진은 그저 어리둥.. 2023. 9. 24.
우주, 효영 - Bloody Oscar (4) 4. 깊게 잠든 마을, 달빛만이 낮은 건물들 사이를 비춰주고 있다. 다 찢어져가는 천조가리 하나만을 걸친 여자가 전속력으로 질주한다. 카메라는 높은 곳에서 그녀의 뒤를 쫓는다. 끝내 실오라기 하나 남지 않은 나체가 되었지만 여자는 오히려 더욱 시야가 트인 곳을 향해 뛰어간다. 광장에 다다라 한쪽 무릎을 찧은채 무너지며 짐승처럼 포효하는 그녀의 정면을, 앞질러간 카메라가 클로즈업해서 잡는다. 오른쪽 젖가슴에 맞아있던 초점이 점점 멀어지며 시점이 어느 건물의 창틀 뒤로 넘어간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지만 아직 연기가 나는 담배꽁초가 창틀에 걸쳐져있다. “언니, 이제 남자친구 얘기는 그만 좀 해.” “너무 나만 떠들었다 그치? 네 생각은 어때? 진홍이랑 좀 친했지 않았어?” “내가 친한 사람 중에 언니가 아는 .. 2023. 9. 21.
우주, 효영 - Bloody Oscar (3) 3. 유명인들의 신상을 파헤쳐 본인조차 몰랐던 사실들을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유튜브 채널 '알권리협회'에서 지난 달에는 배우 '천우주'에 대한 영상을 다루었다. 황주덕 감독의 문제작 '오계절의 유언’을 데뷔작으로 시작부터 대형사고를 치며 국내외 영화제의 상을 휩쓰는데 일등공신이었던 배우 '천우주'는 진솔하고 수더분한 자세로 팬들과 소통하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정작 그녀의 과거 개인사는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있어 북한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냐는 놀림마저 받곤했었다. 그러나 ‘알권리'의 그녀에 대한 주장은 꽤 문제적이었다. 천우주의 소속사 측은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대중들의 목소리에 무응답으로 일관하다 지난 주 천배우 본인이 유튜브에서 라이브 방송을 켜고 처음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시청자들이.. 2023. 9.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