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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연재/우주, 효영 - Bloody Oscar (관계, 범죄)

우주, 효영 - Bloody Oscar (끝)

by 구운체리 2023. 9. 28.

X.
 잘못된 시간축들을 건너 다시 만난 소은과 종윤, 두 손을 X자 모양으로 엇갈려 마주잡는다. 소은은 오른손으로, 종윤은 왼손으로, 서로의 다른 손을 계속 쓰다듬는다. 서로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입을 맞추려는 찰나 소은이 볼을 찡그린다. 종윤도 곧 따라서 찡그린다.
"눈이다."
"우리의 겨울이 돌아왔네."
"눈사람!"
 둘은 두 손으로 눈을 받아모아 뭉치려는 듯 꿈틀대다 축축해진 손을 서로의 옷깃에 닦으며 눈을 마주치고 웃는다.
"우리 둘이 행복하자. 세상 따위는 어떻게 되던지 상관없어"
 소은의 말에 종윤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소은이 몸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를 꺼내 건네고 종윤이 눈을 감은 채 버튼을 누른다. 꼬여진 채 잘못 흘러가던 시간 속에 둘의 이기적인 악의가 개입해 모든 것을 파괴하기 시작한다. 울부짖던 소은을 집요하게 쫓아다니며 파괴하던 시선의 정체가 소은 그 자신임이 드러난다. 종윤이 창살 너머로 바라보던 별빛의 정체가 종윤 본인의 눈빛임이 드러난다. 다섯 개의 잘못된 계절이 모두 녹아내리면 그 중앙에 각자 눈덩이를 굴려온 소은과 종윤이 만난다. 둘이 함께 만든 눈사람이 누운 모양으로 완성된다.
 무한대의 기호 모양으로 실루엣이 남으며 선명하지만 너무 멀어 들리지 않는 대사들과 함께 다시 한번 엔딩크레딧이 올라간다.

"뭐야 이거 진짜야? 왜 여기에 있어? 집안 꼴은 또 왜 이래?"
진홍이 금색 트로피를 집어들며 효진에게 물었다. 효진은 신경질적으로 그것을 낚아챘다.
"내놔!"
"진정해... 술을 또 얼마나 먹은거야."
"맞잖아... 처음부터 내꺼는 아무것도 없었어. 너도. 내 인생도. 다 권효영 그년한테 빼앗겼다고!"
효진은 갑자기 쭈그려앉더니 트로피로 바닥을 쿵쿵 내리찍으며 소리를 꽥 지르더니 다시 과장된 웃음을 터뜨렸다. 우주의 연기를 흉내내는 듯 했다.
"뭐야 미쳤어? 니네 가족이 잘못한거잖아. 그러던지 말던지 난 니 옆에 있을거고, 언제나."
효진은 벌떡 일어나더니 자신의 웃옷을 잡아 뜯어내듯이 벗어던졌다. 단추들이 후두둑 떨어졌다. 오른손으로 왼쪽 젖가슴을 드러내더니 매끈한 살갖에 손톱을 꾹꾹 눌러 별모양 자국을 남겼다.
"자, 이제 누가 천우주지? 너도 이걸 원했던거 아냐? 이게 아니면 뭘 보고 내가 그년이 아니라는걸 알았는데!"
진홍은 가만히 다가가 옷을 도로 걸쳐주고 트로피를 주웠다.
"억지부리지 마. 영화 본 사람들은 다들 알아. 너는 절대 지을 수 없는 표정들이 있어. 그리고 있잖아, 효영이 가슴에 상처난 부위는 거기가 아니야."
퍽하는 소리가 났다. 둔탁한 파열음은 몇번 더 반복되었다.
"그것봐. 이래도 좋아?"
"아무것도 내 것이 아니라면, 전부 다 내 것인 거랑도 같은거잖아. 이건 효영이 그년이 한 짓이야."
뇌수로 바닥이 흥건했다. 효진은 자신의 가슴을 만지작거리며 처음보다 조금 더 높은 위치에 별모양의 흉터를 다시 새기고 있었다.
"아, 효영이 아니다. 우주라 그랬지. 우주가 그랬어... 우주가. 범인은 천우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