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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연재/우주, 효영 - Bloody Oscar (관계, 범죄)

우주, 효영 - Bloody Oscar (6)

by 구운체리 2023. 9. 26.

6.
"너는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잖아!"
종윤이 소은을 향해 악을 쓰고있다. 소은의 표정에서는 아무것도 읽을 수 없지만 눈에서는 눈물이 조용히 흐르고있다. 둘이 서있는 메마른 섬을 둘러싼 얼음조각들이 녹아내리고 있다.
"나를 이용했어! 너는 나를 이용했어! 너네 집안은, 애초부터 나를!"
"네가 나를 이용하려고 접근한 걸 알고 있었어."
두사람의 발밑으로 자박하게 물이 고이고 있다. 소은의 눈에서는 계속 눈물이 흐르고 있다.
"투정부리지마. 종윤아, 우리 시작했던 곳으로 돌아가자. 전부 잊자."
"너 그게 무슨 뜻인줄..."
"죽자. 그래야 계절이 다시 흘러. 저 세상 속 소은이랑 종윤이가 행복할 수 있게, 우리는 우리의 집으로 가자. 바로잡는거야."
소은의 눈물이 그치고, 녹아내리던 얼음조각들이 다시 얼어붙기 시작한다.

(변조된 목소리)
'공공연히 잘못을 인정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인정한다고 달라지는 것이라곤 없을 것 같아보이는 때는 더더욱 그렇죠. 나를 미워하는 사람은 여전히 나를 미워할겁니다. 오히려 더욱 떳떳하게 말이죠. 반쯤 걸친, 소위 말해 중립기어를 박아둔 사람들은 이제 기어를 어디에 둬야할지 확실히 알게되겠죠. 이미 사건은 벌어졌고 돌이킬 방법이 없다면,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도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정도의 효과만 있으려나요?
그렇지만 바로잡을 수 있는게 있다면 잡아야겠죠. 당장의 사건에서 나한테서 등을 돌렸던 사람들도, 결국 그 진실성. 제가 여러분께 자주 강조드리던 단어죠, integrity. 언젠가 더 크게 불어나서 돌아올거라는 말이죠. 제가 하는 일이 올바른 일이라면 말이에요. 저는 제가 하는 일이 옳다고 믿습니다. 세상의 얕은 가림막을 들춰내고 진실을 여러분들 앞에 전시하는 일이 꼭 필요하다고 믿기에, 항상 욕을 먹으면서 실수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서도 이 일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저는, 몇번이고 필요하다면 천우주 배우에 관련해서 제가 진행한 일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번져나갔던 건들에 대해 사과하겠습니다. 자, 그렇다고 제가 제 일을 멈춰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 대상이 다시 한 번 천우주 배우가 되고 또 거듭 실수를 보탤 위험이 있다고 하더라도요. 저는 위험없이 일하는 방법을 모릅니다.
경솔하다고 하실 지 모르겠지만, 변명하나 보태보겠습니다. 저의 지난 천우주 영상으로 가장 피해를 본 사람이 누굴까요. 천우주 배우 본인? 아니죠, 사실 이 분입니다. 천배우는 본인의 선택으로 공인이 되셨죠. 이분은 자다 일어나보니 봉창 두드리듯이 준공인 올가미에 후드려맞은 분이십니다. 바로 천배우와 도플갱어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똑 닮은 친언니 권효진씨 되시겠는데요. 오늘 영상은 권효진씨가 직접 요청하셔서 진행한 인터뷰를 기반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천배우님, 몇번이고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천배우님도 사과하실 일이 있겠는데요? 자, 함께보시죠.'

"저 개새끼 사는 곳 알아요 오빠? 아니다, 만나서 인터뷰 한번만 잡죠."
"우주야, 좋은 날인데 일단 그거 내려놓고 얘기할까."
황주덕 감독과 천우주 배우를 비롯한 '오계절' 팀은 아카데미 시상식의 다수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으며 각본상과 감독상 두 개의 트로피를 건졌다. 천배우가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지 못한 것에 대해 국내는 물론 미국 현지에서도 의아해하는 반응이 많았다는 후문이지만, ‘오계절’ 팀은 개의치않고 축제 분위기라고 했다. 황주덕 감독은 본인이 수상한 트로피 중 감독상 하나를 천우주 배우에게 '맡겨두었다'.
 천배우는 트로피를 들고 당당히 입국장을 지나며 기자들과 인터뷰를 거치고 기다려준 팬들과 간소한 사인회를 마쳤다. 그리고는 지친 몸을 이끌고 사무실로 향하는 카니발 안에서 매니저와 막 실시간 조회수가 급상승 중인 그녀에 대한 유튜브 영상들을 확인하던 참이었다. 그녀는 오스카 트로피를 꼭 쥔 채 부들부들 떨고있었다.
"그거 금속이야. 무겁지 않니?"
매니저가 그녀를 살살 달래려는데 우주가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다.
“나, 이 영상 밤에 다시볼게. 기쁨의 여운을 방해받고 싶지 않아. 대표님이 꽃사들고 기다린다면서, 그 세상 짠돌이가 자기 돈 써가면서 준비한 축하파티인데, 흥청망청 놀거야. 스포하지 말아요, 내가 직접 볼거니까."
"그래 다들 회사에서 기다린다. 그 트로피는 내가 잠깐 맡아둘게."
우주는 매니저에게 트로피를 건넸다. 그날 밤 만취한 매니저는 우주에게 트로피를 돌려주었다. 어디 가방에라도 넣어서 가져가라는 것을 우주는 두손 꼭 쥐고 가고 싶다고 우겼다. 그러던지. 택시를 타고 사라진 우주를 확인한 뒤 매니저도 퇴근했다.
다음 날은 모두들 푹 쉴 예정이었다.

'이 영상을 본다면 언제든지, 집으로 돌아오세요. 가족들은 당신의 사과를 받아줄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미.안.하.다. 이 네글자면 충분한 것 같습니다. 이거 어디 영화대사 아니었나요? 하하, 저도 이참에 한국 영화들 좀 챙겨보려고요.
나이먹고 사소한 일로 인연끊고 사는 가족들 얼마나 많습니까. 복잡한 세상 인생은 짧고 진짜 내 편은 몇 없습니다. 천배우님, 아니 권효영씨. 누구나 성장통은 겪는 법이에요. 사과하시고, 가족들 품으로 돌아가십쇼. 자랑스러운 딸이 되세요. 이제는 정말 떳떳하게 인정받을 수 있지 않겠어요?'
효진은 '알권리' 영상을 모친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모친은 코웃음을 쳤다.
"오만사람들 다 보는데서 두시간 궁둥이까서 흔들고 받아온 상이 무슨 대수라고. 코쟁이놈들도 유난이네. 어느 나라고 탈렌트들은 참 세상 쉽게살어."
"무식한 소리 좀 하지말아 엄마. 문장에 맞는 부분이 한군데도 없잖아. 엄마가 본 궁뎅이는 효영이꺼가 아니야, 상도 효영이가 아니라 감독님이 받은거 효영이 그년한테 넘겨준거고. 유난은 미국애들이 아니라 국뽕에 미친 조선땅 촌놈들이 떨고 있어. 탈렌트로 사는게 그렇게 쉬우면 효영이 못하게 하지말고 나도 같이 시켜줬어야지."
"부러우면 너도 해라 이년아 내가 언제 못하게 했니? 지가 굼떠서 어설프게 깔짝대다가 한소리 좀 들었다고 심통나서는 애미한테 할말 못 가리고 저 혼자 지랄병 떨더니 아주 나가버린거지."
"애가 연극동아리 한다니까 엄마아빠가 밥상머리에서 하루에 한번씩 빈정거렸잖아."
"그럼 고등학생이 그 한심한 꼬락서니를 하는데 그냥 두고만 봐? 나 늬들 엄마야, 알아?”
"그게 못하게 한거지 못된 아줌마야, 걔 대학 가고나서도 계속 그랬으면서. 아참, 효영이 집나가기 전에 엄마가 걔한테 뭐라고 했었지?"
"내가 하긴 뭐라고 해, 그년이 애미애비 몰라보고 고래고래 쌍욕하면서 행패부리다 지발로 뛰쳐나갔지!"
"아닌데... 엄마가 뭐라고 한 것 같기는 한데... 너무 시끄러워서 귀막고 티비보느라 제대로 안 들었어서 기억이 안 나네."
"니가 잘못했어 이년아, 동생년이 패륜을 저지르는데 테레비가 눈에 들어오디?"
"아 그래서 인터뷰했잖아 집에 오라고. 엄마도 마음 곱게먹고 착하게 좀 살어 살아봐야 몇년이나 더 살겠어, 췌장암 환자가."
"약이나 끊어라 노망들린 년. 홧김에 네가 나보다 먼저간다."
"양심도 없어, 누구한테 물려받은 병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