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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연재/우주, 효영 - Bloody Oscar (관계, 범죄)

우주, 효영 - Bloody Oscar (7)

by 구운체리 2023. 9. 28.

7.
"진짜 얼굴 한번 직접 보고 싶어서 그래."
매니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우주는 '제프'와의 인터뷰 일정을 잡았다. 단, 직접 대면하는 조건이었다. 그리고 우주가 동의하기 전까지는 둘의 만남에 대한 일체 언급을 하지 않는 것도 추가 조건으로 걸었다. 주요 언론이 개입되어 대중 여론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을 원천차단하기 위함이었다.
제프는 그 조건을 흔쾌히 승낙했다. 적을 많이 두고 살기에 안전 상의 이유로 외부와의 직접 접촉을 꺼리는 그로서도 직접 만남을 갖는 일은 아주 드물었다. 그런 경우에는 제프 본인도 만남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 것을 선호했다. 게다가 천우주 급의 슈퍼스타가 먼저 만남을 제안하는 일은 처음인지라 신이 나서 몇가지 일방적인 조건들이 더 있었음에도 재지 않고 수락한 것도 있었다.

'오계절'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건져온 두 개의 트로피는 전부 황감독의 이름으로 주어졌지만, 그 성과를 조명하는 기사들의 대문사진에는 거의 항상 트로피를 든 채 활짝 웃는 우주가 있었다. 감독과 나란히 있거나 홀로 서있기도 했다. 실제 대중의 관심도 우주에게 몰려있었고, 감독을 비롯한 기성 배우들도 스포트라이트를 우주 쪽으로 몰아주려고 했다. 신인배우를 향한 배려로 포장했지만 실은 다들 그런 과도한 관심을 지독하게 싫어하는 성격인 것도 있었다.
기사들이 보도된 바로 다음날 '알권리' 채널에서 우주의 가족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영상으로 가공하여 다루었다. 어느 메이저 채널에서도 그 내용을 직접 다루지는 않았으나, 댓글들에는 ‘알권리’ 영상을 기반으로 우주를 비꼬는 내용들이 몇개 달리곤 했다. 그 아래에는 이어서 그런 댓글들을 힐난하는 사람들이 찾아와 콜로세움을 열었다. 댓글 창이 불타면 ‘알권리’ 채널이 홍보효과를 보게되었다.
인터뷰 내용에 따르면 우주는 언니와 부모의 등골을 있는대로 잔뜩 뽑아먹다가 가세가 기울자 철없는 투정을 부리며 연을 끊고 집을 나가 성공을 거둔 지금까지도 나몰라라 하고있는 희대의 패륜아였다. 파티가 끝난 뒤 모두들 집에 돌아가고 홀로 회사에 남아 만취한 상태로 영상을 보며 히스테릭하게 깔깔대던 우주는 독단적으로 제프에게 메일을 보내 위와 같은 스케줄을 잡아버렸다. 회사 대표의 계정으로.
그것은 그렇게 그녀의 귀국 후 첫 공식 인터뷰 일정이 되었다.

아무도 제대로 영화를 본 사람이 없는 상영회가 지나간 이후 효진의 집안은 어색한 침묵으로 가득차있었다. 어느 누구도 콕 집어서 그 이야기를 꺼내는 법은 없었다. 하지만 효진의 부친은 두 모녀 중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했고, 모친은 서른이 훌쩍 넘은 효진을 갓 스무살 된 아이처럼 통제하려고 들었다. 세상물정 모르는 처녀가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지를 '오계절'의 도입부가 다큐멘터리처럼 보여주고 있다고 믿어버린 듯 했다.
문제의 근원인 효영을 불러들여 바로잡게끔 만들어야 한다는 충동은 정의감이라는 탈을 쓴 채 합리화되었고, 효진은 제프와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한편으로는 진홍과 결혼을 전제로 하는 만남을 이어가며 종종 진홍의 집에서 잠을 잤다. 서른 넘어서 외박으로 실랑이하는 것이 좀스럽다고 여겨졌지만, 결혼을 전제로 한다는 핑계라면 모친도 귀찮게 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실상 효진은 진득한 유흥의 밤을 즐기고 다녔다. 우주의 언니가 된 이후로 효진은 보다 자유로워졌고, 거침없어졌다.
진홍은 그 모든 것을 알면서도 효진이 돌아올때마다 받아주었다. 효진은 이따금씩 술에서 반쯤 깬 상태일 때 양심의 가책을 통증과 구분하지 못해 히스테리를 부리곤 했는데, 진홍은 그럴수록 더욱 굳건한 마음으로 신뢰를 주려고 노력했다. 그러고나면 또 한동안 효진은 얌전한 예비신부가 되었고, 복용하는 약을 거르지 않으면 그 얌전함의 기간이 길어졌다. 진홍은 거기에서 더욱 희망을 보았다. 한때의 파도가 지나가면 결국에는 힘에 부쳐 자신의 품에서 사그러들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 일이 있었는 줄은 몰랐어요. 영상을 다시 한번 만들어야겠는걸요. 아니지 또 섣불리 한쪽 편을 들면 안되니까. 아, 삼자대면을 해봅시다. 조회수 역대급으로 뽑을 자신 있어요. 대박. 수익은 전부 효영님, 아니다 효영씨 기부하고 계신 아동복지재단에 기부하는 것으로 하면 어때요."
"재평씨. 첫째, 저는 효영이 아니라 우주입니다. 둘째, 제가 이번 작품 한편으로 얼마를 벌었을까요. 앞으로는 얼마를 벌게 될까요. 저한테 돈 얘기를 함부로 꺼내지 않는게 좋겠죠? 셋째, 저는 제 언니보다도 당신이 훨씬 싫어요. 저, 배우로 성공했어요. 성공의 좋은 점 중에 하나는 싫어하는 사람이랑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있다, 입니다. 대답이 되었나요?"
"어... 아프네요, 저는 오늘 배우님의 팬이 되었는걸요. 당신의 진짜 편이요. 제가 다시 논리적으로 정리를 해볼까요."
"당신 논리는 당신 세상에서나 실컷 펼치세요. 우리 직업이 몰입해주는 팬들이 없으면 성립할 수 없는 건 맞죠. 그렇게 팬들 세상에 말을 거는 직업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요, 먼저 말을 걸었다고 관계에서 을이 되는 건 아닙니다. 당신 세상의 논리와 제 세상의 논리는 함께할 수 없는 것 같네요. 저는 당신에게 맞춰드릴 용의가 없고요. 각자 세상에서 살아가요 우리.”
"논리는 그렇게 주관적인 게 아니에요. 제가 이해시켜드릴게요."
"정말 패 죽이고 싶었어요 당신을."
"아... 이건 실수하시는건데요."
"그래서 얼굴보고 얘기하자고 한거에요. 언론 노출 없이."
"예? 그게 무슨..."
"언론 노출 없이, 일이기 전에 사람 대 사람으로. 그렇게 제 눈을 보면서 제 심장을 아프게 하는 말들을, 그게 아플 거라는 걸 알면서 꽂아넣을 수 있는 사람은 저는 딱 한명밖에 알지 못해요. 제 언니도 그 정도로 지독한 사람은 못 되거든요."
“아 그렇지, 당신의 아픔에 공감할게요."
"닥치세요. 만남의 목적은 이뤘어요. 이제 당신이 저에 대해 어떤 말들을 뒤에서 떠들고 다녀도, 당신을 때려죽이고 싶다는 충동은 들지 않을 것 같네요. 다행이에요, 저에게는. 당신 따위 때문에 신세 망칠 일은 없을테니까. 인신공격을 할 생각은 없지만, 글쎄요. 참 딱해보이네요 당신도."
"그러지마세요. 왜 상처를 주십니까."
"때려죽이려고 했다는 말, 가볍게 들렸어요? 정신병이 집안내력이라고, 당신이 알게되면 저한테는 치명적인 약점이 될텐데, 왜 굳이 알려줬을까요? 왜 굳이 당신 사무실로 찾아오겠다고 했을까요?"
"알아들었으니 그만해요. 효영... 아니 우주씨."
"우리, 착하게 살아봐요. 각자 열심히. 다시 만날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치워요, 무슨 악수를 해."
"그럼 사진이라도 한장 같이 찍어주고 가요. 어디 올리지 않을게."
“저.리.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