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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연재/연극이 끝난 후, Play for me (드라마, 관계)

연극이 끝난 후, Play for me - (5)

by 구운체리 2022. 2. 9.

5.
 정욱의 신변에 관해 한바탕 소란이 있었다. 창수가 정욱을 붙들고 한시간 넘게 호통을 쳤다는 소문도 들렸고, 반대로 창수가 학생주임이나 교장선생으로부터 그만큼의 꾸지람을 들었다는 소문도 들렸다. 잠시동안 정욱은 의기소침해보였고 그만큼 창수의 기세가 살아난 것 같다는 뒷말들이 돌았지만, 표면적으로 바뀐 것은 없었다.
 정욱이 장군네 패거리와 어울려 학교 뒷공터에서 몰래 담배를 피워왔으며 그로 인한 징계를 받았다는 소문이 들렸을 때 규민은 크게 당황함과 동시에 당혹스러웠다. 분명 피우기 전에 말렸는데, 장군네 양아치들의 모략질에 넘어간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생각했지만 따지고보면 조용히 넘어갈 수 있었던 일에 경거망동하다 사건을 키워버린 것이 규민 자신이니 진상을 밝혀낼 수도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학생이 담배를 펴? 너 정욱이한테 들은 말 없어? 진짜야?” 주헌의 주위로 모여든 아이들은 정욱이 보이지 않으면 드러내놓고 수군대곤 했다. 주헌은 점잖은 채 있었지만, 조금씩 씰룩이는 미소마저 감추기엔 서투른 어린 아이였다. “그래도 초범이니까 정학까지는 받지 않을거야. 아무리 그래도 빨간 줄까지 그이겠어?”
 공공연히 정욱의 위상을 질투하는 아이들이 있었고 그 필두에 주헌이 있었다. 주헌이 절대 그럴 리 없다고 안심시키는만큼, 어쩌면 정욱이 사회적으로 망신을 당하고 앞으로의 삶도 어두워졌으리라 기대하는 듯 보였지만, 실상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당연히 미성년자의 흡연은 학교에서 엄중히 처벌하는 사항에 속했지만, 중징계를 반드시 내려야한다는 조항이나 판례가 존재한 적은 없었다. 특히나 대상이 학교에서 온힘을 모아 명문대에 보내기 위해 밀어주는 정욱이라면, 초범의 경우 기록되지 않는 선에서 조용히 무마한다는 판결의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다.
 하지만 걷잡을 수 없이 소문이 퍼져버린 것 때문에 학교 측에서도 골머리를 썩고 있었는데, 소문을 퍼뜨린 당사자가 정욱 본인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다는 장문의 반성문을 모두가 볼 수 있는 복도에 게시함과 함께, 누군가로부터 발각되기 전에 먼저 자수를 했으며 비슷한 친구들의 같은 잘못이 반복되지 않도록 범행의 비밀스러운 장소와 과정들을 전부 학생 지도부에 낱낱이 고해두었다는 것이다.
 창수는 그런 정욱을 영 탐탁치않게 여겼다. 처음에는 담배를 피웠다는 사실 자체로 정욱의 기를 잡아두려 했지만 같은 꾸지람이 세번째 이어지던때 ‘교훈 없는 훈계는 적당히 하시라’는 정욱의 반박에 이렇다할 대꾸를 하지 못하며 움츠러들었다. 그러다가 정욱이 직접 일을 키웠다는 사실에 대해서 언짢음을 표현하려다 ‘당신의 교육철학이 의심된다’는 반박을 듣고 길길이 날뛰다 교감 선생에게 붙들려 훈계를 들은 뒤로 창수는 정욱을 없는사람 취급했다.
 공교롭게도 정욱은 학생 금연 홍보 모델이 되어 교육청 단위의 공로패까지 받게 되어, 처음에 그를 미워하던 고위 교직원들이 오히려 학교의 위상을 높인 공로로 정욱을 오히려 총애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정욱이 반성문의 서두에 밝힌, 흡연의 습관이 잠깐의 호기심에서 비롯한 잘못된 일탈이라는 변명을 너무도 흡족하게 받아들였다. 정욱은 그에 대한 처벌로 방과 후 교내봉사 60시간을 받았고, 그 중 대부분의 시간을 규민을 비롯한 친구들에게 공부를 가르쳐주는 것으로 보냈다. 규민은 그렇게라도 정욱과의 인연의 실이 끊어지지 않았음에 안도하면서도, 어딘가 차가워진 반응에 불안한 나날을 보냈다.
 그리고 동흥제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동흥제는 동흥고등학교의 가장 큰 행사이고, 동흥동을 상징하는 행사였다. 동흥의 이름을 기반으로 결성된 정치 조직이 작지만 굳건하게 중앙정치 핵심세력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었고 지역구 선거를 장악하고 있었으므로, 동흥제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켜 두는 것은 최소한 동네에서 두고두고 자랑할만한 정도의 거리는 되었다. 운이 좋다면 중앙정치로 향하는 첫번째 발판이 될 수도 있었고.
 정욱의 꿈은 대통령이었고, 동흥제는 마땅히 정욱을 위해 마련된 시험의 무대였다. 그가 메인 무대의 주인공이 되어 군중을 휘어잡거나, 전체 무대의 총감독이 되어 이름을 알리거나, 사람들은 그의 활약에 호응해 줄 준비가 되어있었다. 문제는 그가 그것을 얼마나 잘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해내느냐에 달려있을 따름이다.
 무대의 클라이맥스는 통상적으로 교내 락밴드인 ‘어울림’이 맡도록 되어있었고 ‘어울림’의 보컬은 적당한 가창력과 출중한 외모로 인기가 높은 민구가 맡고 있었다. 민구는 여자친구인 윤지에게 세상에 다시 없을 이벤트를 선물해주기 위해 동흥제의 하이라이트를 어떤 식으로 포장하면 좋을지만을 고민하고 있었다.
 동흥제의 기획은 학생자치단체를 중심으로 특별히 모집된 기획단이 담당하도록 되어있는데, 이전년도의 큐시트에서 담당 책임 학생들만 바뀌는 식으로 진행이 되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이번 동흥제의 기획에는 정욱이 적극적인 아이디어를 들고 와 완전히 새로운 피날레를 계획하였고, 학생회 임원들을 비롯해 실무적인 잡일들을 떠안게 된 일부 젊은 선생님들 마저도 그 새로운 기획안을 지지하며 21번째 동흥제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그동안은 당연한 듯이 ‘어울림’이 동흥제의 피날레를 장식했지만, 보다 많은 재능을 가진 친구들이 무대에 설 자격이 있으며, 보다 보편적인 학우가 이야기의 꼭대기를 장식한다면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지 않겠는가. 정욱이 제시한 핵심 요소였다.
 “그럼 그 주인공은 누가 맡는데요? 각본은 어디서 구하고?”
 정욱은 슬며시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어진 임원진 투표에서 정욱의 아이디어는 자세한 내막을 공개하지 않고도 압도적인 표를 얻으며 채택되었고, 동흥제의 마지막은 밴드 공연 대신 정욱이 기획한 단막극이 차지하게 되었다.
 그 주인공 후보로 규민이 거론되고 있었다. 규민은 지금 일어나는 일들을 이해하지 못한 채 조언을 구하고 싶었지만,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학우들이 자신과의 접촉을 꺼려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자아이들은 그를 더러운 것으로 취급하는 대신 수준이 맞지 않는 짐승 대하듯 하였고 정욱을 비롯한 무리들은 묘하게 깔보는듯한 태도를 취했으며 장군의 무리들은 그를 없는 사람 대하듯 했다.
 용주는 규민을 혐오하다시피 했는데, 규민도 이제 용주를 혐오스럽다고 생각하던 차였기에, 그것만큼은 아쉽지 않다고 애써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그렇게 집으로 돌아갈때면 어쩐지 왕따를 당하던 이전보다 더 상황이 나빠진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만큼은 떨쳐낼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