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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편 연재/연우씨의 재판 vol 1. 본심 (드라마, 판타지)

연우씨의 재판 1부 - (7)

by 구운체리 2022. 7. 2.

7.
연우씨에게 남은 마지막 삼일 중 이틀 동안 연우씨를 살리는데 도움이 되는 이야기들이 소리의 사무실로 많이 보고되었다. 조사관의 정식 공무를 거친 공문서의 형태도 있었고 연우씨의 이웃이라 주장하는 이가 보낸 편지들도 있었고 익명의 포럼에 투고된 형식의 것도 있었다.
그들은 일관되게 연우씨의 불우한 가정사와 7살 부근의 그가 무척 선량하고 유약한 소년이었으며 동생을 끔찍하게 사랑했다고 주장했다. 연우씨의 부친이 거리에서 객사한 이후로 모친의 정신상태도 이상해졌으며 집안에서는 종종 비명에 가까운 곡소리가 들렸다는 것이다. 
그들 중 누구도 직접 얘기하지 않지만 암시하는 바는 분명했다. 모친이 나라에서 금지한 이단 종교인 발장교에서 배포하는 붉은 알약을 주기적으로 복용하며 미쳐버렸다는 것이다. 발장교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단체였다. 그런 단체의 이름을 안다는 것 만으로도 곤란한 상황에 처해질 수 있을만큼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었기에 누구도 그것을 알고 있다는 티를 내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 배포하는 알약에는 피와 같은 붉은 빛이 돌며 그것을 장기적으로 복용하면 폭력적인 방식으로 미쳐버린다는 소문이 자자했기에, 누군가 비정상적인 폭력성을 보일 경우 발장교와 엮어 처벌을 가하는 경우가 많았고 관련한 신고를 할 때는 '빨간 약'이라는 단어를 은어처럼 사용했다.
소리는 빨간 약에 얽힌 건으로 체포된 사례를 두 번 맡았는데, 둘 다 애초에 정부에서 요주의 인물로 찍어두던 사람들이었다. 집행국 양아치들이 대뜸 그들이 안주하는 공간에 쳐들어가 세간을 뒤집어엎는 방식으로 체포를 진행하면 없던 폭력성도 생겨날 것 같았지만, 선후관계가 어쨌건 그들은 국가에 잠재적인 위협이 되는 존재들이었고 통계적으로 비정상적인 정도의 폭력성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에 구금형을 피할 수는 없었다.
소리는 빨간 약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믿지는 않았지만, 통치의 편의를 위해 관념적으로 창조된 허상이라 한들 달라질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것이 존재한다는 가정 하에 일을 처리하는 편이 여러모로 편리했다. 그리고 빨간 약이 존재한다면 연우씨와 같은 사례는 어떤 식으로든 연우씨가 빨간 약을 과다하게 복용한 상태에서 일어난 비극일 것이라 믿었다.
그런 경우에 대해 세상은 연우씨에게 자비의 여론을 베풀고 발장교라는 형체가 흐릿한 공동의 적을 향해 분노를 표출할 것이다.
해리는 빨간 약 따위는 존재할 수 없다고 믿었다. 통계관들이 가장 활발하게 연구하는 대상은 정부에서 배포하는 두 가지 약, 즉 하얀 약과 검은 약인데 그 둘을 어떤 배합으로 섞는다해도 유채색의 것이 나올 수는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애초에 다른 성분을 가져다가 만들었겠지, 라는 것이 소리의 반박이었는데 그런 식으로 인간 행동을 통제할 수 있는 원료가 있으면 국가에서 활용하거나 관리하지 않을 이유가 있겠느냐는 대답에는 할 말이 없었다.
"그 통제광들이?" 
해리의 시니컬한 목소리가 귀에서 맴돌았다. 자라는동안 소리와 해리의 사이는 여느 적당한 소득 분위 집안의 자매들처럼 아주 친밀하지도 아주 적대적이지도 않았다. 한정된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놓고 겨루는 경쟁상대로 여기면서도 외부의 적이 있을때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편으로 여기기도 했다. 해리는 소리의 명석함을 질투했고 소리는 멍청한 소리를 일삼는 언니의 주변에 더 많은 사람들이 꼬이는 것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
언니와의 사이가 틀어진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자신이 잘못한 일이 없으니 이것은 천재지변 같은 것이 땅을 갈라놓은 것과 마찬가지의 안타까움이었다. 이성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억지로 그것을 되돌리려는 노력은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누구 말대로 속이 시꺼먼 사람들은 무의미한 일에 시간을 쏟는 것이 불가능했다.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연우씨는 소리를 만나 입을 열었다.
"엄마가 동생을 죽이려고 했어요. 화가 났거든요, 먹지 말라고 아껴둔 통조림을 뜯어먹어서. 우리가 식탐을 부려서 아버지가 집을 나갔고 죽어버렸다고요. 밥그릇을 손애 들고 있었는데 반으로 깨져서 날카로웠어요. 깨지기 전에 몇번 맞아봤을때는 괜찮았는데, 이건 위험할 것 같았어요. 동생은 잘못했다고 울고만 있고요. 손에 잡히는 아무거나 휘둘렀는데 손이 축축하고 엄마가 멈췄어요. 내가 엄마의 눈을 찔렀나봐요. 엄마가 아무말도 못하길래 원래대로 돌려놓으면 괜찮아질 줄 알고 손에 든 걸 당겼는데 엄마가 더 미쳐 날뛰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그 뒤로는 정신을 잃었어요. 다시 기억이 돌아오고 나니까 교도소에 있었어요. 약을 먹어서 그런가, 다른 건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아요."
기록관의 펜이 떨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는 연우에게 물었다.
"지금 이 얘기 왜 전에는 안 했어요. 아니, 한 적이 있어요?"
"많이 연습했어요. 바보같이 말한다고 들어주시는 분이 화를 내서 끝까지 말을 못했거든요. 제가 왜 죽지 못했을까 많이 고민해봤는데요, 이 얘기를 다 못해서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4주 동안 정말 열심히 연습했어요. 이젠, 저 죽어도 되는거죠?"
기록관은 이제 흐느끼는 소리를 감추려고 하지도 않았다. 소리는 그녀를 쏘아봤다. 사적인 감정이 개입되는 일은 프로답지 못했고, 결국 누구에게도 이롭지 못했다. 한편으로 이 얘기가 이전에 나왔다가 묻힌 적이 있는 성질의 것이라면, 그녀가 다른 생각을 품을 경우 위험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록관의 기록 내용은 일터를 벗어나서는 안되었다. 기록관은 법관과 대칭되는 위치에서 하얀 약을 가장 많이 처방받는 직업이었다.
"연우씨. 원하는 걸 얘기해요. 살고 싶다고 하면 살려줄게. 당장 풀어줄 수는 없지만 3년 더 살게 해 줄 수 있어. 그 다음 일은 그때 얘기해보자고. 어때요, 편하게 얘기해요."
"판사님은 따뜻한 사람이에요. 재판 때도, 집행 때도 절 도와주시려고 한 마음이 느껴졌어요. 살면서 판사님이 유일했어요. 정말 감사해요. 이번에도 도와주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래 연우씨, 필요하면 내가 판관자리 내려놓고 연우씨 변호를 맡을게."
"저를 죽게 해주세요."
"연우씨?"
"제가 살면 제 동생은 어떡해요. 연희가 저를 미워하게 해주세요. 연희가 미워하는 제가 죽을 수 있게 해주세요. 그래야 연희가 살 수 있대요."
"연우씨."
"인혁이 형님이 저를 밖으로 데려나가주셨어요."
"잠깐 누구... 인혁... 배인혁? 그 돼지새끼?"
소리는 눈물 사이로 잠깐 터져나오는 실소를 애써 눌러담는 기록관을 쏘아보며 방금 언사는 알아서 걸러 적으라는 눈짓을 보냈다.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보라고 했지만 사람들은 저한테 돌을 던졌어요. 제가 살아난다고 해도 이미 이 세상에 제 자리는 없어요. 저번에 한번 연습해봤으니까 이번에는 실수없이 잘 할 수 있겠죠? 드려야할 말도 다 전했으니까요."
"그래요 연우씨, 그럼 그렇게 해요. 내가 도와줄게."
기록관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소리를 바라봤다. 이제는 펜을 아주 손에서 내려놓고 있었다. 엄격한 지침은 아니지만 기록관과 취조실 내의 화자들은 서로를 없는 사람처럼 생각하도록 되어있었다. 하지만 직접 대화를 나누지 않고 서로에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방법은 얼마든지 많았다. 하지만 소리는 기록관이 자신의 업무를 내팽겨치도록 내버려두었다.
"잠깐만, 근데 배인혁 차석이랑 형동생하는건 그렇다치고, 연우씨를 왜 데려나갔어요?"
"제가 끓여드린 라면 맛을 못 잊으시겠다고, 감옥에서 꺼내줄테니 밖에서 라면집을 하자고 하셨어요. 제가 싫다고 하니까 좋은 구경 시켜주신다고 데려나갔는데, 연희가 저를 봤어요. 연희가 저를 보는 눈빛을 봤어요. 저는 알아볼 수 있어요. 제 동생이니까요. 판사님, 저를 죽게 해주세요."
소리는 마른 세수를 하며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쓸어넘겼다.
"그래요 연우씨, 이해했어요. 정말 고생많았어요, 난 연우씨 믿어. 내가 법정에서 연우씨한테 친절하지 않고 모질게 말을 해도 이해할 수 있죠?"
"그럼요. 저는 보이지 않는 게 보이는걸요. 판사님이 저한테 주셨잖아요. 빨간 약."
소리는 아차 싶었지만 연우씨가 듣는 앞에서 그것이 선의의 거짓말이었다고 해명을 하고 싶지도 않았고, 기록관의 노트에서 문장을 빼고 싶을 때 사용하는 음담패설이나 기록관의 주변인에 대한 흉을 늘어놓는다 하더라도 감정적으로 오염된 상태를 숨기지 않고 일을 하는 저 여자가 응해줄 것 같지 않았다.

기록관의 펜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