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슬고슬하게 쌀알이 잘 익었다. 되지도 질지도 않고 딱 맛나게.
고즈넉한 눈밭을 가르는 강아지마냥 지나가는 주걱을 따라 뜨신 김이 솟는다.
침 고이는 냄새가 코 끝으로 스미어 마음을 채운다. 잘 지어진 밥통에 둘러앉아 밥술을 나눈다.
매일 뜨는 밥 한 수저에 담긴 뜻밖의 완벽함이, 특별한 기운을 주었다.
밥 짓는 이는 자뭇이 뿌듯하다.
매일 몇 번을 지어도 밥 짓는 일은 같지가 않다.
권태마저 지나가 굳어버린 손길은 일용할 양식이 주어짐에 사소한 감사를 잊은 지 오래.
마음에 걸린 짐이 그것말고도 많을테니.
그저 관성으로나마 버텨낼 힘이 되기를, 가끔은 조금의 힘을 더 주기를 기대할 뿐이다.
그래도 문득 한번 힘을 주어, 혹은 아주 우연히, 어쩌면 견딜 수 있는 무게가 그것밖에 남지 않릉 어느 날에,
밥이 잘 지어지면 기분이 좋다.
매일 몇 날을 살아도 하루살이는 쉽지가 않다.
소소한 행복마저 권태로운 어느 날, 인생에 감사할 것이란 남지 않은 것만 같던 오랜 날.
세상 모든 짐은 혼자 다 짊어진 양 느껴지던 그런 날
된 하루를 지나 심술만이 솟던, 뱉어버린 약함과 삼켜버린 후회가 독이 되던 날에
어제와 같은 내일만이 그려지는 오늘에 삶은 옅어지고, 그저 처연한 배고픔만이 선명하던 그 날에,
잘 지은 밥을 만나는 기분이 속도 없이 좋더라니.
오늘은 내가 밥을 짓고 내일은 네가 밥을 짓자. 또 아무나 모레의 밥을 지어보자.
번거로운 감사는 미뤄두고 습관처럼 그저 배를 채우고 보자.
그러다 문득 예상치 못한 기쁨을 만나면, 기쁨을 선물하면,
마주보고 웃자. 그제야 감사하자.
그렇게 하루하루 함께 먹는 식구가 되어주자.
짧은 낙서들/시 작(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