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단편 연재/고양이 밥 (범죄, 미스터리)8

고양이 밥 - (2) 2. 볼품없는 외모, 작은 키, 작은 성기, 잦은 병치레, 그리고 가난. 물려받은 수많은 고난을 긍정의 힘과 노력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생각을 차례차례 지워나가는 것이 어른이 되는 것이라 믿었다. 아니었다. 가족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의 알을 깨고 새 살에 세상 바람을 맞으며 기어다니는 일에 익숙해질 때 인간은 비로소 어른의 이름을 얻는다. 내가 학창시절 희망에 부풀어 모은 3천만원을 졸업 직후 고스란히 은행에게 빼앗기고 나서야 우리 가족의 재정 상태를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부모는 각각 성실하고 비교적 선량한 사람들이었지만 지혜롭지 못했다. 아버지는 진부하게도 보증을 잘못 섰고 어머니는 진부하게도 투기에 실패했다. 당장 목도할 최악을 피한다는 명목으로 시간을 갖고 더 크게 얻어맞게 될 선택마저 해버린 뒤에.. 2021. 11. 19.
고양이 밥 - (1) 1. 외로운 짐승 둘이 자연스레 서로에게 울림이 되는 데에는 별다른 기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서로의 외로움을 알아채는 데에도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지 않다. 그저 아주 사소한 우연으로 마주앉아, 서로의 불규칙한 숨소리에 불편한 주의를 기울이다 보면 어느 새 보이지 않는 타래에 엮여있곤 하는 것이다. 인지할 수 없는 공명이 서로를 이끄는 모양은 비극일 때가 많다. 상처입은 짐승은 더 진한 상처를 찾아 처절하게 떠돌아다니다 제 죽을 자리를 찾고나서야 멈추어선다. 스며들었다 지나간 악취는 시체와 함께 사위고, 묘비에는 남은 것들 중에 어떻게든 걸러낸 아름다움만이 쓰여진다. 아름다운 유혹은 또다른 외로운 짐승들을 그렇게 묶어 비극은 전염병처럼 번져 생명력을 유지한다. 심신이 위기에 처해있을수록 종족 번식의 욕.. 2021. 11.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