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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연재/고양이 밥 (범죄, 미스터리)

고양이 밥 - (1)

by 구운체리 2021. 11. 18.

1.
외로운 짐승 둘이 자연스레 서로에게 울림이 되는 데에는 별다른 기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서로의 외로움을 알아채는 데에도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지 않다. 그저 아주 사소한 우연으로 마주앉아, 서로의 불규칙한 숨소리에 불편한 주의를 기울이다 보면 어느 새 보이지 않는 타래에 엮여있곤 하는 것이다.
 인지할 수 없는 공명이 서로를 이끄는 모양은 비극일 때가 많다. 상처입은 짐승은 더 진한 상처를 찾아 처절하게 떠돌아다니다 제 죽을 자리를 찾고나서야 멈추어선다. 스며들었다 지나간 악취는 시체와 함께 사위고, 묘비에는 남은 것들 중에 어떻게든 걸러낸 아름다움만이 쓰여진다. 아름다운 유혹은 또다른 외로운 짐승들을 그렇게 묶어 비극은 전염병처럼 번져 생명력을 유지한다. 심신이 위기에 처해있을수록 종족 번식의 욕구는 강해진다지.
 비극의 필연성에 순응하게 된 뒤로, 나는 덜 슬퍼지는 것보다 더욱 아름다운 것을 남기는데 집중하기로 했다. 재가 되어 사라지는 내 몸을 상상하면서 흔들리는 정신을 붙들어두는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죽은 뒤에 지금보다 아름답다. 그것을 너희는 알아야 해. 아니, 그것을 나는 알아야 해.
 진부한 다짐에 부쳐 나는 수에 대한 이야기를 세상에 남기기로 했다.

 내 인생에서 확실하게 지나간 봄에 그 여운만이 잔망을 부리던 수난의 시절 나는 일종의 열병을 앓고 있었다. 나는 맹세코 수를 연인으로 사랑한 적이 없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매일 수에 대한 생각을 했다. 반대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때때로 나는 수가 실존하지 않는 추상적인 개념이라는 착각을 했다. 숫하게 지나간 상상 속의 연인들과의 차이점이라면, 첫째로 수는 구체적이고 일관된 형상의 육체를 가졌다는 점이고 둘째는 나의 그 환상 속에서도 수에게는 성적인 끌림을 느끼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몇 번의 깊은 상실 이후 구체적인 믿음에 대한 표지를 잃었지만, 분명 수는 실존했던 사람으로 나에게 가장 좋은 친구였다. 최소한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지금 나는 아무도 아무것도 도달할 수 없는 심연의 땅에 홀로 가두어져 있으니, 나의 믿음과 인식만이 곧 실존이다. 그 속에서 수는 그저 수수한 여성이었다. 나는 그녀를 갈망했다.
 수는 거부할 수 없는 친절을 끝없이 베풀어 나를 그 마음의 땅에서 떠날 수 없게끔 옭아매두었다. 나도 종종 수에게 친절을 베풀곤 했으나, 그것은 내가 수라는 땅을 떠나갈 때를 대비한 일종의 심리적 보험책이었다. 수가 일부 선택된 이들에게만 베푸는 신성에 가까운 사랑은 구현은 커녕 적합한 표현의 언어조차 찾기 어려운 것이었다. 나는 수에게 선택받은 행운을 누린 소수에 속했고, 그 커다란 행운에 감사해야 했다.
 때론 나에게 주어진 행운의 총량을 오직 수에게 쏟아부어 나머지 인생이 그토록 처량했었나 하는 궁상에 젖어본다. 하지만 지금에도 분명한건, 나의 고난은 태고적부터 이어져 온 것만 같은 가난으로 말미암은 것이며 나의 그 가난은 원치않게 물려받은 수많은 불운 중에 하나일 뿐이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그 시절이 이전보다 특히 더 불안하고 불우했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도 책임은 주어진다는 공공연한 비밀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 그때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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