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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연재/고양이 밥 (범죄, 미스터리)

고양이 밥 - (5)

by 구운체리 2021. 11. 22.

5.
 뜻밖에 여자가 경찰을 안심시키고 돌려보내 나는 많은 귀찮은 일들을 면했다. 순식간에 사라져서 도둑을 맞을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구면인 친구가 장난을 친 것이다. 재미도 없고 실속도 없고 아는 것도 없고 여러가지가 부족한 친구지만 잘 타일러볼테니 도로 일 보시라. 경찰의 표정은 여전히 좋지 않았지만 피차 귀찮은 일이 늘지 않아 다행이라는 듯 납득하고는 돌아섰다. 좀 씻고 다니라는 핀잔을 툭 던지고는.
 지가 물값 내줄건가 개 같은 놈이.
 경찰이 사라지자 수는 멀찌감치 서서 다시 내게 말을 걸었다.
 “저기요.”
 “미안합니다.”
 “그건 됐고. 당신 맞죠?”
 “시끄러워서 그랬습니다.”
 “지갑이?”
 “예?”
 “아 친구들. 그거 왜 그런 줄 알아요?”
 “저는 아는 게 없습니다.”
 “누가 그 녀석들 어미를 죽였어요. 발로 걷어찼더라고. 배를 있는 힘껏. 누가 그랬는지 알아요?”
 “제가 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알아요, 봤어.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누군지를 몰라서 그렇지. 이 동네 사람은 아니야. 뚱뚱했거든, 그 남자.”
 “예, 저는 아닙니다.”
 “이 동네 사람들은 다 비슷하게 생긴 것 같아. 표정도 없고, 체형도 비슷하고. 어제 죽은 그 남자도 같은 사람이 죽인걸까?”
 이쯤에서 나는 이 연고 없는 대화를 즐기고 있었다. 사실 전달을 하는 단순한 대답 만을 뱉으며 내가 진심으로 대화에 참여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이 듣기 좋은 평범한 대화의 리듬에 추임새 정도를 거들고 있다는 오래된 감각이 좋았다. 내가 대답을 멈추면 수는 혼자 계속 떠들었다. 아까도 그랬겠지, 그러다 내 눈에 초점이 사라진 걸 보고 놓아준 걸지도.
 “원래 사는 주인이 있는 곳인지 몰랐어, 미안해요.”
 아 이 얼마만의 건방진 반존대인가, 설렌다.
 “그래도 어디 다른 곳에 얌전히 옮겨둘 수도 있지 않았을까? 얼마나 기분 나쁜지 알아요? 애기들이 땅에 떨어진 것도 잘 먹긴 하지만.”
 “어미가 죽고 나서는 항상 거기에 모여있더라고. 그래서 그렇게 시끄러운거에요. 난 당신이 애기들 돌보는 엄마인가 했지 뭐야.”
 “아무튼, 거래 하나 제안할게요.”
 무언가를 따지고 들기엔 내가 너무 피곤했다. 중간중간 훔쳐보듯 눈을 마주치는 게 내가 쓸 수 있는 사회적 에너지의 최선이었다.
 “밥그릇 원래 위치에 둘테니 내버려둬요. 아니면 아예 방으로 들이던가. 그 안으로 내가 먹이는 계속 넣어주던가 할게. 밥그릇 옮기니까 애들이 영 불편해 하는 것 같아.”
 그래 이 여자도 분명 제정신은 아니야. 오늘 아침까지 시체가 뒹굴던 자리에 다시 매일매일 찾아오겠다고? 아니 내 반지하 창문으로 고양이를 들이고 먹이를 넣어주겠다고? 순간 내가 가게 될 줄 알았던 교도소의 창살 너머로 끼니를 밀어넣는 간수의 모습이 그려졌다. 차이가 있다면 그때의 간수와 나는 눈높이가 같으리라는 것.
 “아니야 방 안으로 옮기는 건 좀 그렇겠다. 아무튼 밥그릇 걷어차지 말아요.”
 나의 침묵은 암묵적인 긍정으로 받아들여질까. 생각보다 별로 대단한 것을 요구하지는 않아서. 밥그릇을 걷어차지 않고 고양이들을 치워버리는 방법이야 차고 넘친다. 하지만, 나는 어쩌면 주기적으로 고양이 밥을 채워주러 오는 그녀를 기다리며 올려다보는 그 순간을 그리워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털 정리 좀 하세요, 그리고. 아까는 진짜 뭐 물어뜯기라도 하려는 줄 알고 쫄았잖아요.”
 미용비 니가 내주냐고. 나는 왠지 실없는 농담 한 마디를 얹고 싶어졌다.
 “제 밥도 좀 챙겨줘요.”
 “뭐라고요?”
 “고양이 밥 주실 때. 요새 일이 없어 돈이 없습니다. 제 밥도 옆에 같이 두십쇼. 그럼 밥그릇 그대로 두겠습니다.”
 수는 잠깐의 경계와 딱한 표정으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잠시 망설이더니 가방을 뒤져 찌그러진 삼각김밥 두 개를 내밀었다. 멸치가 든 것과 돼지고기가 든 것이었다.
 “폐기라도 괜찮으면, 챙겨올게요.”
 나는 돼지고기가 든 것을 조심히 뜯었다. 차갑고 비릿한 냄새가 났지만, 당장의 끼니가 해결되었다는 사실이 그저 반가웠다. 원초적 욕망에 지배당하는 동물이란 참 꼴사납구나 생각하며 부끄러움도 잊고 두 번째 포장을 뜯었다. 짐승처럼 잘도 쳐먹는 내 모습을 어쩐지 흐뭇하게 바라보는 것 같았다. 길고양이가 그녀를 바라볼 때에도 저런 표정을 짓고 있겠지.
 “그럼 거래, 성사된거죠? 저것들 치워지면 밥그릇 옮겨둘게요. 여긴 매일 지나가니까.”
 저것들이란, 이젠 하얀 분필 마크만 남은 시체의 흔적과 그것을 둘러싼 노란 테이프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구경꾼들. 죽음을 장식한 세 겹의 찌꺼기들을 의미하는 거겠지. 저-것들이라는 음절을 발음할 때 수는 얼굴을 찡그리고 오른손으로 그 방향을 가리키며 휘휘 저었다. ‘저’를 길게 늘이는 약간의 망설임으로 망자에 대한 애도를 표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수는 그 손을 내게 내밀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음식을 들고 있지 않은 왼손을 내밀어 맞잡고 어색하게 흔들었다.
 “수환이라고 해요.”
 나는 잠시 멀뚱멀뚱 쳐다봤다.
 “이름, 남자같죠? 남자일 줄 알고 그렇게 지었대요, 우리 할아버지가.”
 “남들이 들으면 아들 키우는 줄 알라고 바꾸지도 않고 그대로 호적에 올려버렸다더라고. 개명할까 생각 중인데, 뭘로 바꿀 지 아직 못 정해서.”
 “뭐 됐어요, 딱히 당신 이름 궁금한 건 아니라서. 잘 부탁해요 아무튼.”
 그게 나와 수의 첫 만남이었다. 고양이 엄마. 편의점 알바생. 자신의 것이 아닌 이름으로 길러진 여자. 말이 많고 겁은 없는 인간. 유해한 성분이 없고 색이 없고 냄새가 없는 사람. 상식도 조금 없고, 없는 게 많은 존재. 그리고 당분간 나의 밥줄.
 지저분한 공중 화장실에 들어가 거울을 보니, 내 몰골이 화장실 바닥 못지 않게 지저분했다. 내일은 조금 더 일찍 일어나서 옆 동네로 일을 찾으러 가봐야겠다고 다짐하며 보름만에 바리깡으로 털을 밀고 몸을 씻었다. 그 더러운 겹겹의 포장 속에 아직 살아있는 사람이 있었구나,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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