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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연재/고양이 밥 (범죄, 미스터리)

고양이 밥 - (6)

by 구운체리 2021. 11. 23.

6.
 수는 먹을 것을 가져올때면 발로 툭툭 차서 노크를 했다. 안으로 넣어주지 않으면 고양이들이 뺏어먹을텐데 건강에 좋지 않다나. 신경쓰는 건강이 나의 것인지 고양이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주로 이른 새벽 아침이었다. 새벽시간 담당과 교대를 하고 퇴근하는 것 같았다. 내가 일어나 하루를 준비해야 하는 시간과 잘 맞물려 나에게는 적절했다. 최소한의 기능을 하는 휴대전화가 알람을 울려주기는 했지만 그다지 의존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녀의 무심한 발길질은 사람의 기운과 식량을 품고 있어 하루에 기분좋은 반복됨을 더하는 의미가 있었다.
 이 험한 동네에도 대기업이 운영하는 편의점이 있고, 음식이 남아 팔지 못하고 버려진다는 것에 기분이 묘했다. 포장지에 적힌 숫자가 한 찰나를 전후로 안에 들어있는 것의 가치를 바꾸어버리는 시스템이 낯설었다.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도 인지할 필요도 없이 살던 나에게는 애초에 숫자가 의미가 없었다. 쉰내만 안 나면 똑같지. 그럴때마다 내 몸에 밴 쉰내를 맡으며 누가 더 폐기에 가까운가 자조하곤 했다. 다만 이전에는 흘려보내던 그런 자조를 기록으로 남겨두기 시작했다는 차이가 있었고, 그럴때마다 내 정신은 보다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내게 줄 폐기가 없는 날에도 습관적으로 수는 노크를 했다. 그런 날엔 내가 문을 열자 곤란한 표정으로 미안해했다.
 “아 오늘은 없는데. 미안해요, 그래도 밥그릇은 치우지 말아요, 이따가 집에서라도 가져올게.”
 “괜찮아요. 오늘 일찍 나가야돼요.”
 “요즘 그루밍 잘 하니까 꼭 사람 같아보이고 좋아요. 무슨 좋은 일 있어요?”
 “볕이 좋잖아요.”
 “아직 시꺼먼데 무슨 볕.”
 그녀에게 나는 그저 조금 큰 고양이 정도겠지. 중성화 수술이나 시키려고 안 해서 다행이다. 이미 한 것이나 다름 없이 살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겨울이 되니 밤이 길어져 새벽에도 해는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노크소리에 창문을 열고 올려다보면 여기저기 부딪히고 남은 달빛 찌꺼기와 또 이런저런 길거리의 잔불들이 새어들어왔다. 그 흘러들어오는 순간을 붙잡아보고 싶어 나는 항상 먼저 창문을 열고 그 다음 불을 켰다. 그 전부터 일어나 몸 단장을 마치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전부 합쳐보더라도 우리는 많은 대화를 하지는 않았다. 내가 살아있는 시간과 그녀가 살아있는 시간이 겹치는 때는 해와 달이 동시에 머무는 하루의 두 번의 잠깐 뿐이었다. 만나지 않는 각자 하루의 시작과 끝에서 우리는 당연히 그래야 하는 듯이 서로에게 들렀다. 나는 일을 마치고 돌아올 때 부러 그녀가 있는 편의점을 찾아 들르기 위해 길을 돌아왔다.
 할 말이 많은 것은 아니라 형식적인 안부에 실없는 삶의 조각을 일부 주고받는 정도였지만, 그보다 진실된 관계의 모습이란 무엇인가. 특별할 것 없이 겨우겨우 반복되어 유지되는 것에 매일매일 감사한 어느 삶의 모습에 무언가를 더하거나 빼려고 하지 않고 규칙적으로 들여다 봐 주는 것은 과연 아가페가 아니겠는가. 나는 내 살 것이 없으면 종종 고양이에게 필요한 것은 없는지 묻곤 했다. 두 사람이 번갈아가며 돌봐준다면 두 배로 좋은 일이 되지 않겠는가.
 그럴 돈이 있으면 폐기 말고 제대로 된 음식이나 먹으라고 핀잔을 주며, 편의점에서 파는 것은 고양이에게 주면 안 된다고 했다. 아기고양이는 나와는 달리 제대로 된 음식을 먹여야한다고. 나는 그저 밥그릇을 가끔씩 닦아주고 물을 채워주는 것으로 내 성의를 보였다. 식비가 굳어 조금씩 모이기 시작한 돈으로 가끔 사치스러운 소비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수는 또 진심으로 기뻐했다. 나의 성장에 진심으로 기뻐해주는 모습이란.
 내 부모도 내가 어렸을때는 그랬겠지.
 문득, 고향과 부모 생각이 났다. 몸에 구멍 안 나고 각자 한 덩어리로 잘 붙어있겠지. 혹시나 그 늪에서 빠져나와 나를 되찾으려 알아보고 있지는 않을까.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알 방법은 없었을테니까. 몇 안 되는 친구들은 내가 사라진 것을 어떻게 인지하고 있을까. 사라졌다는 것을 알고는 있을까. 요새는 내가 과연 거기에 있었는지조차 불확실하다. 이 모든 게 그저 내가 지어낸 기억이라면? 나는 대체 무엇으로부터 숨어 지내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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