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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연재/고양이 밥 (범죄, 미스터리)

고양이 밥 - (7)

by 구운체리 2021. 11. 24.

7.
 일은 불규칙했고 수입도 지출도 따라서 불규칙했다. 하루 해의 길이도 불규칙하게 늘어나 이젠 불을 켜지 않고도 수의 얼굴을 올려다 볼 수 있었다. 나는 더위와 습기를 견디다 못해 차림이 단촐해졌고 수는 내 속옷차림을 보는 것에 익숙해졌다. 폐기 물품의 관리가 점점 까다로워지는 계절이었다.
 규칙적인 것이라곤 거의 예외없이 다녀가는 그 노크소리 뿐이었다. 별다른 사건 없이 고양이들도 잘들 커가는 것 같았다. 이제는 잘 울지도 않고 이따금씩 나를 보고 아는 척을 하는 것도 같았다. 나는 가끔 그 고양이들이 내 룸메이트가 아닌가 싶었다. 
 가계부를 쓴 이후로 그 상승의 기울기가 도로 꺾이지 않게 관리를 할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모이고 있는 돈이 제법 불어나니 전부 몸에 지니기에 버거워졌다. 많은 것을 몸에 지고 다니기 어려운 계절이 된 것도 있었고. 슬슬 장마철이 다가오고 있으니 장판 아래 보관하는 것은 안 될 일이다.
 나는 허리 춤에 차는 전대를 하나 샀고, 그 기념으로 짧은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내 부모가 진 빚에 붙은 이자는 도저히 갚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들이 제공하는 회생 절차라는 탈출구는 달리 말해 환생 절차와 다를 바 없었다. 그들은 공공연하게 잘 알려진 통나무 장사꾼들이었다. 이름도 심플하게 수 캐피탈, 하필이면 수.
 애초에 그들의 고객이었던, 내 아버지의 지인을 보증서는 과정에서 연이 닿았으니 결코 속 빈 협박이 아니었다. 간의 절반과 신장, 눈알 한 쪽을 안전하게 도려낸 친구 분은 당당하게 사회로 돌아오신 뒤 누렇게 뜬 얼굴로 시름시름 앓다가 금새 돌아가셨다. 나이가 육십이 되지 않았지만 자연사로 기록되어 마무리되었다.
다만, 그들에게도 공소시효라던가 수명이라던가 하는 것이 있지 않겠는가. 여름이 되면 폐기 식품도 내다버리는 마당에 나는 그들에게 몇 번의 여름을 지난 폐기 상품인가.
 마침 일도 떨어져 쉬어야 하는 기간이었다.

 수에게 인사를 하러 갔다. 그녀는 본인의 돈으로 계산해서 폐기가 아닌 도시락과 삶은 달걀 몇 알을 챙겨주었다. 다시 못 볼 것을 걱정하는 듯한 염려가 두 눈에 가득했다. 제 발로 집 나간 고양이가 다시 돌아오는 일은 없는 법이라고 그녀가 이전에 말했었던가. 월세 계약이 나를 묶어두기는 했지만, 월세가 밀리고 내가 사라지면 집주인은 망설임없이 방을 내놓겠지.
 신경질적으로 생긴 노인인데 의외로 세입자의 요구에는 성실했고, 누수가 있었을 때는 월세를 반이나 까주기도 했었다. 달리 머물 곳도 없었고 모아둔 돈도 아주 넉넉하지는 않으니 나는 아마 돌아오게 되겠지. 수는 조심히 다녀오라는 말을 모든 문장 끝에 붙이며 나를 배웅했다.
 올때 메로나를 사오라고 또한 덧붙이며.

 버스에 앉아 점점 가까워지는 낯선 익숙함에 윗배가 찡하고 울리는 불편한 설레임에 몸이 꼬였다. 그동안 나를 찾은 사람이 있을까 싶었는데 터미널에 보이는 앳된 얼굴과 죽어가는 표정의 군복 입은 청년을 보니 병무청이 생각이 났다. 예비군을 몇 번 다녀온 이후의 연락을 쌩을 까버린 셈이니 나는 사망처리가 되거나 혹은 그저 실종인 채로 어마어마한 벌금이 붙어있을 것이다. 실종자의 사망처리나 예비군 땡땡이의 처리 조항이 어떻게 되는지는 알지 못했다. 어쨌든 산 채로 배가 갈려 속에 든 것들을 돈으로 환산해 바치는 것보다는 나을테지.
 그저 막연하게 찾아간 나의 고향 집에는 당연하게도 아무 것도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들처럼. 서울에 뿌리를 둔 많은 가족들이 엮여있는 관계의 끈이 얕다고는 하지만 개중에 자기 집을 가진 이가 정녕 한 명도 없었다는 건 새삼 놀라웠다. 시즌이 바뀌고 구성원이 죄다 갈려나간 모 프로그램처럼 내가 살던 동네는 내가 아는 동네가 아니었다. 장수하는 가게라고는 죄다 대형 프랜차이즈 뿐이었다. 아는 사람이 있다고 한들 찾아가서 무엇을 물어볼 생각은 아니었지만.
 애초에 무엇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기에 미련없이 돌아서 터미널로 향하다, 올라온 김에 들러보자 싶어 모교를 향했다. 썩 별볼일 없는 대학이라 애정이 있거나 특별한 추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봄의 기억을 잠시 더듬어보고 싶었다. 이제는 흔적으로만 아른거리는 지은이의 잔향을 되살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막상 캠퍼스에 들어서니 새삼 학교가 크게 느껴졌고 어디로 가야할 지 몰라 본능에 이끌려 과실을 찾아가보기로 했다.
 젊음이 북적대는 목적지로 가는 길 내내 불편한 시선이 뒤따라왔다. 한때는 나도 이 곳의 일부였는데, 그 동안의 삶이 나를 멀리도 데려다 놓았는지, 내가 이곳에 있으면 안 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온 감각으로 알아채고 힐끔댔다. 내가 다니던 학과는 서로 간에 그다지 교류가 활발한 공동체는 못 되었는데, 오늘은 무슨 행사라도 있는지 사람들이 북적였는데 분위기는 밝지 못했다.
 누가 죽었다나, 죽임을 당했다나, 추모제라도 열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친절하지 않았고 내가 과실 안을 기웃거리려는 순간 경비가 호통을 치며 달려와 나를 쫓아냈다. 경비의 언행은 지나칠 정도로 무례했고, 지나가는 그 누구도 내 편에서 그를 저지해주지 않았다. 그제야 나는 명확히 알았다,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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