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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연재/고양이 밥 (범죄, 미스터리)

고양이 밥 - (4)

by 구운체리 2021. 11. 21.

4.
 수를 만나기 전날 나는 사람이 죽은 것을 처음 봤다. 역겹고, 두렵고, 가여웠다. 나와는 다른 무언가라는 느낌이 강했다. 그때부터 였는지도. 원초적인 생존의 감각 이외에는 전부 죽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어떤 감성적인 씨앗들이 슬그머니 발아하기 시작한 것이.
 내가 사는 반지하 창문에 가뜩이나 좁은 볕들 틈을 큼지막한 덩어리가 가로막고 있는 것이 참을 수 없이 고까워 나가보니 날씨에 맞지 않게 얇은 속옷만을 걸친, 젊은 남성처럼 생긴 토막이 기괴하게 비틀린 채 놓여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한동안 인상을 찌푸린 채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결론은 어쨌든 ‘죽고 싶지 않다’ 였던 것만 기억이 난다. 지금 죽고 싶지 않다-였는지 저렇게 죽고 싶지는 않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죽고 싶지 않았다.
 저 몸에 남은 한 푼어치 값이라도 나가는 것을 꺼내오자는 생각과 경찰에 신고를 해야한다는 생각, 내 방에서 안 보이게 치우기라도 하자는 생각과 건들기도 싫다는 생각, 저건 어쩌다 여기에서 저렇게 끝이 났을까 하는 의문과 저런 것들이 끝끝내 도착하는 곳 그 아래 있는 나의 방을 생각하다 시간이 흐르니 그저 춥다는 감각만이 되살아났다. 가을도 끝물이었다.

 동네는 낯설게 북적였다. 폴리스라인을 세우고 경찰들은 소리지르고 간혹 지나가던 구경꾼들은 웅성대며 기웃대고 주민들은 그저 화가 나 있었다. 시체로 누워있던 낯선 이와 그 자리에 있는 이들의 차이라곤 그들이 만들어내는 소음 뿐인 것 같았다. 그 차이를 드러내 삶을 증명하려는 듯 소음은 끝간데 없이 짙고 서로 무연했다. 단잠을 방해받은 내가 방에서 짐승처럼 울부짖어도 위화감이 없었다. 연고 없는 죽음을 둘러싸고 다들 그저 짖어댈 뿐이구나.
 법의학적 지식이 전무한 내가 보기에도 자연사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주민들도 경찰들도 개의치 않는 심드렁함이 만연했다. 나 또한 그저 귀찮은 일에 엮이기 싫어 평소에 다니지 않던 길로 돌아서 편의점으로 향했고, 그 와중에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젊은 여자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 무렵 나는 고양이가 싫었다. 새벽녘의 울음소리가 거슬리는 것은 겨우 적응했지만, 불투명한 창틀 너머에서 누군가 챙겨준 밥그릇을 핥으며 나의 감옥을 내려다보는 눈빛은 때로 뒤쫓아온 죽음의 계시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내가 죽으면 나를 먹고 내가 되어 인간의 삶을 살아가려는 괴물처럼 느껴졌다. 아니, 이미 그렇게 된 것인지도 모르지. 삶이라는 감각을 잃어버린 내가 사람이 맞기는 한 걸까. 내가 먹어치운 나의 뼈는 어디에 묻혀있을까.
 나다니는 길에 몇 번 밥그릇을 걷어찼더니 언젠가부터 밥그릇이 보이지 않고 그저 울음소리만 남았길래 나는 밥그릇의 망령이 구천을 떠도는가 싶었는데 당연하게도 그 실체가 옮겨간 것 뿐이었다. 그 범인은 저 여자로구나.
 복합적인 감정의 결과물이었다. 담배 값이 아까웠고, 어제 본 시체가 징그러웠고, 그걸 보고 떠올린 나의 생각들이 역겨웠고, 고양이가 괘씸했고, 심술과 분노가 가득한 상태에서 여자는 약해보였고 길쭉한 지갑은 유혹이라도 하듯 핸드백 위로 삐쭉 솟아있었다.
 나는 걷는 속도를 높이지도 낮추지도 않고 그저 내 물건을 주워간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그것을 뽑으며 걸어갔다. 핸드백이 살짝 들렸다 떨어지며 여자에게도 내 심술의 파동이 전달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개의치 않았다.
 아무 계획이 없었다. 도로 빼앗겠다고 덤비면 어떻게 할 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힘으로 싸우면 내가 이기겠지? 멀리 있지 않은 경찰을 부른다면 감옥이라도 가야지, 나는 장발장이었다. 하지만 여자는 그저 마찬가지로 차분하게 말을 걸었다.

 “당신이죠?”
 그 목소리의 차분함이 나를 멈춰세웠다. 나는 얼어붙은 채 돌아보지도 못하고 식은 땀이 바람에 날려 으슬으슬해지는 몸을 움켜쥐고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친구들 밥그릇. 당신이 매번 걷어찼죠?”
 나는 그 무해하고 무심한 목소리의 주인이 내가 정체도 모르고 피해다닌 막연한 굴레를 움켜쥔 포식자라도 되는 듯 정신이 아득해졌다. 눈 앞이 하얘진다는 표현이 그저 비유가 아니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영문도 모른 채 된통 혼나고 웅얼대며 대답한 뒤 편의점에 도착해보니 지갑이 아직 손에 들려있었다. 
 누가 봐도 여자 지갑인 것을 내가 들고 있으니 담배를 계산해주는 알바생이 미심쩍다는 듯 바라보긴 했지만 오늘 새벽 사람이 죽어나가 노란 테이프가 붙은 동네에서 그런 것은 아무래도 대수롭지 않았다.
 나는 편의점 앞에 미처 접어두지 않은 간이 의자에 앉아 담배를 물고 방금 일어난 일을 복기해봤다.

 아무래도 미친 여자인 것 같아. 이런 험한 동네까지 기어들어와서 길짐승들 밥을 챙겨주는 것도 모자라 친구들이라고 부른다. 그 밥그릇 때문에 생기는 소음에 시달리는 나 같은 것은 어찌 되든 알바가 아니겠지. 그런데 또 나를 알아본다? 언제 지나가는 것을 봤나. 그러고는 한다는 말이 ‘당신이죠’라니. 아니, 애초에 이 지갑은? 뭐야 그 태연하게 동네 친구라도 만난 것 같은 말투는?
 그런 사람 앞에서 나는 왜 울어버릴 것처럼 얼어붙었나.
 돌이켜보니 내가 나의 뿌리가 잘려나간 뒤로 사람다운 대화를 한 것이 처음이었다. 끊임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 앞에서, 쏟아지고 채워지는 물류창고 안에서, 갓 올라가는 건물 뼈대의 철근 뭉치를 묶어올리며 나는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한 말 만을 해왔다. 지시받거나, 쫓기거나, 혼날 때, 그리고 일거리를 구하거나 방을 구하는 등 구걸에 가깝게 나를 팔아넘길 때가 아니면 나에게 말을 걸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피해다니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 미친 여자라고 대화의 목적이 아주 달랐던 것은 아니지. 고양이 밥그릇 걷어찬다고 따지는 게 목적이었으니. 하지만 그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사람 냄새가 전날의 충격으로 유약해져 있던 내 정신을 완전히 무너뜨렸나보다. 나는 그저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며 천천히 죽어가고 있었는데, ‘이렇게 죽고 싶지 않다’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그 시작으로 지갑을 돌려줘야겠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꽁초를 비벼 끈 뒤 고개를 들어보니 그 여자가 경찰과 함께 내 앞에 와 있었다. 경찰은 손에 작은 그물을 몽둥이처럼 메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꽁초를 도로 주운 뒤 지갑을 내밀었다.
 “안 썼어요.“
 그래 뭐 이런 방향도 나쁘지 않지. 봄이 오려면 어쨌든 겨울을 버텨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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