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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연재/바다에 빠진 목탁 (일상, 관계)8

바다에 빠진 목탁 - (2) 2. 결과적으로 생각보단 오래 사귀었지만, 진지하게 만날 생각도 없었고 스스로 만든 내 처녀성에 대한 환상에 취한 모습이 즐거워 보여 굳이 깨주고 싶지 않아서 멋대로 하게 뒀다. 2년 정도 사귀다 헤어졌는데 1년 반 쯤 되던 크리스마스 무렵 이 녀석이 드디어 직접 이야기를 꺼내더라. 자기 나이가 곧 스물넷이고 우리가 만난 지도 곧 연차로 3년차인데 가슴 정도는 보여 달라. 정 안 되면 보면서 혼자라도 하겠다. 연애 초기에 그랬으면 미친 새끼인가 싶어 바로 연 끊었겠지만, 함께 한 시간 동안 이 친구가 변해온 모습들과 나를 만나기 위해 포기한 것들을 알고 있다 보니 그마저도 갸륵하게 보였다. 밤의 제왕이 신부님이 되었다고 떠나간 친구들이 한 트럭이라고. 근데 잠깐 짚고 넘어가자면, 내가 포기하라고 한 것 .. 2021. 11. 11.
바다에 빠진 목탁 - (1) 1. 나는 쉽게 흥분하는 편이다. 좀처럼 감정을 주체하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동시에 무던한 편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종종 내 뒤에 서 계시는 부처님이 보인다고 하기도 한다. 목탁을 두들기는 것과 목탁으로 두들기는 것 모두 나의 페르소나이다. 나의 목탁은 내 심장소리에 맞춰 무엇이든지와 끊임없이 부딪히기 위해 태어난 나의 분신이자 나의 정체성, 나의 사랑. 비유법이 아니라 실제로 나는 결혼하기 전까지 나만의 목탁을 행운의 부적처럼 침대 맡에 두고 살았다. 실제로 두들긴 적은 많지 않았지만. 참고로 나는 교회에 다닌다. 종교적 의미를 담아 두들긴 적은 없다. 내 지랄 맞은 성격에 대해 조금 자세히 설명하자면, 나의 괴벽은 파도에는 무던하지만 잔물결에 미친 듯이 요동치는, 비유하자면 흔들림의 총량을 보존하.. 2021. 1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