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단편 연재/주사위 놀음 (범죄, 일상)8

주사위 놀음 - (A-1) A-1. 낭만 오피스텔 705호에는 루저가 산다. 생긴 게 썩 나쁘진 않은데 제대로 된 일을 하는 것 같지 않고 잘 씻고 다니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사람이 풍기는 기운 자체가 좀 어둡다고 해야하나? 가끔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거나 하더라도 혹시나 눈이 마주칠까 움츠려든 어깨와 갸냘프게 참고 있는 숨소리가 신경쓰일 정도로. 내가 그를 특별히 불편하게 만든 건 아니냐고? 나도 모르게 그런 적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적어도 내 보편적인 첫인상이 공격적인 편은 아니라고 자부할 수 있다. 체격이 좋은 편이긴 하지만 팀에서 주로 맡는 업무가 손님 접대인만큼, 나는 사적인 영역에서도 친절함과 선량함을 드러내려고 일부러라도 애쓰는 편이다. 물론 나는 705호 녀석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605호에 살기 때문이다.. 2022. 5. 9.
주사위 놀음 - (0) 0. 아인슈타인은 말했다, 신은 주사위 놀음을 하지 않는다고. 누군가 대답한다. 하는데요? 양자역학이 등장해 입지를 다지며 고전 과학의 수많은 개념들이 재정립되었지만, 아무래도 중요한 건 불확정성 그 자체에 대한 것일 듯하다. 모든 것을 관통하는 인과의 법칙이 세상을 움직이고 인간은 다만 관측할 역량이 되지 못할 뿐이라고 믿던 근본적 신앙은, 불확정성 그 자체가 세상을 움직이는 원리의 일부라고 믿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의 신은 죽었고, 살아있다면 어쨌든 주사위 놀음은 할 것이다. 그 누구에게나 재미있는 놀이이므로. 불확정성이 세상의 원리인지는 모르지만 보편적 재미의 요체인 것만큼은 확실하다. 힘이 좋은 사람, 머리가 좋은 사람, 수완이 좋은 사람이 신의 주사위 앞에 지저분하게도 엮이게 .. 2022. 5.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