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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영화 리뷰

(리뷰) 치히로 상

by 구운체리 2023. 9. 20.


내 이름은 치히로, 섹스 샵에서 일하다 왔습니다.

나는 길고양이를 돌본다. 이름은 마담. 지금은 벤또집에서 일하기 때문에 먹을 것을 챙겨주기 수월하다. 마담은 길고양이면서도 사람 손을 타서 털이 건강하게 수북하고 살도 토실토실하다. 평상에서 담벼락으로 뛰어오르는 모습을 기꺼이 카메라에 내어주는 그런 고양이.
어느 퇴근 길에 동네 못된 아이들이 집 없는 길노인을 못살게 구는 장면을 보았다. 나는 길노인 또한 돌보았다. 가게에서 파는 벤또를 건네주고 집에 데려가 씻겨주었다. 말끔해진 노인은 말없이 웃으며 고맙다고 고개를 숙이고는 다시 길노인으로 돌아갔다.
그후로도 나는 노인에게 벤또를 챙겨다주었고, 노인은 어느 날 자신이 머무는 아지트를 소개해주었다. 폐건물 어느 층에 아늑한 아지트에는 만화책으로 가득찬 서재와 쇼파가 있었다. 머물 곳이 있다니 안심이야. 그러나 그후로 노인을 만나기는 어려웠다. 한참 뒤 우연한 골목에서 대자로 누워 죽어있는 노인을 발견한 날, 나는 뒷산 둔덕을 삽으로 파 그를 묻어주고 몸을 씻었다.
문득 외로웠다.

나는 성을 파는 일을 했었다. 동네사람 모두가 그것을 안다. 어떤 이는 뒤에서 수군대고, 누구는 오랜 친구처럼 나를 반갑게 대하고, 때론 신기한 동물보듯 멀찌감치 떨어져서 나를 관찰한다. 나는 그들 중에 누구도 모른다. 안다는 건 뭘까.
눈을 보면 사람을 알 수 있다. 내 눈을 바라보는 사람의 눈을 바라보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관심과 밥이 필요한 어린이, 이해와 유대가 필요한 모범생, 만화책과 과묵한 말벗이 필요한 소녀, 치유와 섹스가 필요한 남자.
나는 그들 모두의 친구가 된다. 나로 인해 그들이 위안받음으로 나는 위안받는다. 어떤 손님들을 대할때 내 마음이 그랬을지 모르지. 지금 만난 친구들에게 다른 점이 있다면, 나로 인해 그들은 서로에게 위안이 되어준다는 것. 이제 내가 갑자기 없어져도 그들은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나보다 어른인 친구들도 있다. 내 진짜 이름따윈 묻지 않았던 전 사장님이자 물고기를 좋아하는 포주아저씨. 눈이 멀어 벤또집 일을 내게 넘겨준 아주머니. 어쩌면 아저씨는 내 친아빠가 아니었을까, 사람들은 내가 아주머니 딸인 줄로 알겠지.
나는 친부가 누군지 모르고 친모에 대해서는 말하고싶지 않다. 며칠 전 그사람이 죽었다고 남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렇구나, 했다. 며칠동안 아무렇지 않았고, 하루정도 죽은 듯이 누워있다가, 사장님의 차를 타고 무덤에 찾아가 꽃을 두었다. 마침표를 찍는 마음으로.
내 어릴 적 손잡아 줄 사람이 필요했을때 내밀어 준 이의 이름은 ‘치히로’였다. 치히로 상은 건강하고 강한 미소를 지닌 어른이었다. 그러니 나도 그녀의 이름으로 그녀와 같은 길을 걸으며 힘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내가 받은 공식적인 행정 상의 이름을 밝히는데에 부끄러움은 없다. ‘아야’. 그렇지만 내 이름은 ‘치히로’다. 뜻하지 않게 태어났지만, 짓지도 않은 이름으로 평생 불려야해?
가장 친한 친구도 내가 맺는 관계성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사장님을 사랑하고, 그가 내 아빠일 수도 어쩌면 아빠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그와 섹스를 할 것 같지 않다. 내가 가진 애정의 모양이 그래서, 그런데 사장님을 사랑하게 된 친구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어쩔 수 없지.
정말 깊숙하게 바닥인 날에는 나에게 온전히 무해하고 순전한 선의만을 가지고 찾아온 친구들과도 어울릴 기력이 없다. 내가 돌연사하지 않았음을 알려 안심시키는 것이 그들의 호의에 대해 되돌려 줄 수 있는 최선의 대응이다.

어쩌면 나는 다른 행성에서 왔을지도. 사실 우리 모두가 그렇지 않나? 당신은 아니야? 아무튼 나는 머물 수 없는 사람이다. 좋은 사람들,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 나로 인해 좋아진 인생을 살게 된 사람들을 거기에 두고 또 새로운 곳으로 날아가야만 한다.
정말 나를 이해해 준 어른, 아주머니는 내 선택을 응원해주었다. 눈이 멀어 마주볼 수는 없었지만, 나는 그녀를 알 수 있었다. 그녀도 나를 알았다. 그녀는 나를 알아주었고, 안아주었다. 우리는 서로를 안아주었다.
나는 그녀에게 도토리를 선물했다. 어릴 적 처음으로 건네봤던 선물이 도토리였었지. 이제 그녀는 마담을 돌봐준다.
나는 목장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내 이름은 치히로, 벤또집에서 일하다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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