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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영화 리뷰

(리뷰) 바바리안

by 구운체리 2023. 9. 18.


내가 에어비앤비로 빌려 묵기로 한 집에 이미 누군가가 들어와있다. 상대는 홈어웨이로 같은 집을 빌렸다고한다. 명백한 더블부킹인데 주인장은 연락도 안되고 동네 사정상 달리 방법도 없다. 불편한 동거를 해야지. 보통의 스릴러 영화라면, 이렇게 또래 성인남녀를 만나게 했으면 sexual이건 violence건 19금의 에센스를 곧장 뽑아냈을 것이다. 클리셰적으로 멍청해서 당할 수 밖에 없는 여주들과 달리 필요한 모든 방어조치를 최선을 다해 취하는 여주, 그럼에도 직업적으로 천생연분인것만 같은 남주, 잠깐 서로 입맛을 다지지만 아주 신사적인 방향으로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은 하룻밤. 여기서 영화의 범상치 않음을 눈치챘어야 했을까.
요체가 조금씩 등장할때 난 이 영화가 ‘바바둑’과 ‘기생충’의 묘한 교집합의 영역에서 만들어진 아류작이 아닐까 넘겨짚었다. 이름도 비슷한 ‘비바리움’은 얼추 오마주했을 수도 있다고본다. 갑자기 색감이 쨍해지는 장면이 비바리움을 보지 않았더라도 그만큼 쎄하게 느껴졌을지는 모르겠다.

이 영화는 젠더 이슈를 다루는 영화다.

빌 스카스가드가 연기한 ‘키스’는, 스릴러 영화 특유의 문법을 감안하고 보면 긴장을 놓지못할 쎄함이 있지만, 돌이켜보면 마냥 선량하고 건실한 청년이었다.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만 해’라는 불필요한 오만을 부렸다는 점을 제외하면 흠잡을 구석이 없다.
‘혹시 모르니 니가 내 뒤를 봐줘’라는 안전장치를 해뒀으니 순도 100% 자기애에 사로잡힌 얼간이라고 부를수도 없다. ‘남성성’으로 묶는게 맞나 싶지만, 아무튼 부정적이지 않은 의미에서의 어쩌면 가장 완벽한 신세대의 ‘남성다움’이 아닌가 싶은데, 결국 그 ‘남성다움’으로 인해 꺾여버렸다.
AJ는 무고를 주장하며 강간혐의를 받고있는 셀럽이다. 무고 사건 자체에 대해 영화는 직접적인 근거를 내놓지 않는다. 가장 신뢰하는 친구한테도 그날의 일은 상호 합의 간에 일어났다고 할만큼 본인은 그렇게 믿고 있다. 혹은 그렇게 믿고 싶어한다. 정황적인 증거만을 놓고보면 AJ의 유죄를 확신하기는 쉽지 않다. AJ 본인조차도 헷갈리기 때문에. 본인이 진짜 나쁜 사람인지, 좋고 나쁜 상황들에 휘말린 그저 그런 사람인지.
하지만 그런 인간을 영화는 두고보지 않는다. 극한의 상황에 몰아넣고, 어떤 선택을 내리는지 지켜본다. AJ는 살아남기 위해 무고한 인간을 옥상에서 집어던지고는, 내려와서 살아있는 것을 보고 회개를 시도하는 나약하고 비겁한 인간이다. 그리고 그에 걸맞는 최후를 맞는다.
프랭크는 전근대적인 보수주의의 상징이자 근원적인 원흉이다. 동네가 망해 모두가 마을을 떠날 때 자신만의 작은 왕국을 세우고, 지옥의 왕이 되었다. 그러나 생명의 사슬은 모체를 매개로 이어지기 때문에 그는 결국 병들고 약해져 아무런 권세를 누리지 못하는 또하나의 지푸라기가 되었을 뿐이다. 종말의 전조를 앞두고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침입자가 아닌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겨눔으로써 도피하는 일 뿐이었다.
안드레는 모든 벤다이어그램의 바깥에 위치한 인물이다. 수동적이면서도 확고한 인정을 지녔지만, 어쨌든 그는 여성의 세계에 위협이 되는 ‘남성’이다. 언제나처럼 방관자로 머물렀다면 괜찮았겠지만, 모성의 사슬을 건드린 순간 먼지처럼 벽을 부수고 나타난 페미닌-워리어에게 오체분시를 당할 운명인 것이다.
테스의 신고를 개무시한 경찰들을 포함해 그렇게 모든 남성 인물들이 쓰임을 다했다. 사슬의 주체인 여성들끼리 문제를 해결해야한다. 비상식적인 괴력으로 키스의 대가리를 으깨며 의도적으로 등장한 축 처진 두 개의 유방. 결국 이 영화의 정체성이다.

야만인, 그리고 모성. 야만스러운 모성. 모성의 본질이 야만이라는게 아니라, 야만의 본질을 심은 건 남성의 짓이더라도 야만의 유전 형질을 타고난 모성의 연쇄를 누가 어떻게 끊어낼 것인가. 그게 왜 어려운가. 바바리안의 마지막 눈을 봐봐. 그 눈빛을 마주보면서 총알을 박아넣을 수 있겠냐고. 할 건 해야지. 근데, 그래서 어렵다고. 그래서, 이 빌어먹을 악순환이 끊기지를 않는거라고.

킬링타임인줄 알았는데, 시작부터 끝까지 졸라 잘 벼뤄진 영화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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