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뷰/영화 리뷰

(리뷰) 코코

by 구운체리 2023. 4. 14.

미구엘 아니고 코코

그림이 이쁘고, 노래가 괜찮고, 이야기가 구성적인 측면에서 평타 이상 치고, 멕시코 특유의 문화적 색채가 독특하고 진하다. 디즈니 애니메이션답게 전반적으로 무해하고 귀엽다. 그것만으로 일단 한번쯤 봐볼만한 괜찮은 영화가 되기는 한다.
그런데 구성을 제외한 디테일한 요소들이 납작하고 직선적이다. 좋게 말하자면 쉬운 영화라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쉽게 만든 영화로 보인다는 것이다. 갈등의 기승전결, 그것이 해소되는 방식, 복선과 회수, 극을 전체적으로 관통하는 핵심 가치 등이 다소 옛 것 같다. 탈혈연의 대안 공동체 중심으로 사회가 재편되는 흐름에 역행하는 강력한 가족주의라.
위기가 극화되는 순간에서 악역은 치밀하지 못한 주제에 너무 설치고 주인공이 솟아날 구멍은 너무도 넓으며 주변 소품으로 배치된 대중은 너무 방청객이다. 단테 너…? 이게 몇년도 영화라고?
멕시코라는 문화적 배경의 특수성에 기대어 이 단점들을 이해해보려고 잠깐 시도해보았다. 혈연 기반의 연대를 강조하고, 개개인의 사치와 낭만보다 실물가치를 생산하고 강인한 생활력을 스스로 갖추는 것을 장려하며, 주머니를 뚫고 나오는 송곳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일이 어느 집단에서는 보다 중요할 수도 있다. 다름이지 결코 틀림이 아니다.
게다가 낭만과 사치 그 자체를 폄훼하거나 부정하고 있지는 않으니까. 누구나 그것을 사랑할 수 밖에 없고 가슴 속 한켠에 품고 산다고 고백하고 있으니까. 낭만이 갖는 기적의 힘으로 시간을 달리는 그림을 넣어두었으니까.

그래도 여전히 일개 개인의 트라우마가 만든 정책이 제왕적이고 수직적인 계보를 타고 맹목적인 공리가 되어 폭력적인 방식의 강요를 정당화하는 것은 불편했다. 이 이야기 핵심 갈등의 원인이고 따라서 꿈을 꾸는 소년이 상대해야 할 진짜 빌런의 요체가 되어야한다고 생각했다.
원인을 제공한 개인이 세계관 내에서 너무도 강력한 세력과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여태 해결을 않다가 어느 우연의 순간에 그다지 큰 감정적 위기도 없이 극복해버리는 서사는 다소 위험하다. 그러한 개인의 변덕에 모두가 군말없이 곧바로 일평생 지켜오던 신념을 뒤집는다라.
선한 자가 강한 것이 아니라 강한 자가 곧 선이며, 그가 지닌 선함의 보편성이 나의 세계와 충돌하지 않기를 기대하는 수 밖에 없다는거잖아.

그런데 후반부를 지나며 주인공이 ‘소년의 꿈’에서 보다 상위 계층으로 넘어간다. 튀는 개인과 묶으려는 집단 사이의 갈등이 아니라, 온당히 기억되어야 할 것과 그것을 지우려는 거대한 폭력 사이의 갈등. 그렇다면 악역이 거창하고 직선적이며 멍청하게 그려질 이유가 충분하다. 시대를 관통하는 거대악에 세밀한 인간성과 입체성을 부여하는 일은 썩 재미있어 보이지 않는다.
영화의 제목이 ‘미구엘’이 아니라 ‘코코’인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이제 아흔을 바라보며 기억이 조금씩 흐릿해져가는, 난리통에 황해도에서 홀로 내려오신 우리 할아버지도 종종 그때 ‘나중에 보자’며 헤어진 어머니가 보고싶다는 말씀을 하신다. ‘보고싶다’와 ‘기억해줘’는 서로 화답하며 공명하는 울림이다.
망자의 세계를 다루고 기억에 대한 주제의식이 강조되는 만큼 그런 분들 혹은 그 가족들을 위한 위로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훨씬 감동이 크다. 기억해줘, 기억할게, 우린 다시 만나 영원히 함께할거야. 방해하는 그 무언가가 아무리 크고 강해보여도 더 짱센 무언가가, 혹은 여전히 간직할 사랑과 조화의 힘이 손쉽게 물리칠테니까.

다만 그런 것 치고 망자의 세계가 너무 현생의 확장처럼 그려져있는데다 그리움과 아련함에 대한 전반부의 빌드업이 부족했던 느낌이라 아쉬웠다. 온정과 정의로 영생의 보답을 누리는 곳이 아니라, 불운과 대중의 우매함으로 인해 존재가 온전히 지워질수도 있는 삶의 허무함이 반복될 수 있는 곳. 여전히 욕망의 충족을 보장받지 못하고 힘에 의한 계급 차이가 존재하는 그런 곳.
되려 그런 현실성 때문에 세계관이 보편적인 설득력을 갖고, 그곳에서 다시 만난다는 약속이 헛되지 않게 느껴질수도 있으려나. 에덴 동산에서 하느님의 몸이 되어 함께 하자는 관념적인 위로보다는 직관적이니까.
나는 개인적으로 전후반부 주제의식의 급전환이 몰입에 방해가 됐다고 느꼈지만, 관점에 따라서는 두마리 토끼를 슬쩍 다 잘 잡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리뷰 > 영화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리뷰) 바바리안  (0) 2023.09.18
(리뷰) 보 이즈 어프레이드  (0) 2023.09.13
(리뷰) 본즈 앤 올  (0) 2023.04.12
(리뷰)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  (0) 2023.04.10
(리뷰) 캐롤  (0) 2023.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