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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영화 리뷰

(리뷰) 캐롤

by 구운체리 2023. 4. 7.

기꺼이 나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도록

토드 헤인즈 감독이 사진작가 사울레이터의 작품들을 보고 영감을 받아 만든 퀴어-로맨스영화이다. 다양성이 인정받고 존중받지 못하던 시대의 레즈비언들을 주인공으로 삼고있다.
감독은 소수자의 시선을 빌어 당연한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사랑의 성질을 조명한다. 무너지지도 무너뜨리지도 않고 위태롭지만 꼿꼿하게 균형을 잡는 캐롤의 기개를 빌어 자아를 지키기 위한 투쟁을 지지한다. 세상의 모든 악하지 않은 어른들을 응원한다. 자뭇 따뜻하다.

사울레이터의 시선은 은근하면서 응큼한 구석이 있다. 구석에 웅크려 몰래 쳐다볼것만 같지만 숨어있는 모습이 꿩이 숨바꼭질하듯하여 피사체가 위협을 느낄 것 같지는 않다. 따라서 노골적으로 사적인 영역에 대한 침범을 시도하는 셈이며, 상대가 받아들일 것이냐 말 것이냐의 문제만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사울레이터의 사진을 보면 초점을 직접적인 대상이 아닌 주변의 것들에 두어 의도적인 아웃포커싱이 잡혀있거나, 창문이나 거울 혹은 비에 젖은 렌즈를 사이에 두고 대상을 잡아낸 작품들이 많다. 짝사랑의 시선 혹은 갓 피어오른 풋풋한 연인의 서로를 향한 장난스러우면서도 조심스러운 관심을 닮아있다고 생각할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색의 선명함은 잃지 않는데, 특히 빨간 우산이 핵심 소품으로 사용된 사진이 유명하다. 캐롤이 빨간 코트를 입고 비내리는 거리를 지나가는 어느 장면은 스틸컷으로 자르면 사울레이터의 사진과 착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겠지만, 퀴어성을 더함으로 인해 둘의 사랑은 ‘당연한 것’에 대한 사회적 통념의 렌즈에서 바깥으로 밀려난 것이 되었다. 선명하다면, 안개 속에서도 색을 지켜낼 수 있을 지 몰라.
캐롤은 스스로의 색을 지키며 이 험한 세상과 공존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을 걸었다. 잃게 되는 것들을 감내하면서. 그 끝에 암시된 해피엔딩이 얼마나 지속가능할 지 알 수는 없다.
허나 우리가 캐롤의 선명한 색에 매료되었고 그 색으로 그녀를 기억할 것임은 분명하다. 그 분명함은 영원하다. 예술이란 그런 식으로 필멸자들에게 위안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