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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영화 리뷰

(리뷰)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by 구운체리 2023. 4. 3.


내가 있는 이곳의 모든 것, 내가 있는 모든 곳의 힘을 한꺼번에 전부 쏟아 대혼돈 속에 너를 위해 나를 던져볼까 해

‘통계적 개연성’이 극도로 낮은 시퀀스들의 연속인 초반부 폭풍은 미친 사람의 뇌를 까뒤집어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환각성 마약에 취해 본 것들을 어디 적어뒀다가 그대로 연출한게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빌런의 본질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부터 잡소리에 구심점이 생기더니 감정을 짓누르는 무게가 묵직해졌고 그러면서도 광기는 멈추지 않았다.
클라이맥스에서 돌과 같이 정적. 비트드랍 미쳤다.
영화에 대체 무슨 미친 짓거리를 해논거야?

에블린은 사는게 힘들다. 가부장적인 아버지는 딸로 태어난 그녀에게 올바른 애정표현을 하지 못했고, 가난한 사랑을 쫓아 떠난 그녀를 쉽게도 내쳤다. 도망치듯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었다. 남편은 다정하지만 철딱서니가 없어 삶을 운영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고, 세무당국은 특수병동의 수간호사처럼 그녀의 영수증 더미를 묶어 그녀 사업의 목을 밧줄처럼 조여왔다.
딸이라고 하나 있는 건 다 커가도록 자기관리도 안되고 집안 운영에 협조적이지 못하다. 성에 차지 않는 레즈비언 애인을 내가 다 이해해준다는데, 제 할아버지 앞에서만큼은 거짓말을 해달라는게 그리 어려운 일인가. 아, 아버지는 늘그막에 건강이 좋지 않아 효녀인 에블린이 미국으로 모셔와 함께 살고있다. 흔한 아시안 장녀들의 stressful한 삶을 견뎌내는 중인데, 남편은 연말파티를 앞두고 이혼서류를 준비 중이다.
인생이 X발 제정신으로 버티기엔 너무 지랄맞다. 진짜 미친듯이 열심히, 올바르게 살았는데.
어디서 잘못된걸까.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그로 인해 갈라진 멀티버스의 나는 행복했을까.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무언가가 어딘가에 있었을까.

에블린의 딸으로 사는 조이의 삶도 행복과는 거리가 있다. 엄마의 싫은소리가 자기중심적인 편광을 거치느라 그릇된 방식으로 표현된 애정임을 알기에 엄마를 미워하지는 않는다. 엄마는 강인하고 올곧은 사람이고 가족을 위해 몸과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음을 알고 있다.
엄마와 할아버지의 관계보다는 한단계 진보했다고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자존감 갉아먹는 일이 괜찮아지는 것은 아니다. 실상 딸의 성적 취향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지만, 좋은 사람인 척 하느라 받아들이는 체를 하고 있다는게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조이는 자기 자신으로 존중받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고 에블린은 자식의 인생에 뜻하지 않게 가해자가 되었지만 그렇다는 사실을 인지조차 못하고 있다. 어쩌면 자신의 삶을 조금 더 어렵게 만든 원인제공자의 일부로 조이를 탓하고 있을 수 있다. 조이는 자신의 가해자를 영영 미워할수도 없이 되려 죄책감마저 갖고 살게 될 것이다. 이해받지 못한 채.
그렇게 우울증이 찾아오면, 사람은 광기의 영역으로 도망친다. 아니, 밀려난다. 그곳에 뭐가 있어서가 아니라, 없어서. 통용되는 질서의 개연성에서 배척당한 인간이 찾으려는 무개연성의 영역에는 광기, 무, 그리고 영원한 평안이 있다.
광기의 수요 중에 우울이 차지하는 비중은 꽤 크다.

갈등을 해결하려면 강한 의지도 선한 마음도 능력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바라보는 것이 무엇보다 필수적이다.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것,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나서야. 아버지의 표현하지 못했던 사랑과 남편의 무해한 다정함을 알 수 있다. 자신의 편협한 욕심이 딸에게 우울함을 물려주었으나, 그 모든 것을 제쳐두고서도 딸을 사랑한다고 진심으로 말할 수 있었고, 그 말이 가서 닿을 수 있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고, 겉보기에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에블린은 여전히 자신의 기준에 맞춰 딸에게 잔소리를 할 것이다. 하지만, 이젠 어떤 것이 자신을 위한 것이고 어떤 것이 딸을 위한 것인지 보다 잘 구분할 수 있다.
아버지에게 딸의 애인을 소개하는 일은 딸이 가진 고유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는 일. 딸의 꼬락서니를 못마땅해 하는 건 나의 주관을 드러내는 일. 어차피 서로 다른 타인 둘이 서로를 완전히 받아들이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거였어. 하지만 부딪히더라도 서로 자존의 영역을 알고 중심을 잡은 상태라면 무너지지 않을 수 있다.

그렇게 어떻게든 함께라면 나는 좋겠다, 너를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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