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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영화 리뷰

(리뷰) 탑건: 매버릭

by 구운체리 2022. 9. 14.


Should let go, but not today, all that matter of time.

‘진짜 광기’의 예시로 돌아다니는 톰 크루즈의 짤이 너무 적절해서, 오프닝에서는 ‘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얘는 결정을 마친’ 그 표정 밖에 안 보였고 ‘그런 표정 좀 짓지말라’는 대사가 참 절묘하게 들렸다. 진짜로 결정을 마친 미친 사람이 ‘포드 vs 페라리’를 찍는 장면, 직후에 둥 떨어진 템포로 귀가 먹먹한 장면. 이 영화는 무조건 좋은 음향이 갖춰진 영화관에서 보는게 맞았다.
원조 탑건을 안 봤는데, 봤으면 이것보다 더 재미있었을수도 있으려나? 그게 가능한 일인가? 이 영화는 올드 스쿨의 후속작답게 온갖 올드 스쿨다운 서사기법을 조금의 트위스트도 없이 가져다쓰면서 그 맛의 정수를 뽑아낸다. 너무나도 고전적인 복선들 덕분에 영화를 처음 관람하는거지만 이미 엔딩을 보고 명장면에 특히 집중해 재관람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명작은 그 결말과 과정을 다 알더라도 다시 찾게되는 감동을 선사한다고 했던가. 역시 그렇다. 결말이 보이는게 뻔하다거나 김이 새는 느낌이 아니라, 응당 그래야 옳게 된 영화지, 라는 생각으로 더더욱 중요 장면에 감정을 집중해 몰입의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었다. 심지어 중간중간 쉬어갈 수 있는 장면들을 배치한 덕에 완급조절도 완벽해서 지치지도 않았다. (정병길 감독은 보고 좀 배워줘라 제발)
음악도 좋고 영상미도 좋았는데, 그래봐야 올드스쿨이 아닌가, 21세기에 무엇이 특별하기에 이 단순한 영화가 그렇게까지 심금을 울렸나 생각해봤더니, 역시 ‘time’이다.
극 중에 ‘time’이라는 단어는 반복해서 강조된다. 중요한 건 ‘시간’이다, 라고. 더 빠르게, 더 짧은 시간에. 불가능해 보이는 2분 30초 미만의 벽을 뚫는 것. 직관적인 도전 목표가 정해지고 그 언저리에서 한계를 시험하는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드라마는 기본적인 감동을 깔고간다. 사람들이 올림픽에 열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어로는 동일하게 ‘time’이라는 단어를 쓰지만, 거시적인 스케일이 되면 한국말로는 ‘세월’으로 번역하는 것이 보다 자연스럽다. ‘세월’은 이 영화의 또다른 중요한 조미료다. 탑건이 톰 크루즈를 주인공으로 30년도 훌쩍 지나 재개봉했을 때 그 사실만으로도 사람들이 열광한 이유. 응답하라 시리즈에 사람들이 열광했던 이유. 인간이 극복하려 도전하는 또다른 시간의 한계는 세월이다. 대를 이어 전달되고 전승되는 우정과 인류애의 연결고리는 세월을 이겨내고 영속적인 성질의 벅참을 선물해준다.
루스터와 매버릭이 처음 몇마디를 나눌때부터 짐작할 수 있었고, 비행기에 올라탈 때에는 확실하고 구체적으로 그려진 감정선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동을 줄 수 있는 건 그런 이유에서인 것 같다. 시간은 직선으로 흐르지만 우리의 인식의 범위는 거기에 매여있지 않다는 것을 곧장 증명해내기 때문에.

인간은 시간을 극복할 수 있다. 그래서 과거를 놓아줄때가 되었음을 알고 있는 노장이더라도, 그게 오늘은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다. 생각따윈 하지 않고. 적어도 영화에서만큼은 그 모든 가능성들을 실현시켜 보여줄 수 있다. 그 맛에 영화를 본다.

나는 무턱대고 대책없는 해피엔딩 남발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무턱대고 그래야만 하는 영화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 영화가 그렇다. 이 영화는 무턱대고 몇번이고 다시 봐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