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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영화 리뷰

(리뷰) 밈 전쟁: 개구리 페페 구하기

by 구운체리 2022. 8. 13.

혐오 진영으로부터 빼앗긴 언어 되찾아오기 vs 4chan (cf. 일베, 2ch)

우리나라에서도 종종 쓰이고하는 개구리 캐릭터 meme의 모국 문화권에 이런 사정들이 있었는지는 처음 알았다. 이름이 페페인것도, 만화 주인공이라는 것도, 그 뒤에 (당연하게도) 저작권자가 존재하는지 조차도. 
9GAG나 레딧 같은데서 불특정 유저들이 그리기 시작한 캐릭터가 퍼진 것이라 대충 짐작했었다. (하기사 케장콘에도 저작권은 있지) 트럼프가 출마한 대선 시기와 맞물려 대안-우파 진영에서 혐오의 방식으로 캐릭터를 착취하여, 이 개구리가 혐오의 상징이 되었다는 것 또한 처음 알았다. 4chan이 그런 성향의 커뮤니티인지도.
보는 내내, 아니 원작자 당신이 선량하고 올바른 예술인인 건 알겠는데, 당신네는 그 유명한 ‘미키마우스’의 나라가 아닌가, 왜 저작권 보호를 적극적으로 주장하지 않았나 궁금했는데, 후반부 장면에서 법적 공방으로 시비를 다투는 일이 제법 큰 심신의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이라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디즈니야 회사 단위로 움직이니까 괜찮겠지만, 개인의 창작 캐릭터가 이토록 시대적 스케일의 사건에 휘말리는 일은 아주 드물테니까. 하지만 이제라도 그 방어진이 뚜렷하게 세워지고 올바르게 작동하고 있다니 다행인 일이다.
사람 사는 모습들이 다 비슷하다지만 다큐에서 비추는 4chan 유저들의 행동 양식이 우리나라 일베나 일본의 ‘재특회’와 놀랍도록 닮아있었다. 이제는 그들이 거리로 나와 직접적인 행동들을 하기 시작했다는 점도, 그 근간에 알 수 없는 자부심에 가득찬 민족주의적 성향에서 비롯한 박탈감이 자리잡아 있다는 것도.
미국에 혐오의 표현으로 사용되는 언어와 심볼 등을 정리해 기준으로 알려주는 연맹이 존재한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는데, 특정 언어 혹은 캐릭터에 ‘혐오’의 이름표를 붙이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고민해보게 된다. 
Meme이라는 단어는 리처드 도킨스가 생물학적 gene에 대응되는 사회 문화적 유전자의 개념으로 제안한 개념인데, 밈이 사회적으로 유전자 역할을 한다는 비유에 동의한다면 부정적인 에너지와 전파력을 가진 밈들을 구분짓고 검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하나의 가능한 주장이다. 한편, 그렇게 공식적으로 인정을 함으로 그들에게 분명한 언어를 내어준다는 것 또한 가능한 주장이다.
문화적 전쟁이라는 표현이 결코 과장되지 않았다. 언어라는 영역을 놓고 사상에 관한 적을 상대로 안전거리를 유지할 것인지, 충돌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그들이 출몰하는 땅에 우리의 것들을 지어 우리의 땅을 지켜낼 것인지에 대한 전쟁이다. 다큐에서 언급했듯 그들의 수법은 교묘해서 ‘농담’이었다거나 ‘그런 뜻은 없었다’는 식으로 교묘하게 피해나간다. 감성의 영역을 건드리는 공격을 이성의 영역에서 대응하는 일은 제법 까다롭다. 민감하게 촉각을 세우고 정교한 대응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페페의 경우 기원과 소유권이 분명해 비교적 깔끔하게 해결이 되었고 근래에는 홍콩의 민주주의 시위의  상징으로 사용되기도 했다니 사람 일 알 수 없다. 하지만 밈의 세계는 그보다 복잡하다. 특히 혐오가 만연한 요즘에는 더더욱. 우리는 이미 수많은 언어를 빼앗기고 있다. 나는 그 언어의 영역을 지켜야 한다는 쪽이지만, 지키는 싸움은 다큐에서 보듯 쉽지가 않다.
한 예로 내 주변에 ‘오빠’라는 단어가 남성의 젠더우월감 혹은 그런 욕구를 상징적으로 담고 있는 맥락의 사례들이 불편하여 ‘오빠’라는 단어를 본인의 삶에서 격리시킨 친구가 있다. 문제의식에도 공감하고 그 친구 개인의 언어 세계관을 내가 판단할 필요도 생각도 없지만, 그것이 당연하고 올바른 대응 방식이 되어 보다 사회적인 범위에서 보다 많은 언어들을 빼앗긴다면 무척 슬퍼질 것 같다.
극 중 원작자의 #savepepe 캠페인처럼, 실패하더라도 언어의 수복을 위한 싸움의 전략들을 갖추어나가는 시도들이 필요하다. ‘블랙클랜스맨’에서 다루었듯, 익명 뒤에 숨은 악랄한 루저들을 물리치는데 가장 효과적인 하나의 전략은 그들이 얼마나 한심하고 추잡한지 모두가 알게끔 드러내는 것이었다. 모두가 모든 싸움에 적극적으로 싸울 수는 없다. 다만 일상의 영역에서 변화시킬 수 있는 습관이 무엇인지 고민해볼 수 있다.
가해자에게 영웅서사를 부여하지 않으려는 의식적인 언어 정제의 습관 또한 그런 맥락에서 필요한 전략이며 우리 사회가 진보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선량한 개인의 변화와 연대를 통한 지속이 사회를, 나아가 세상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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