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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영화 리뷰

(리뷰) 경관의 피

by 구운체리 2022. 8. 14.

 

회색지대 경계선에서의 아름다운 동행

양산형 한국 언더커버 느와르 중에 나름 포지션을 독특하게 잡은 작품인 것 같다. 핵심 플롯을 이어가는 인물들을 끝까지 회색지대에서 어느 한 쪽으로 몰아붙이지 않은 채로 극을 마무리해 두어서 오히려 깔끔한 느낌이었다. 그것도 현실적인 층위에서 인간의 이중적인 본질을 비추어내느라 회색지대에 둔 게 아니라, 아주 판타지스러운 이야기의 설정만으로 만들어낸 회색지대라 더더욱.
동수, 강윤, 민재로 이어지는 계보에서 그들의 선택과 행동들이 마냥 옳거나 그르다고 하기는 어렵겠다. 다만, 그들의 목적이 순수했음을 극이 끝날때까지 결국에 부정할 수 없었고, 그렇다고 그들의 행동이 정당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그럴것임을 또한 알 수 있었다. 강윤의 말대로, 그저 경계선에서 스스로 택한 사명을 행하되 판단과 지지는 세상에 맡길 뿐.
그런데 그렇게 이상적이고 낭만적인 결과들만을 보여주면 그들을 지지하지 않을수가 없잖아? 두 남자를 회색지대에 두기는 했지만 도덕적으로 애매한 균형을 유지한다기보다 그들을 주인공으로 삼은 히어로 버디무비이기는 하다.

강윤의 차에는 배가 아무리 흔들리더라도 물에 잠길 수 없는 채로 항상 떠있는 워터볼이 있다. 강윤이 늘 곁에두고 잊지 않으려 추구하는 이상이기도 하다. 민재가 강윤의 차를 몰며 그 워터볼을 바라볼 때 화면은 제법 가까이 클로즈업되며, 민재의 시선에서 그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이 무척 크다는 것을 암시한다.
물 위에 떠있는 배는 두 사람이 ‘동수’에 대한 추억을 나누며 서로에게 서서히 인간적으로 감화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다만, 현실은 이상과 달라서 순조롭게 운항을 하더라도 때론 흠뻑 물에 젖는 일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감당할 수 있는 이상의 짐을 지고 홀로 가라앉으려하는 강윤을 억지로 끌어올리려던 민재는 그로 인해 물에 잠겨 죽을뻔하고 강윤이 기지로 그를 구해낸다. 둘은 결국 낮은 배에 바짝 엎드린 채 모호한 경계선을 함께 건너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임무를 완수해내고, 홀가분하게 퇴장한 강윤의 배는 태풍에 두들겨맞아 엉망이 되어있다.
민재는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다리 위에서 만났지만, 죄를 묻는 대신 정보원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자신이 있을 곳을 선택하고 강윤의 길을 뒤따랐다. 그렇게 강윤을 구해내기 위해 물 속에 뛰어들 준비가 된 민재의 모습을 보여줄 때 퐁당하고 녹아 떨어지는 위스키 잔의 얼음을 클로즈업한 장면이 의도한 의미가 있다고 보았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조금 옛날영화같은 감성이 느껴졌다. 기껏 회색지대 색칠해서 치고받아놓고 엔딩은 히어로물로 뽑아서 그런가, 그 와중에 인물들이 각자 해야할 일들을 진득하게 해내고 있어서 그런가. 최우식 배우의 대사들 몇개가 약간 어색할만큼 기능적이라고 느껴졌어서 그런가.
진부하거나 구린 느낌은 아니고, 이 시대에 이런 향수어린 감성이라 오히려 신선한 느낌? 거기에 나름 비중있는 조연으로 이얼 배우나 박정범 배우 등 또 다른 의미로 라인업들이 굵직하길래 감독이 누군가 봤더니 ‘리턴’의 이규만 감독이었다. 세상에 2011년에 봤던 2007년 작품이라니.
그 사이 낸 작품들은 다 망한건가 싶어서 필모를 보니 실제로 근 10년만에 메가폰 잡으셨네. (‘아이들’은 아직 안 봤다.) 노장은 죽지 않는다는게 이런 때에 쓰일 수 있는 말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