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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영화 리뷰

(리뷰)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

by 구운체리 2023. 4. 10.

모던클래식 2악장: Leggiero (가볍고 경쾌하게)

1악장의 이야기적 완성도가 너무 감탄스러웠어서, 그걸 두번이나 해낼 수가 있나 기대를 품고 있었다. (아바타의 경우와는 다르다. 아바타는 이야기 자체에 기대를 걸었던게 아니라서.) 결과적으로 1편만큼의 감탄은 아니지만, 추리물 좀 치네 인정할만큼은 되었다. 1편도 리듬이 경쾌한 편이었지만, 2편에는 여유로움과 의도한 유머의 비중이 늘어서 조금 더 통통 튀었다. 1편에서는 전말이야 어떻든 사람이 뜻밖에 죽어나가고 시작한지라 마냥 웃고 떠들기 어려웠지만 2편에서는 역시 전말이야 어떻든 가짜 살인사건을 풀고 예방하면서 흘러갔기 때문에 보다 가벼울 수 있었다.
와중에 현대적인 소재들(어몽어스, 코로나, 인플루언서)을 재료로 잘 가져다썼다. 에드거나 아가사가 21세기에 작품을 쓴다면 이런 작품들을 만들겠지. 전작에 비해 사건 트릭에 대한 예측 자체는 쉬워진 대신 깨알같은 개그포인트가 이상한데서 튀어나오고 그래서 오히려 더 오락성은 높아지지 않았나. 머저리 개그에 실없이 계속 반응해주는게 슬슬 자존심 상할때쯤 그게 또 장치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구성도 좋았다.
머저리 개그 담당이 둘이라 약간 포지션 겹치지 않았나 싶긴한데, 사실 개그 주담당이 둘인거고 전부 다 머저리로 나오니까 감독의 유머감각의 한계를 보여주는 증거는 아니긴 하다. 전작에서 감독이 미국의 기득권과 헤게모니를 돌려서 깠다면, 이번에는 좀 더 직접적으로 까고있다. 가치생산에 대한 오리지널리티 없는 자본가, 침묵하는 지식인, 타협하는 진보 정치인. 골빈 연예인과 극우 선동꾼 유튜버 그리고 그들 옆에 기생하며 동조하는 기회주의자들. 패배하지 않고 현장을 걸어나오는 건 동네에서 조그맣게 미술을 가르치는 흑인 여성 소시민.
그 모든 사건을 1열에서 관람한 극중 내내 가장 행복한 그 부랑자는 뭐였을까. 역할상 아무리봐도 관람객인데, 관객을 그 부랑자한테 대입해서 생각해보라고? 마일즈 친구 자격으로 섬에 머무는 걸 허락받은, 최근에 안 좋은 일이 좀 겹쳐서 휴식이 필요한 사람이라. 요 근래 관객여러분들 역병이니 경제니 힘들었으니까 맘편하게 술담배 빨면서 즐기시라는 위로섞인 위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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