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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편 연재/6월의 장미, 캘리포니아 Part 1. (일상, 관계)

6월의 장미, 캘리포니아 1부 - (0)

by 구운체리 2021. 11. 29.

프롤로그.


 결혼식장에서 신부에 대한 뒷말이 오고가는 것을 듣고 있자니 곤혹스러웠다. 그 희생양은 저 무대 위에서 세상 모든 빛의 주인이 된 듯이 환한 얼굴이다. 나는 그다지 친하지도 않은 그녀를 축하하기 위해 홀로 앉아있다. 잘못된 일인 줄 알면서도 나는 자리를 뜨지도, 가십을 멈추어 달라고 말을 걸지도 않는다.
 예진 양은 사람을 가리지도 않고 많이도 불렀다. 연락처만 있으면 친한 친구의 전 애인들까지도 부르고 본 것인지 나 또한 초대를 받았고, 그 대담함에 이끌려 망설이다 호기심이 귀찮음을 이겨 결국 오게 되었다. 내심 기다리던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고, 다른 공통분모가 없는 나는 그녀들이 처음 만났다던 유학시절 동기들이 모여 있는 테이블에 살그머니 끼어들었다. 정체를 물어보면 예전에 주워들었던 내용으로 대충 둘러대려 준비해 두었지만 쓸 일은 없었다. 자기들끼리 충분히 바빴던 것이다.
 가지 많은 나무에 이빨 터는 바람은 살벌했다.
 "걔 안 왔지?"
 "누구. 거기 크다던 흑인 애? 마약 팔던 히스패닉 애?"
 "아니, 그 있잖아. 삼총사랑 엮여가지고."
 "아 크리스! 걔 한국 이름이 뭐였더라? 너 그 소식 못 들었어?"
 "예진이 임신시킨 거?"
 "그거 말고, 걔 어디 수감됐다자너"
 "어쩐지 관상이 심상치가 않더라고. 사람이라도 총으로 쐈나?"
 "내가 듣기론 정신병원이었던 것 같은데."
 "크리스가? 애가 좀 나대긴 했지만, 의외인데. 그렇게 자뻑은 하더니."
 “삼총사 참 보기 좋았는데, 걔 때문에 민영이랑 지윤이도 안 온 거 아니니?”
 나는 애써 평정을 유지하며 숨을 참고 귀를 기울였다. 헤어진 과정의 감정이 나쁘지 않았지만, 그래서 그녀의 갑작스러운 변심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시 시작하지 않더라도, 그녀에 대해 조금 더 알고자 하는 마음이 나를 여기에 데려온 것 같다.
 "보기 좋기는 무슨, 그때 너도 걔네들 유난스럽다고 엄청 씹었으면서."
 "얘는, 내가 언제. 나는 그렇게 셋이 결혼할 줄 알았다니깐."
 "그림 좋다 그거. 그 자식만 아니었어도 그렇게 됐을 걸. 하여간 고추달린 것들이 문제야."
 "니 아들 고추가 들으면 서운해 하겠다. 니네 집 남자들은 왜 같이 안 왔어?"
 "예진이 결혼인데 오늘은 달려야지. 지들 좋아하는 시댁 보내놨어. 어디 건질만한 남자애 없나 잘 찾아봐."
 "있는 것들이 더해, 애 엄마가 주책맞게."
 "조용히 해, 너도 언제 결혼하면 보자."
 그 즈음부터 대화는 샛길로 새어 결혼과 육아, 가정과 직장에 대한 불평불만으로 흘러갔다. 예진 양은 오늘이 마지막인 불꽃처럼 빛이 났다. 빛이 너무 밝아 나는 그녀의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람들은 그녀를 축복했다.
 이리도 많은 축복을 받았으니, 예진 양은 아마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