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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연재/투명개미에 대한 연구 (SF)

투명개미에 대한 연구 - (5)

by 구운체리 2021. 12. 16.

5. 연구 과정 소개
나는 일곱 개로, 연구팀의 사람들 중에서도 많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편에 속했다. 무엇보다 그 시간 순서의 개념을 어렴풋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들도 처음엔 믿어주지 않았다. 내가 지표면에서 몇미터 높이에 있는지, 어제의 그곳보다 높은지 낮은지를 감각할 수 없듯, 시간에 대해 상대적 감각을 정의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겠냐고. 상대적인 감각을 신뢰한다고 지구가 평평한 것은 아니고, 내가 느꼈던 시간 감각이 없었던 것이 되는 것도 아니다. 분명 지구의 젊음과 내 영혼 비슷한 무언가의 싱싱함에는 시간대에 따른 차이가 있었다.
우리는 기록함에 있어 연구의 요소가 될 명제들과 서로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잡담을 분명하게 구분했다. 다만 말로 떠들때는 그 구분이 모호해, 우리는 종종 일하듯이 놀고 놀듯이 일했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판타지 창작 모임이라도 열린 줄 알았을 것이다.
이를테면 공학과 경영 분야 사이 어딘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무역회사에 재직 중인 30대 중반의 여성은 전생에 허큘리스의 남자 애인이었다고 주장했다. 사람으로써의 전생 기억을 가진 이는 그녀가 유일했다. 그녀는 허큘리스에 대해 알려진 바와 다른 여러 증언들을 덧붙였지만, 알려진 바가 없으므로 확인할 바도 없었다. 그녀 스스로도 어디까지가 기억이고 어디서부터가 신화로부터 파생된 2차 창작인지 구분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런가하면 목수가 직업이었던 어느 할아버지 교수님은 본인이 한때 살던 곳이 우주라고 기억했다. 우리는 빛이 들지 않는 깊은 심해와 우주를 어떻게 구분하시느냐 물었지만, 내가 시간의 감각을 그저 주장하듯 그도 그저 안다고 대답할 뿐이었다. 어떤 종류의 생물인지, 어느 은하계 근처였는지는 전혀 모르지만서도.
평균적으로는 3\~4개 종류의 생을 기억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우주 할아버지를 제외한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황금 개미의 삶에 대한 기억이 있었다. 공통된 심상은 지배자의 자긍심과 미적 경외감. 나처럼 소통의 장면을 기억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치열했던 전투, 여왕개미 교체에 의한 내부 혼란, 혹은 사냥의 시간을 기억하는 이도 있었다. 특히 유인원 종류로 추정되는 거대한 이족보행 짐승이 무리에서 낙오된 것을 덫으로 유인해 사냥하고 의기양양했던 기억이었는데, 어쩌면 멸종의 시기가 인간의 출현 이후일 수도 있는 가능성을 시사하기에 주목할만했다.
다인에게 새겨진 감정은 공포였다. 우리는 내장까지 투명해서 빛을 내고 있지 않으면 포식자의 눈에 거의 띄지 않았다. 소화 중인 음식물과 일부 빛의 파장을 흡수해야하는 생체 기관들이 있어 보이더라도 굴러다니는 먼지처럼 보였을 것이다. 우리를 특정하여 사냥하는 천적은 존재하기 어려웠다. 군집의 생산 속도가 손실보다 언제나 빨랐기 때문에 그 속도를 조절만 잘하면 우리는 영원히 존재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런데 알 수 없는 이유로 군집이 붕괴하기 시작했고 대처할 수 없는 재앙에 불안에 가득한 페로몬들이 만연한 그 느낌을 다인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 후유증에 지금도 원인 모를 멸종에 대한 불안감을 호소했다. 때론 직감처럼 인간이라는 종의 멸망이 머지 않는 것 같이 느껴진다고, 그 원인을 도무지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의 연구의 방향성이 인간 혹은 생명체의 본질이나 근원을 찾는 것이 아닌, 당장 인간이 목도한 멸종 위기의 근원과 해결책을 찾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것은 공식적인 연구 결과로 외부로 배포되기에는 급진적이고 근거가 부족했으므로, 잡담의 카테고리에 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