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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연재/투명개미에 대한 연구 (SF)

투명개미에 대한 연구 - (7)

by 구운체리 2021. 12. 23.

7. 실험: 이 논문이 탄생한 배경
논리적인 접근으로 보이지 않던 어떤 것들이 사랑을 나눈 뒤로 오히려 명쾌하게 보이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기억 속에 남아있던 인간이 아닌 어떤 것들의 본능적인 짝짓기와는 차원이 다른 무언가였다. 여기서 ‘차원이 다르다’는 표현은 물론 잡담에 속하는, 관습적인 형용어구이다.
기억의 물질적 본체가 신경줄기에 매달린 단백질 덩어리라면, 여러 생을 거쳐서 기억이 전달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불타거나 썩어없어진 유기물 덩어리 중에 어떻게 살아남은 덩어리들이 세상을 떠돌다 새롭게 형성되는 배아를 구성할 때 끼어든 결과라고 보아야 하는것일까?
특별히 강렬했던 기억들은 그 생성된 숫자가 많아서 후대의 기억하는 이들에게 보다 많고 선명하게 전달이 될 수 있었던 것일까? 그런 전달의 개념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우리가 원하는 분자를 합성해서 전달할 수 있는 개미였다는 사실이 다시금 생각났고, 종의 종말에 대한 경고를 하기 위한 기억 분자를 의도적으로 생성해서 세상에 뿌려둔 것을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나 거두어들이며 감각하게 된 것이 아닐까. 종말론자인 다인은 주장했다.
변인통제와 검증 그리고 재생산이 불가능하다면 어떤 해석을 과학적 사실로 단정할 수는 없다. 박사학위 소지자인 나는 그녀의 급진적인 사유를 억제할 사회적 책임이 있었다. 게다가 나는 그녀의 추측이 맞다면, 훨씬 위험한 다른 의문이 들었다. 일부러 만들어 배포했다면, 전달된 것이 일어났던 사건의 기억이 아니라 지어낸 이야기의 기록인 것이 아닌가 하고.
개미는 후각을 주감각으로 소통을 하니, 우리가 논문이나 소설을 써 남기듯 그들의 기록을 뱉어둔 것인데, 다만 그 전기화학적인 신호를 기억장치에 사용하고 대신 시각을 주감각으로 소통을 하는 인간이라는 종이 나타나, 일종의 착란을 일으킨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내가 염소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것들도 사실 그 개미들이 지어낸 이야기의 일부일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내가 써남긴 논문이 어느 서버의 이진 데이터 조각으로 남아 표류하다 일종의 기계문명에게 헤게모니가 넘어간 생태계에서 그들에게 영감을 제공하는 전생의 흔적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그런 소설같은 방향으로 사유의 영역을 확장하는 사이 다인은 지구가 곧 망해도 이상하지 않은 근거를 자원과 환경과 국가정세와 자본주의 체제 각각의 측면에서 구해왔다. 나는 망하는 것은 지구가 아니라 인류일 뿐이며, 그 어느 주장을 선택하더라도 그에 맞는 근거자료는 한이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일러주었지만, 연구팀도 와해된데다 아직 배고픔을 깨닫지못한 그녀는 주어진 종의 사명을 행해야 한다며 자신만의 감을 좇아 무언가를 계획해나갔다.
나는 그녀가 찾아온 자료들을 바탕으로 지구에서 인류가 주도권을 잃는 소설을 써보기로 했다. 문학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지만, 그녀의 영향으로 나에게 숨겨진 색다른 재능을 찾을 수 있었고, 무엇보다 논문작업과 문학작업은 내게 한 끗 차이였다.
논문을 쓰듯이 무언가를 쓰되 보다 뻔뻔하고 자신감있게, 근거를 대충 검토하고 휘갈긴 논리로 이어나간 뒤에, 이 모든 것이 소설이라는 변명으로 마침표를 찍으면, 그게 소설이지 뭐야. 대충 목차 대신 초록, 서론, 본론, 결론 그럴싸하게 박아두고, 본론 부분 제목들에 연구 배경이나 추론 등등 읽기 싫게 생긴 학술적 느낌나는 것들 적어두면 알아서 볼 사람들만 보지 않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