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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연재/투명개미에 대한 연구 (SF)

투명개미에 대한 연구 - (3)

by 구운체리 2021. 12. 9.

3. 추측 1: 황금 개미
“김군, 사과부터 할게요. 정말 미안해요.”
그 말을 하는 그녀의 표정이 그 이상으로 이상하게 느껴져서, 나는 또 내가 소중한 인연 하나를 망쳐버린건가 하는 망연자실함에 온 몸에 힘이 빠졌다.
“이 못난 늙은이를 용서해주기바라요. 김 군의 도움이 정말 필요해요.”
제가 기대한 만남은 이런 흐름이 아니었어요 선생님. 온 세상에 단 하나뿐이던 숨구멍을 십여년만에 뒤져서 찾아냈는데 막혀있는 기분이라면, 이해하시겠나요. 아, 그런 표정 비겁해요. 제가 어찌. 제 간이라도 필요하다면 가져가세요. 하지만 절 아직 이해한다고 해주세요.
 제발.
“전 사실 김군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씨발.
“하지만 김 군, 난 다 기억해요. 김 군의 이야기. 저, 진심이었어요. 학생들 상담하면서.”
“저, 김 군이 아니고 김 박사에요. 저 바보 아닙니다. 제가 이런 해명을 하는 것도 선생님이 마지막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김 박사님, 아니, 성운아. 제발 날 좀 도와다오. 아니, 제발 도와주세요. 김 박사님, 김 박사님, 김 박사님…”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아니에요 선생님 제발 제가 죄송합니다.”
그제서야 그녀의 주름이 눈에 들어왔다. 기껏해야 나보다 한 세대 정도 위의 사람이라 생각했던 그녀가 사실 이미 할머니나 다름없는 노인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녀의 손녀 다인은 내 또래였다. 모종의 사정으로 그녀는 홀로 외손녀를 키워오셨는데, 이제는 본인마저도 세상을 떠날 날이 머지않은 듯 하시다고.
다인은 아직 대학생이었다. 남들과 조금 달랐다. 차이가 차별의 씨앗이 되지 않도록, 그저 좋은 방향으로만 활용할 수 있도록 아끼고 보살피며 키워냈지만, 세상에 내놓을때가 되어서도 여전히 그녀가 세상과의 조화를 거부하고 있다고 했다.
“제 손녀 딸이 김 박사님같은, 그러니까 김 군 시절에 말이죠, 증세가 있어요. 그리고 김 박사님을 기억한대요.”
증세라는 단어는 병세 앞에 주로 붙이는 단어가 아니던가?
지금에야 그때의 바보들을 웃어넘긴다지만, 미치광이 취급에 조리돌림 당하는 기억은 분명 달갑지 않다. 내일의 실존이 목을 죄는 마당에 내 기억이 무의식이 지어낸 것인들 무슨 상관이람. 그 친구도 몇년 심신이 굶주리다보면 정상인인척 거짓말하는 법에 익숙해질걸. 나는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벼뤄온 냉소의 창을 다인에게도 겨누었다.
하지만 나와 같은 이가 세상에 혼자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위안은 그 가능성만으로도 나를 걷잡을 수 없이 북받치게 했다. 잊었다고 믿었던 그 모든 기억들이 일제히 항의라도 하듯이 생생하게 재생되고 있었다. 반짝이는 가루가 환각처럼 눈앞에서 지지직거리며 흩날리는 기분과 함께. 
나와 같다면, 다인의 삶도 분명 녹록치 않았을 것이다. 머리라도 나만큼 좋지 않았다면 더더욱.
근데 나를 기억한다고? 언제 봤다고 나를?
“어딘가에 선생님 이야기를 적어두었거나,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는 이야기를 제게 들려주신 게 아니라는게 확실하다고 말씀해주세요. 특히, 그 독특한 개미 이야기 말이죠. 그때는 참 재미있는 상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아, 정확히 나를 본 것이 아니다. 엄밀히는 그저 같은 종이었을 뿐. 다만 집단과 개인의 구분이 무의미한 종이고, 우리는 선조들의 모든 경험들을 쌓아두고 철저하게 공유했으므로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나는 곧 군집이고 군집은 곧 그녀, 그리고 그 군집은 종이 존재했던 모든 시간을 아우른다. 그런 의미라면 우리는 잠시 같은 생을 공유하고 있었던 셈이다.
투명하면서 황금빛을 내곤 하는 개미의 생을.

개미에 대한 짧은 기억의 단편 속에서 나는 눈이 잘 보이지 않았다. 정수리에 얹힌 두 올의 머리카락이 나풀대면서 조금씩 다른 느낌의 찌릿함을 전했는데, 공기 중에 부유하는 온갖 감각물질들을 서로 다른 기분으로 느끼고 재생산할 수 있었다. 민감하게 반응하기 위해 숨을 참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온 몸의 구멍으로 옅게 호흡하고 있는 중이었다. 눈에 들어온 내 앞다리는 투명했고 이따금 빛이 돌기도 했는데 그것이 황금색이라는 것을 상담 중에 기억해냈다.
나는 내 근방의 동료들과 감각 물질들을 주고받았고 때로 군집 단위의 위험감지 신호가 들어올때면 숨을 참듯 더듬이를 말고 분자의 방출을 멈추었다. 그러면 밝은 빛이 뿜어져나왔고 그 빛의 세기로 서로의 위치를 파악해 군집의 행동을 조율했다. 정확한 행동강령이나 주고받은 메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비슷한 종을 제외하고는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는 최강의 개체라는 일종의 자만에 가까운 자부심, 그리고 우리가 전투에서 내뿜는 넘실대는 황금빛 물결의 아름다움에 대한 경외감 만큼은 너무나도 뚜렷하다.
어렸을 적 그 기억이 처음 떠올랐을 때, 나는 그것이 개미나 반딧불이의 기억이 반쯤 섞여 조작된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녀의 상담실을 나오며 분명해진 기억은 내가 이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잠시 행성을 지배했던 독특한 종의 한 개체였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그 어느 생물학의 계보를 뒤져보아도 찾을 수 없는. 현재의 기준으로 가장 가까운 동물은 역시 개미가 맞겠지만.
우리가 어떻게 흔적도 없이 끝이 났는가에 대한 기억은 없다. 잘은 모르지만 아종과의 전쟁에서 정보전의 이점을 취하고자 택한 두가지의 신호전달 체계가 되려 서로 다른 포식자들에게 이중으로 취약하게 작용해 멸종한 것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