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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연재/투명개미에 대한 연구 (SF)

투명개미에 대한 연구 - (1)

by 구운체리 2021. 11. 26.

0. 초록
천사의 속삭임처럼 느껴지는 막연한 청각신호로부터 나의 생은 시작되었다.

내게 가장 오래된 고통의 기억은 내가 염소였을 적이다. 나는 네 발로 젖은 땅을 딛고 서서 물비린내 섞인 흙냄새를 맡으며 비탈진 언덕의 풀을 뜯어 우물대고 있었다. 어느 날카로운 이빨이 내 흉곽을 찢어발기기 직전까지. 아픈 줄도 모르고 거기에서 필름이 끊어졌다.
수 차례의 다른 종의 기억들을 거쳐 나는 지금 인간으로 여기에 있다. 인간인 나의 첫 기억은 비좁은 관처럼 생긴 미끄럼틀이다. 그저 호기심에 앉는 순간 떠내려가기 시작했고 아 좆됐다고 느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끄트머리에서 날카로운 빛이 스며들고 있었고 어째서인지 출구로 향하는 길은 점점 좁아지며 나를 짓눌러 으깨버리려고 했다. 거꾸로 도망쳐 오르고자 했지만 지나온 길이 너무 미끄러운데다 이미 몸이 옴싹달싹 못할만큼 끼어버린 뒤였다. 힘껏 비명을 지르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나를 억지로 잡아당기는 손길과 차가운 눈빛들 그리고 의미를 알 수 없는 괴로운 소음들이 기억난다. 울고 웃고 소리지르는. 신생아 상태의 나는 언어와 사고와 인지능력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었다.
나는 인간으로 태어났다.

1. 서론
나는 그 외에도 수많은 단편적인 어린 인간 시절의, 그러니까 갓난아기 적의 것들을 포함한, 기억들을 가지고 있다. 보통 사람들이 5세 이전의 기억을 자라나는 과정에서 대부분 잊는다는 사실은 나이가 제법 들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대체 다섯 살이 뭔데? 나에게 불현듯 재생되는 인간 이전의 기억들이 상상력 내지는 꿈의 잔상을 재조합한 환상이 아니라는 것 또한 깨달은 지 오래 되지 않았다. 세상은 아직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뭐라고? 그래 망상증 환자라는 소리는 살면서 수도 없이 들어봤으니 잠깐만. 나는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그래도 괜찮다. 내가 가진 독특한 기억의 조각들이 어떤 계기로 그저 우연히 조합된 뉴런 찌꺼기들의 앙금이거나 혹은 신경계에 섞인 모종의 잡음일 뿐이더라도 전혀 실망스럽지 않다고. 근원을 알 수 없는 몽상이 샘처럼 솟아나는 뇌 구조라니, 나름 멋지잖아? 어쨌든 무언가의 실체를 밝혀내는 과정은 흥미로운 일이다.
그러니 내가 대학원을 갔지.
정신과 치료, 당해봤다. 어느 모임인가에 끌려가 둥글게 둘러쌓여 집단으로 손가락질 당하며 조롱도 당해봤다. 그 누구보다 뛰어난 삶을 살라고 을러대던 부모님은 동시에 왜 남들처럼 살지 않느냐고 윽박지르기도 했다. 나는 모순 속에서 오히려 단단해졌다. 
내가 살아본 짐승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바보들을 극복하고 인간에게 주어진 이성이라는 축복을 담뿍 활용하는 쾌감은 겪어보지 못한 이에게 설명할 언어가 마땅치 않은, 말하자면 오르가즘 같은 것이다. 나는 바보들과 논쟁하지 않는다. 네 살 아이에게 가르칠 수 없으면 충분히 아는 것이 아니라고 누가 그러던데, 당신의 딱 네살배기 딸내미한테 오르가즘이 무엇인지 먼저 한 번 이해시키고 오시라고.

어떤 의사들은 인위적으로 조합한 화학 물질을 투입하고 이성의 논박을 통해 나의 세계를 무너뜨리는 것으로 나를 치료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끝까지 읽어봤을까. 나는 아직 실패했는데.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서처럼 물리적인 치료가 시도되지 않는 지성의 시대에 태어난 것이 나에겐 또 어쩌면 인류에겐 참 다행이다. 몇 개의 호르몬 분비를 조절할 뿐인 알약은 가끔 나를 실없이 해맑게 만들어주는 것 외에는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었다. 
내가 어릴 적 논리로 나를 무너뜨리려 시도한 이들 중 대부분은 결국에 나를 꺾지 못하자 권위에 기대어 내가 말이 통하지 않는 억지를 부린다고 후려쳤다. 억울했다.
내가 군론에 관한 수학 논문으로 저명한 교수로부터 박사학위를 받고 나서야 내가 당신들보다 멍청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인정받은 것 같다. 허나 그 즈음에는 순수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많은 선배들처럼 당장에 마뜩한 밥벌이를 구하지 못해 시간강사를 뛰며 구직의 기회를 엿보는 중이었기에 내 잡스러운 기억 같은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시간 좌표도 잡히지 않는 아득한 옛날 시시껄렁한 사건들을 기록하는 것보다 당장 어제 읽은 논문의 논리 흐름을 재생산하지 못하는 것이 나에게는 더 공포이자 미스터리였고 현생의 굶주림 앞에 전생이고 내생이고 알게 뭐람. 
정신과에서 처방해주는 항우울제와 수면보조제는 세상에 빛과 소금과도 같은 기적의 화합물이다. 무신론자인 나는 하루하루 기적에 경배하고 허공에 기도하며 앉은뱅이 곱추의 삶을 그저 연명할 뿐이었다.
진짜로 내가 미쳐버린것만 같던 그 때 그 분에게서 연락이 왔다.

어릴 적 나를 미치광이나 떼쟁이 취급하지 않았던 어른이 딱 한 분 계셨다. 안 선생님.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의 심리상담사였는데 어딘가 독특한 느낌은 있었지만 허울없는 성격과 유머감각 그리고 반백살을 넘긴 나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아름다운 외모 덕에 남고에서 그녀는 어머니이자 메시아, 종교 그 자체였다. 
나는 숫기없는 한 명의 추종자로 그녀의 관심을 끌기 위해 언젠가부터 감춰오던 ‘과거’들을 풀어놓았고 그녀는 조금도 비웃거나 바로잡으려는 기색없이 진중하게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셨다.
내 기억이란 것이 연정을 목적으로 펼친 상상의 나래가 아닌가 누군가는 지적했다. 증명할 방법은 없지만, 훨씬 어렸을 적 손가락질 받고 지우려 했던 그것들을 굳이 다시 살려냈을 뿐이었다. 다만 아주 막연하게 이전에는 미처 몰랐던 어떤 감각의 기억들이 보다 상세하게 연결되는 것을 느꼈을 뿐. 이를테면 풀을 뜯고 있는 내 뱃가죽 쪽에 젖이 도는 듯한 쨍함에서 오는 느낌 (아 암컷이구나) 라던가.
정기적인 상담의 마지막에 나는 그녀의 관심보다 완성되어 가는 내 기억에 심취했다. 내가 진짜 나를 찾을 수 있도록 그녀는 기꺼이 기다려주셨다. 그래서 졸업과 함께 그 시간들이 완전히 끝났을 때 아쉬웠다. 쓸모없는 과거 따위에 과몰입한것도 모자라 거기에 매이느라 아름다운 그녀에 대한 기억을 충분히 각인해두지 못했다는 자책, 그녀가 나를 한낱 미치광이로 기억할 것이라는 자괴감, 와중에 내가 저지른 작은 실수에 대한 부끄러움의 삼중주는, 그 이후의 나를 더욱 웅크리게 만들었다.
안 선생님이 15년이 지나 연락을 해왔을 때 나는 창자가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내가 묻어둔 모든 과거가 한꺼번에 봉기라도 일으키며 심장을 움켜쥐고 뛰쳐나오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빠르고 형식적인 안부를 거쳐, 내일 괜찮으면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싶구나, 하셨다.
그럼요, 제발요 선생님. 저는 이야기할 사람이 너무도 필요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