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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연재/투명개미에 대한 연구 (SF)

투명개미에 대한 연구 - (2)

by 구운체리 2021. 11. 30.

2. 연구의 배경
기억이란 뇌를 구성하는 뉴런의 시냅스 돌기에 엉겨있는 신경전달 목적의 단백질 덩어리이다. 인간이 스스로의 삶을 정의하는 근거들은 본인이 축적한 기억들의 조합으로 구성되어있다. 단백질의 종류와 조합가능한 경우의 수는 무수히 많지만 결국 유한한 숫자이다. 따라서 인간이 도달가능한 영역은 유한한 범위로 제한되어있다. 
하지만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의 유한함 덕에 인간은 임종의 맡에서 이번 생에 못 다 편 잠재력을 아쉬워하는 오만함을 반복할 것이고, 그 오만함이 어설픈 인지 능력의 저주를 받은 인간이라는 종의 연속성을 가능케 할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의 오만함을 시험해 볼 수 있는 기술에 어떻게든 다가가려 했다. 동명의 영화에서 착안한 ‘트랜센덧느’ 프로젝트는 인간의 의식을 네트워크에 데이터의 형태로 업로드하여 전자화된 방식의 영생으로 죽음을 극복하려는 시도에서 시작되었다. 충분한 돈을 가진 몽상가들의 아낌없는 지원 하에 꿈에 부푼 엔지니어들이 온갖 시도들을 하는 동안 예상치 못한 영역들에서의 기술 발전이 이루어졌지만, 정작 투자자들이 만족할만한 영생을 가져다주지는 못했다. 그들에게는 남은 시간이 부족했고 속살이 드러난 갈등은 연구자들을 제도 너머에서 옭아매었다.
자본가들과 기술자들 사이의 감정의 골이 깊어지던 한창 때는 맛탱이가 가버린 기술자들이 기존의 자본가들을 도륙내버리고 헤게모니를 훔쳐오는 기술 반란을 일으키는 류의 SF영화와 소설들이 인기를 끌었다. 일차원적인 폭력을 통한 갈증의 해소는 두 집단 간의 몰이해와 감정적인 격차를 더욱 가속화시키는데 일조했으므로 사회적으로는 해학을 빙자한 해악이었다.
매일 공공 전파를 사용하는 뉴스에는 게으르고 도전정신이 부족한 엔지니어들이 자본가들의 눈먼 돈만 축낸다는 비판들이 가득했고, 사적인 채널을 유용할 수 있는 지식인들은 돈만 많고 무식한 돼지들이 다가온 죽음이 두려워 별 지랄들을 다 한다며, 그들이 후원하는 프로젝트에 배알도 없이 참여하지 말 것을 일갈했다. 정작 대다수의 비인기 분야의 연구자들이 그 ‘무식한 돼지들의 눈 먼 헛돈’으로 먹고사는 현실을 인지하지 못한 발언이라며 일부 과학계에서는 되려 빈축을 사기도 했다.
커리어 면에서 자본가와 기술자 모두의 인정을 받는 인물로는 A사의 최고경영자 M.데빌이 유일했다. 비록 양쪽 모두로부터 비판을 받고있고, 도박, 마약, 성적 편력 등 사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는 문제적 인물이었지만, 그가 공학자 및 회사의 최고경영자로써 이룩한 업적들만큼은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는 현재 뇌 신호를 읽어내고 다시 입력하는데 필요한 사전(dictionary) 작업에 필요한 핵심 특허를 개발한 인물이며, G사의 시니어 개발자로 일하던 중 자신이 만들어 낸 게임에 빠져 완전히 새로운 방향의 회사를 세운 뒤 현재의 A사의 입지로 키워낸 인물이다. 그가 게임 속의 가상 인물인 L.앙헬과 현생의 스스로를 구분하지 못해 종종 이상한 사고를 친다고 사람들은 비판했지만, 정작 대중들은 그의 게임 속 행실을 바탕으로 그를 아동 성범죄자로 몰고 갔으니 서로 비슷한 수준이 아닌가.
그는 어느 한 쪽의 편을 드는 대신 자신만의 질문을 트위터를 통해 세상에 던졌다. 
‘현재의 생애만으로 구성된 인간이 인공지능에 맞서 자부할 수 있는 창의성이란 존재하는가.’
그런 식의 두루뭉술한 질문을 중심으로 프로젝트 팀을 모집하는 사례들이 많았기에 사람들은 M.데빌 또한 수많은 자본가들 중 하나가 된 것이 아닌가하는 비판을 던졌지만, 관련하여 어떤 지원계획도 발표하지 않았기에 다시 한 번 욕을 먹었다.
뭐 어쩌라고 X발.

하지만 그의 질문은 나름의 핵심을 짚는데가 있었고 그러면서도 충분히 두루뭉술했기에 기존의 다양한 연구들과 융화되기 좋았다. 까다로운 투자자들의 철퇴로부터 살아남은 일부 연구팀은 그의 질문을 인용하며 막혀있는 연구의 다음 도약 지점을 찾고자 했다.
인간이 기계적으로 어설프게 흉내낸 임의성을 뛰어넘는 우수한 의외성을 만들어낼 인간만의 특질이 존재하는가, 그렇다면 그 특질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인간이 인간 세계의 지능을 전부 통합할 수 있는 초연결상태의 종점에 도달한 이후, 정체된 학계는 경쟁이라도 하듯 서로 무리한 주제에 매달려 철학의 근간을 뒤집어 엎고자했다. 존재조차 불명한 영혼의 물성을 탐구하는 한편으로 모든 물질의 영적 잠재력을 끌어내려 노력했다.
분야불문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헤드라인이 자극적일수록 실속을 파보면 열에 아홉은 껍데기가 전부인 개지랄이라는 것을 공공연히 알고 있었다.

살아있는 뇌 전반을 스캔하여 전기 신호의 이동경로를 추적하여 가상에서 구현하는 기술이 상용화 된 지도 20년이 넘었지만, 기대와 달리 특정 기억을 영상으로 복원하는 기술은 진척이 요원했다. 같은 장면에 대한 기억이라도 사람마다 인지하고 저장하는 방식이 제각각이었기 때문인데, 심지어는 같은 사람이라도 그날의 감정상태에 따라 기억이 저장되는 경로와 물질이 달랐다. 직관적으로 말하자면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인데, 정확히 어디가 어떻게 다른지 몰라서 그 변화의 방향성을 추적하기도 어려웠다. 
넌 대체 왜 그러는거냐. 가장 높은 인용수를 기록한 M.데빌의 기념비적인 논문 제목이었다.
인간이 가진 주관적인 감정의 스펙트럼을 객관적으로 수치화하는 방안이 불가능했기에, 수많은 이론들이 기술으로 구현되지 못했다. 대부분의 논문들은 일률적으로 수치화된 입력값의 존재를 전제하고 있었기 때문인데, ‘감정의 객관화’라는 키워드를 쉽게 보고 누군가 해주겠지 미룬 탓도 있고, 또 다들 그렇게 여기는 분위기 속에 관련한 원천 연구는 투자를 받지 못하니 인기가 없었던 탓도 있을 것이다.
자칫 인문학의 영역으로 보이는 주제에 과학계의 예산을 끌어오는 것은, 어떻게 성공하더라도 그 이후가 더욱 문제였다. 과제 보고 기간에 연구의 성패가 딴지를 걸리기도, 전반적인 부진을 묻어가기 위한 희생양을 찾을 때 외부에 발표하기에도 너무나 쉬운, 위험한 주제이다. 카르노 기관의 속성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하면 바로 다음 문장부터 읽는 사람이 절반으로 줄어들지만, 인간 행동의 우발성과 고의성에 대한 화학적 구분법을 설명하기 시작하면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 꿋꿋이 도전해 온 연구자들의 일관된 주장은, 인간을 논리 구조의 조합으로 표현하는 것이 애초부터 불가능한 과제라는 것이다. 겨우 그런 결과를 얻자고 연구비를 꾸준히 투자할 곳이 없으니 주제가 사장되는 것도 당연했다. 허나 가능하다면, 그것을 증명하는 것만으로도 의미는 충분했다. 다행히도, 괴델과 하이젠베르크 이후로 불확정성에 대한 이성적 권위가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이후의 시대이기에 시도라도 가능한 주장이였다.
인간이 가진 불확정성은 수치화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난수 발생 알고리즘 등을 이용해 기계적으로 흉내내어 인간 군집의 평균적인 행동을 예측할지언정, 하나의 인간을 완벽하게 재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내가 속한 연구팀이 진행하려 한 연구의 첫번째 디딤돌이었다.
인간 개개인이 가지고 태어난 창의성을 긍정하며, 그것으로부터 인간은 특정 개인이 군집을 초월하는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특수성을 가졌으며, 그로 인해 군집이 진화하고 다시 개인을 성장시키는 방식으로 현 지구를 지배하는 종이 되었다는 것. 따라서 창의성의 근간은 난수 발생 와중에 우연히 얻어걸린 무언가가 아닌, 진화의 목적을 가지고 인간을 초월하는 어딘가에서 온 것이라는 다소 종교적이기까지 한 방향으로 우리의 주장은 잠재력이 넓었고, 우리는 절박했다. 아니 진심으로 묻고있었다. 
신이 존재한다면 응답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의 통일된 방향의 간절함으로.

내가 나의 레쥬메를 어디까지 배포했는지 당연하게도 기억하지 못한다. 지나가다 어깨만 부딪혀도 명함 대신 레쥬메를 내미는 정도의 자연스러움이 몸에 배어있던 때였다. 그녀가 어떻게 나를 기억해내고 연락을 했는지, 의심할 필요도 이유도 없었다. 사회성이 뛰어나지 않은 내가, 나를 먼저 기억해주는 그 누구라도 붙잡고 발등에 입을 맞출 정도의 자존감이던 시절이었다. 물론 그렇게까지 최악이 아니었어도 그녀의 연락은 반가웠겠지만 말이다.
완연한 백발에 세월에 지친 주름이 화장에 가려지지 않는 노인이셨지만, 기품있는 눈빛과 따뜻한 기운만큼은 여전했다. 음료를 주문하고 첫 모금을 입에 댈 때 까지 나는 성공적으로 시시콜콜한 근황들을 이야기하며 세월이 미처 꺾지못한 그녀의 아름다움을 못난 추억과 엮어 아로새기고 있었다.
꿀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