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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연재/투명개미에 대한 연구 (SF)

투명개미에 대한 연구 - (6)

by 구운체리 2021. 12. 21.

6. 연구 과정의 기술적 어려움과 그것을 극복한 방법: 0과 1
전생의 진위여부를 파악한다는 골자로 연구비를 딸 수는 없었기에, 우리는 실제 기억이 흐려지고 조작되는 과정을 밝혀내 지어낸 이야기와 착각한 진술을 구분하는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취지로 국가연구소의 투자지원을 유치했다. 기억을 그 자체로 영상화하지는 못하더라도, 어떤 사람이 언어로 서술하는 기억이 어느 정도의 신뢰 수준을 갖는지 판단하여 그것을 시각화하는 것만으로도 제법 훌륭한 대체 기술이 될 수 있다. 범죄 수사나 심리 치료 등의 목적에 응용될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우리가 팀의 실제 연구 목적을 보다 장기적이고 거창하게 설정했을 뿐, 실제 연구의 방향도 과제의 목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니 윤리적으로 문제가 될 일은 없었다. 다만 뇌 지도를 읽고 분석하고 그리는 작업을 실제로 수행할 기술자가 한 명은 필요했는데, 불행히도 우리 중에는 없었기에 외부에서 영입해야 했다. 우리가 다른 이야기들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도록 외국인을 영입하자는 의견이 우세했지만, 남의 나라의 인지도 없는 사설 연구 팀에 홀로 들어와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당연히도 없었다.
갈 곳 잃은 국내 박사 후 연구원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으며 그렇게 구한 이의 실력도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그가 사교성이 너무 좋고 호기심도 많은 성격인 것. 그는 오지랖이 넓고 눈치도 빠르며 파괴적인 방식으로 상대의 세계에 침투하는 것을 즐겼다. 따라서 그가 섞여있으면 우리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누지 못했고, 그를 빼고 무언가 할라치면 견디지 못하고 기웃대는 통에 방해를 받았다.
정신없이 일을 시켜보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그는 주어진 일을 끝내기 전에도 오만데 참견을 늘어놓는 성격이었다. 그가 보기에는 우리도 업무 시간에 잡담을 나누려 모여있는 셈이었으니 가서 일이나 하라고 면박을 줄 수도 없기는 했다. 전반적으로 진도가 더뎌지고 답답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그 외부인이 사실상 우리 팀의 진짜 연구 목적을 와해시켜 버렸음을 직감했다. 여느 타성에 젖은 연구팀처럼 적당한 실험과 애매한 결과물을 애써 포장해 지루한 보고서를 제출하고 수고비를 받아 생계를 연명하다 각자의 본래 소속으로 흩어지겠지. 
말하자면 우리의 팀이 하나의 살아있는 초개체라면 외부인은 살상력을 지닌 바이러스였다. 우리는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 지 대응책을 논의해봤는데, 결국 바이러스를 죽여 몰아내거나 면역체계를 갖추고 공존하거나 둘 중의 하나였다.
도통 그를 쫓아내고 새로운 사람을 뽑을 구실을 찾을 수 없었다. 우리 중 누구도 사람 피를 말려 쫓아낼 수 있을만큼 모질고 못된 성격을 흉내조차 낼 수 없었다. 대부분이 소수자 위치의 삶을 살아왔기에 자기방어적인 날카로움은 있을지언정 주도적으로 상대를 지배하고 불편하게 하는 재능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공존하기에 그는 너무도 활발하고 공격적이었다. 
결국 우리는 남은 시간을 허비한 채 실망스러운 안녕을 나누고 흩어졌다. 이후로도 직접으로든 원격으로든 모여 연구를 이어갈 수는 있었지만, 역시나 각자의 생계가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돈을 벌어올 수 없다면 쓸모없는 어린 날의 공상이나 진지하게 주고받는 친목모임보다는 집 근처 동호회 모임이나 술집에 가는 편이 보다 유익한 여가활동이었다. 팀으로써의 우리는 죽었다.
결국 남은 건 다인과 나. 다시 둘이 되었다. 안 선생님의 흔적만 남은 그녀의 집에 마주앉아, 지금 우리가 맡고 있는 그녀의 향기가 실제 생전의 그녀를 구성하던 분자의 때늦은 도착인지, 우리의 기억과 그리움이 불러낸 환상인지, 그녀의 생이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수많은 전생 중의 하나가 되어 우리 속에 남아있던 것을 이제서야 조금 느끼기 시작한 것인지.
그렇게 며칠 밤이 새도록 이야기를 나누어도 진척은 생기지 않았다. 흘러가는 잡담으로 이 모든 감각의 순간을 떠나보내기에 아깝다는 생각이 들 즈음 나는 이 순간을 연구의 맥락으로 붙들어보고자 종이와 펜을 들고나왔고 그런 나를 가만히 바라보던 다인은 칫솔과 이불을 들고나왔다. 
그제서야 나는 우리가 잡담 대신 나누어야 할 것이 사랑이자 서로의 삶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0과 1이 되어 동기화된 언어로 서로의 세상을 읽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