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단편 연재/투명개미에 대한 연구 (SF)

투명개미에 대한 연구 - (8, X) 完

by 구운체리 2021. 12. 28.

8. 결론: 인간 실권에 대한 소설
기술의 구현가능한 영역이 그 한계에 다다른 것은 아니다. 과학에 대해서도 아직 인간이 알아내지 못한 영역이 많고, 알아낼 수 있는 영역이 많다. 범인류적 시점에서 동력을 잃었다는 것이 보다 적절한 설명일 것이다. 후대에야 빛을 볼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위해 현재의 자원을 투입하려면 세대를 초월한 유대가 필요하다. 그동안의 그것은 강력한 사상적 통제를 통해, 종교적인 관념을 곁들인 설득을 통해, 혹은 얄팍한 속임수를 통해 가능했다. 자본주의의 최종 진화 형태는 그 셋 모두를 합리의 이름으로 무너뜨렸다.
중국은 강력한 인민통제를 통해 기술의 발전이 민중들에게 자유와 다양한 진실들에 접근하는 것을 차단하려 했지만, 북한 지도층이 붕괴하며 생긴 소란의 틈을 타 반동의 씨앗이 곳곳에 심어졌고 끝내 동시다발적인 봉기가 일어나 내전으로 번지며 국가적 전환기를 맞게 되었다. 봉기 자체로 큰 피해와 혼란이 빚어지지는 않았지만, 평화로운 연방 정부 수립의 형태로 결말을 맺은 사례가 민주화를 갈망하던 주변국들에 파란을 일으키며 바야흐로 공산주의가 이념전쟁에서 최종적인 패배를 맞게 되었다.
아시아 전역을 휩쓴 민주화와 작은 정부의 물결은 이슬람 문화권의 국가들에도 영향을 주었다. 궁지에 몰렸다고 생각한 급진적인 이슬람 지도자들이 전세계의 불특정다수를 상대로 한 전쟁을 선포하였다. 우려하던 핵전쟁까지 번지지는 않았지만 이제 사람들은 보다 진심으로 종말을 두려워했다. 종교적 신념이 이성의 기능을 압도하는 것에 대한 과몰입과 핵전쟁을 연관지어 생각하는 막연한 공감대가 시나브로 퍼지게 되었다.
한편 지구촌에 전파로 연결된 거의 모두가 평등하게 기술에 대한 지식과 사용 권한을 갖게 되었다. 개발도상국에 팽배한 기아와 질병, 내전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 마음을 먹는다면 비용을 지불하고 그들을 문명화된 도시에 데려올 수 있는 시스템은 완성되었다. 그렇게 땅을 비우고 정화와 재건축의 과정을 거쳐 전지구적 평화를 이룰 수 있는 계산이 나왔다.
당시 가장 많은 개인 자산을 보유하고 있던 A사의 대표 M.데빌은 자신이 가진 재산의 절반을 그들을 구원하는데 쓸 것이라 선포하며 재단을 설립했지만, 이주 계획의 3% 정도를 실시했을때 새로운 계산 결과가 발표되었다. 현재 지구가 보유한 자원으로 지금의 기술적 수준을 유지하며 지속가능하게 수용가능한 인구의 범위가 한계에 다다랐으니, 계산 영역 바깥의 기술적 혁신이 없다면 맬서스 이론에 따라 인류의 일부를 희생시켜야 전체가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기술적 혁신에 대한 기대는 이제 신앙의 영역이었는데, 신앙이 판단의 직접적 근거가 되는 것은 사람들이 원하지 않았다.
장기적인 재건축이 완료되면 함께갈 수 있는 인류가 꽤 늘어났지만, 어쨌든 모두를 데려갈 수 있는 것도 아니며, 과도기 동안의 피해를 감수할 동인이 될 만큼 미래세대를 전 인류가 반기지 않는 것도 문제였다.
사실 사람들은 ‘평등’이라는 가치가 진짜로 평등하게 분배된다면 자신이 누리는 ‘평등’의 가치가 내려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혜적으로 그것을 베풀며 우월감을 누릴 수 있을때야 평등의 확산에 기여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대견해했지만, 제3세계와 미래세대를 대상으로 그 베품을 제공하고 싶지는 않았다.
기술의 발전이 그 한계를 명확하게 밝혀주지 못할 때는 파괴되는 환경이 마냥 보전해야 할 인류의 숙제처럼 여겨졌지만, 현재에는 세대에 기여하는 것에 대해 응당 비용을 치르고 얻은 보상으로 여겨졌다. 보다 환경을 파괴했다면, 그만큼 값을 치르면 되는 일이었다. 그 총합이 음의 값이라 인류가 종말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는 주장을 학자들이 하면 이해하지 않으려했고, 정치인들이 하면 믿지 않으려했고, 자본가가 하면 너나 잘하라고 했다. 
자본가의 반열에 든 중에 절제된 수준으로 세상의 자원을 축내는 이는 M.데빌이 유일했는데, 그에게는 대신 추문으로 떠도는 문란한 성생활에 대한 도의적 비난과 3%의 도상국 인류를 문명사회로 투입한 것에 대한 질책이 들어왔다.
M.데빌은 그 즈음 인류에 대한 환멸을 느껴 재단을 닫아버렸다. 전인류에 기술사회의 열매를 전파하는 대신, 지구 깊숙한 곳과 우주 먼 곳 그리고 인간 심연의 깊이에서 새로운 탈출구를 찾고자했다. 결국 내가 나서야 하는구만, 이라는 재단 계정의 트윗을 마지막으로 남기며. 기술적 혁신이라는 믿음을 현실로 가져와 신앙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그는 어느 순간 홀연히 세상에서 사라졌다. 소문으로는 그가 소규모의 방주를 꾸려 스스로 찾아낸 탈출구를 향해 떠나갔다고, 세상의 믿음을 배반했다고 했다. 그들조차 ‘믿음’을 믿지 않으며 믿음을 배반했다는 이유로 가장 ‘믿음’에서 멀리 있었던 M.데빌을 비난하는 트윗은 제법 아이러니해서, 말을 뱉는 사람들조차 그 순간 아이러니를 인지하고 있었다. 정말로 M.데빌을 원망한다기보다, 자조에 가까운 짐승들의 울부짖음 정도로 생각하는 듯 했다.

그렇게 마지막 제어장치를 스스로 거부한 인류의 수명은 가속도가 붙은 상태로 한계선을 뚫고 추락했다. 인간이 살 수 없는 땅의 영역이 늘어났고, 도태되는 인간들은 약물에 절여져 죽을때까지 지속되는 환각 속에 버려졌다. 그들은 스스로 선택한 약물 속의 행복에서 최후를 맞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행복한 죽음을 거부한 이들의 인구밀도는 기하급수적으로 감수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지막 세대가 되는 것을 두려워한 이가 자멸버튼을 눌렀다. 여남은 문명사회는 한 순간에 사라졌다. 밖에서 보았다면 핵전쟁이 일어난 줄로 알겠지만, 그렇게 보아줄 관찰자마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어느 날 온 문명의 중심에 동시다발적으로 핵 공격이 날아들었을 뿐. 그런 버튼이 왜 아직 건재하고, 또 불안정한 개인의 손에 들어갈 수 있었는지를 알려줄 사람 또한 당연히 없다.
그러거나 말거나 문명과 동떨어져 곳곳에 자신들만의 둥지를 틀고 지내는 인간들은 존재했다. 벌써 옛날에 사라진 질병과 굶주림 등과 아직도 싸우며. 다만 문명 수준이 퇴화하고 서로 연결되지도 못한 인간들이 더 이상 지구의 주인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애초에 주인이라는 개념 자체에 실체가 없기는 하다. 절대자와의 계약으로 성립된 것도 아니고, 수적으로 혹은 부피적으로 차지하는 비율을 근거로 주인이라고 부를 수도 없으니. 따지고보면 인간이 개체수 면에서 가장 독보적인 종족은 아니었다. 실제 주인이었던 적이 없다고 할 수도 있겠다.
어쨌든 이제 남은 인간들 스스로도 자신을 지구의 주인이라 여기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 분명한 차이였다. 남은 이들은 자연을 주인으로 받들어 모시듯 살았고, 그렇게 순종하는 이들만이 살아남았다. 지구가 인간의 주인이 되었다.
지구의 대부분은 언제나, 눈에 보이지 않는 먼지같이 흩날리는 것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9. Future Work
연구팀이 해체되고 안 선생님의 기억을 온몸에서 한차례 게워낸지도 일년이 지났을 때 우주 할아버지에게서 연락이 왔다. 연구팀에서 가장 젊고 불안정했던 우리에게 새로운 터전과 일감을 제안하기 위함이었다. 현재 가장 주가가 핫한 A사의 회장 M.데빌과 본인이 유학시절 같은 방을 썼던 동료라는데, 이번에 이윤과 무관한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다인의 포트폴리오는 다소 부족하지만 본인의 개인적 추천이 있다면 합격에는 문제가 없으니, 우리가 동의한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떠나는게 좋다고 했다. 공간에 배어있는 추억에 매여 점점 무거워지던 시점이었기에, 우리는 정말 당일에 찾을 수 있는 가장 빠른 항공편을 찾아 이주길에 올랐다. 
말을 그렇게 했다고 정말로 무식하게 여행비자를 들고 한국 땅을 떠나버릴 줄 몰랐던 할아버지는 한숨을 푹 내쉬며 일단 잠시 도로 돌아오라고 했지만 뜻밖에 M.데빌이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경우에 따라 해결해줄 수도 있다고 우선 만류했다. 
뭐 복잡한 비자가 필요한 줄은 몰랐지.

호기롭게 떠나왔지만 나는 대인기피증이 있었고 다인은 영어울렁증이 있었다. M.데빌의 비서가 우리를 그에게 안내할 때 마치 다인이 본체이고 나는 그녀의 통역사인 양 자연스럽게 행동했지만, 대기실에 둘만 남게되자 우리는 가까스로 유지하던 진을 다 쏟고 그로기 상태가 되어 뻗었다. 나에게는 이 모든 낯선 환경들이 압박이었고, 이렇게 많은 외국인들이 쉴새없이 영어로 떠드는 모습이 다인에게는 부담이었다.
연예인보다 귀한 M.데빌과의 만남을 의의로 삼고 기념사진이나 찍고 한국으로 돌아가자고 서로의 한심함을 위로하는데 M.데빌이 어딘가에서 불쑥 나타났다. 우리는 화들짝 놀라 자세롤 고쳐앉았지만 M.데빌은 그런 우리를 바라보고 웃음을 터뜨리며 아무말없이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우리도 그의 눈을 바라보며 마음이 차분해질때까지 기다렸다.
내가 긴장이 풀려 생각보다 이야기가 잘 되었다. 예정된 30분의 면접시간을 넘겨 두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고도 모자라 그의 집에 초대받아 밤늦게 퇴근 이후 그의 개인 서재에서 와인을 곁들이며 밤새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침이 밝아올때쯤, 그가 굳이 우리에게 비자를 새로 받아오지 않아도 된다고 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대화를 나누는 중간중간 그의 눈동자가 화면으로 보았을때와 달리 어쩐지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다인 또한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고 얘기했다.

우리는 악마의 제안을 수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