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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연재/연극이 끝난 후, Play for me (드라마, 관계)

연극이 끝난 후 (Play for me) - (Preview)

by 구운체리 2022. 1. 22.

 Preview, the monologues

규민)
 먹잇감이 되는 것보다 나쁜 것은 없다. 어떤 의도를 갖고 만들어진 자리라고 하더라도 그 위치가 먹이사슬의 최하층이 아니라면. 더군다나 나는 스스로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을 해서 그 자리를 얻어낸거잖아?

정욱)
 그 어떤 떳떳하지 못한, 청산하지 못한 과거도 없는 정치인이 여기 당신들을 위해 출현했다. 나는 우리나라의 풀지 못한 숙제를 풀 적임자이다. 잘못된 길을 걸은 적이 없다고는 하지 않겠다. 누군들 그렇겠어. 다만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고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었는가, 그 과정에서 나로 인해 피해를 입었을 수도 있는 친구를 어떻게 내가 긍정적으로 도왔는가.
 제21회 동흥제에 올렸던 우리의 연극, 제1회 동흥극회 상영작, '친구'가 그 상징적인 증거이다.

장군)
 그 나이대 남자아이라면 누구라도 그렇게 행동했을 것이다. 내가 결코 착하고 정의로운 아이가 아니었다는 것은 알고있다. 하지만 그 시절을 후회하지도 않는다. 각자의 위치에 맞는 역할을 행했을 뿐이다. 나는 단단하고 강한 사람이었으므로, 상황에 지배받기보다 지배하는 역할을 선택했다. 그럴 힘이 있다면 누구인들 다를까.
적어도 나는 연극이 끝나고 나면 무대에서 내려올 줄은 안다. 교활하지는 않다고.

민구)
 열심히 살았고 재밌게 살았다. 타고 난 외모와 노래 실력 덕분에 언제나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았고, 원하는 것을 얻는데에 무리가 없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세상에서 원하는 것을 얻는데에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고, 그것을 쟁취하는데에 또 다른 재능이 필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타고난 나의 재능에 취해 그것을 갈고 닦지 않는 동안,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며 수련한 다른 친구들의 그것은 도저히 이제와서 따라잡을 수 없는 수준의 것이었다. 내가 나름의 노력으로 무언가를 취함에 도취되어 있을 때 나를 우러러보던 시선 아래에 슬며시 비추어지던 시샘의 본질이 이런 것이었구나, 나는 새삼 후회가 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나에게 친절한만큼 나는 늘 사람들에게 친절하려고 노력했고,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어째서 선량함은 그 자체로 보답받지 못하는 것일까. 내가 비극을 피할 수 없었던 이유가 의문일 따름이다. 이제와서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의 대응인지도 모르겠다. 진실을 밝힌다고 달라질까. 사람들은 이미 나보다 그의 말을 훨씬 신뢰하고 있다. 불쌍한 나의 윤지.

윤지)
 저 씨발놈. 죽여버릴 것이다. 파멸로 몰아넣어야 직성이 풀리겠다. 하지만 이따금씩 나는 저 씨발놈을 사랑한다고 생각해. 저 씨발놈도 그래, 나를 사랑한다고 했어. 그 순간만큼은 서로에게 진심이었을거야, 그것마저 부정하고 나면 내 스스로가 너무 불쌍하고 또 멍청해 견딜 수가 없을테니까. 그냥 저 새끼가 씨발놈인게 문제일 뿐이지.
 민구가 어째서 아직까지도 나에게 미안함을 갖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내 삶을 스스로 선택했다. 어릴 적 잠깐의 추억들로 나를 영영 소유할 수 있다고 믿는 그의 순수함은 어쩌면 저 씨발새끼의 가식적인 거짓말보다도 더 나를 화나게 할 때가 있다.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내 손으로 직접 일을 해낼 수 있도록, 강해지고 똑똑해지고 독해지기로 했다. 찾아가서 필요하다면 사지를 절단이라도 내놓은 다음 대답을 들을 것이다. 대답 여부에 따라 그 뒤의 일을 생각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