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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연재/연극이 끝난 후, Play for me (드라마, 관계)

연극이 끝난 후 (Play for me) - (2)

by 구운체리 2022. 1. 28.

2.
 규민이 전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규민 혼자만 몰랐다. 용주도 그것을 알면서도 어울리고 있는 것이었고, 심지어는 창수도 그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지만 모른채 할 뿐이었다. 정욱이 반장으로써 적당한 선에서 잘 통제하고 있으니.
 왕따로 인해 사회성을 기를 기회가 없는 것이 먼저인지 타고난 사회성이 결여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른인 창수조차도 가끔 규민에게 분통이 터지는 일이 있었던 것이다. 규민이 아니라도 아이들은 다른 대상을 필요로 할 것이고, 기왕 희생양이 필요하다면 차라리 규민이 되는 편이 편하다고 창수는 멋대로 생각했다. 아니, 정욱의 생각에 동조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다.
 선생으로써 자격미달인 행동이지만, 정욱의 입지와 그 부모님이 학교 뿐 아니라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제법 골치가 아파 교장선생도 쩔쩔매는 마당에 한낱 월급쟁이인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합리화를 애진작에 마쳐두었다.
 하지만 정욱은 그렇게 자신에게 굽신대는 듯 보이는 창수를 존경은 커녕 좋아하지도 않았다. 이따금씩 아이들이 도를 넘는 수준으로 유치하게 규민을 갈구려고 할 때 정욱은 자리를 피해버리고는 했는데, 어떤 때는 창수마저 그 무리에 동화되려는 조짐이 보이는 것이었다.
 창수는 곧 자신과 정욱 사이의 위계가 강화되는 시점이 올 것이고, 그때면 지금껏 일구어 온 호감도의 열매에 그 부모님의 이자까지 쳐서 이득을 보리라 기대하고 있었다. 바로 생활기록부. 정욱의 명문대 진학을 온 학교가 기대하는 만큼, 정욱 또한 절실할 것이니 담임인 자신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하지 않겠는가. 주변 선생들의 가시돋힌 시선 속에 그런 시샘이 담겨있다는 것을 창수는 짐작하고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고2 여름방학이 지난 뒤 정욱은 담임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바로잡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여느 수업 때처럼 창수는 규민에게 곤란한 질문을 던졌고 규민은 평소보다도 더 멍청한 대답을 했다. 정욱이 보기에 그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반에 아무도 없었다. 아이들은 평소처럼 정욱의 즉각적인 반응을 기다리며 숨죽이고 있는데, 정욱이 인상만 쓰고 있자 창수가 그 역할을 대신하기로 마음먹은 것 같았다.
 “어휴 저 바보.” 그리고는 정욱이 그랬을 때처럼 아이들이 폭소를 터뜨리기를 기다린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칠판을 바라보고 있는데, 뒷통수에 정욱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대신 날아와 꽂히는 것이었다.
 “그러면 선생님이 대신 대답해보시죠.”
 “뭐, 뭐라고? 방금 어떤 새끼야?” 창수는 정욱의 목소리를 못 알아들었을리 없지만 순간적인 인지부조화를 견디지 못하고 잔뜩 인상을 구기며 반 전체를 향해 소리를 질러버렸다. 그렇게 기선을 제압해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조용히 상황이 지나가리라 기대하며. 하지만 정욱은 그를 똑바로 쏘아보고 있었다. 네가 어떻게 감히?
 “저도 궁금합니다, 선생님. 정답이 뭔가요?” 무슨 냄새를 맡았는지 반에서 공부를 가장 잘하는 주헌이가 틈새를 치고들어왔다. 주헌은 평소에 정욱을 시기하고 견제한다는 듯이 행동했지만, 사실상 그 누구보다 정욱을 떠받들고 있다는 것을 반 아이들 모두가 알고 있었다. 아, 물론 규민만 빼고.
 “너희들 갑자기 뭐야, 여름 방학동안 뭘 잘못 먹었어?”
 비록 창수가 정욱 앞에서 쩔쩔매는 모습은 보일지라도, 그는 키가 190에 몸무게는 120을 넘는 거구였고, 잦은 흡연과 음주로 인상도 사나워 학교의 사천왕 중의 하나로 불려왔다. 이름도 무려 왕창수, 창수 더 킹. 사천왕 중에서도 최강을 꼽히는 그의 교직생활을 통틀어 가장 당혹스러운 순간이었다. 그를 구해준 것은 때마침 들려온 굉음과 장군의 기지였다.
 “저기 저거 소리나는거, 선생님 차 아니에요?”
 다른 이유로 창수를 고깝게 보던 장군이 언젠가 한번 걸려봐라하고 설치해 둔 벽돌 트랩을 이때다 싶어 냅다 작동시킨 것이다. 창수가 애지중지하던 고급 외제차는 돌에 맞아 머리통이 깨진 채 곤경에 처한 주인을 애타게 찾으며 빽빽거렸고 창수는 “너희들 종례 때 보자, 반장 너 끝나고 교무실로 와라.” 하며 추잡한 모습으로 반을 뛰쳐나갔다.
 아이들은 그제야 환호성을 지르고 박수를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