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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연재/연극이 끝난 후, Play for me (드라마, 관계)

연극이 끝난 후, Play for me - (3)

by 구운체리 2022. 2. 2.

3.
 정욱은 수업 중에 창수의 권위에 도전한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지 않았고, 장군은 창수의 차에 가한 테러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았다. 대략 3층 높이에서 창밖으로 벽돌뭉치를 집어던진 일이 창수의 차를 직접 겨냥한 것이라면 그것대로 문제였고 그렇지 않은 사고라면 훨씬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정욱이 창수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왔는지 모르겠지만, 창수는 그 날 이후로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겠노라 선언하는 대신에 그 날 일어난 일체의 일들을 잊기로 약속했다. 어쩌면 그 테러가 자신을 정조준한 것이며 본인이 그런 일을 당할만큼의 잘못을 했다고 인정을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창수는 실제로 보다 나은 선생이 되었다.
 가장 먼저 보인 행동은 수업시간에 규민을 따로 불러세운 다음 고개숙여 사과를 건넨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그 누구라도 규민에게 못되게 굴었다가는 가슴 속에 봉인해둔 피의 바람을 해제할 것이라 으름장을 놓았다. 실제로 그 날 이후 그 누구도 규민의 말을 잘라먹거나 조롱하지 않았다. 심지어 장군은 학교가 끝나고 조용히 찾아와 그때 뺏어간 돈 오만원을 ‘잘 썼다’며 돌려줬다.
 “빌리는거라고 했잖아. 친구끼리 이자 정도는 까줄 수 있지?”
 규민은 갑작스레 벌어진 주위 상황의 변화에 얼떨떨했지만 기분이 좋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밝지 못했던 학교 생활에 대한 모든 책임이 자신의 잘못이나 필연적인 운명 때문이라고 생각해왔는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려나 싶었다. 실제로 규민은 보다 밝고 긍정적인 사람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처음 일주일 동안은 규민도 친구들도 바뀐 상황에 적응하지 못한 채 어색한 과도기를 거쳤다. 어떤 여학생은 습관적으로 규민의 말을 끊고 소리를 지르려다 급작스럽게 입을 틀어막고는 눈웃음을 지으며 ‘미안’이라는 입모양을 수줍게 보여주었다. 상덕은 매점으로 향하는 규민의 등을 평소처럼 힘차게 후려쳤는데, 손이 등에 닿는 순간 잘못을 깨달았는지 그 얼얼한 손으로 자연스럽게 규민의 어깨를 붙잡아 어깨동무를 만들며 어색하게 웃었다.
 “아이고, 너무 세게 쳤나. 친구, 뭐먹으러 가니 오늘은 내가 사줄게.”
 하지만 딱 그 일주일이 지나고나니 모두가 처음부터 그래왔다는 듯이, 다른 친구들과 똑같이 규민을 대하는데에 익숙해졌다. 애초부터 따돌림이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이제 규민은 숙제나 필기 등을 놓친 것이 있으면 정근이 대신 주헌이에게 물어볼 수 있었고, 가까운 자리의 친구들과 준비물을 서로 나누어가며 사용할 수 있었다. 그를 투명인간 취급하던 여학생들과도 가벼운 대화가 가능해졌다. 여전히 규민은 적당한 대답을 찾는데 서툴렀지만, 이제는 상대가 짜증을 내지 않고 웃으며 기다려주거나 심지어 적당한 문장을 골라내는 일을 도와주기도 했다!
 ‘그러니까, 너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런 거였지?’

 규민이 가장 좋아지리라 기대했던 부분은 용주와의 하교길이었다. 이제는 굳이 다른 친구들의 눈을 피해 먼 길을 돌아갈 필요가 없었고, 반에서 이야기를 나누어도 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규민의 의기소침함이 전염된 것인지, 혹은 자기 세상에 침잠해있는 동안은 미처 눈치채지 못한 것인지, 용주는 대화하기에 편안한 상대가 아니었고 생각만큼 자신을 친밀하게 대해주지 않았다. 아니, 새로 생겨난 친구들보다도 서먹하게 자신을 대하는 것이 보여 규민은 서운해졌다.
 하지만 규민은 그런 용주의 모습을 과거의 자신을 돌아보는 반면교사로 삼기로 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 만으로도 얼마나 나 스스로가 성장한 것인가, 하고 규민은 뿌듯해했다. 
 ‘나도 그동안 용주처럼 저렇게 행동해 온 거라면, 아이들이 그동안 나를 상대해주지 않은 것도 이해가 가.’
 어느 날 규민은 정욱을 찾아가 이런 고민들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갑자기 이런 변화가 생긴 것은 정욱이 수업시간에 창수에게 반기를 든 그 날의 사건이 도화선이었다. 정욱은 주헌이 다음으로 공부를 잘했고, 공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것들을 학교에서 1,2등을 다툴만큼 잘했기 때문에 그가 자신을 지나가는 개미새끼만큼도 신경쓰지 않는다해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더더욱, 정욱에게 직접 물어보고 싶었고 어쩌면 대답을 들을 수 있다고 기대했다. 정욱의 자리를 찾아가 말을 걸기로 마음먹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때까지 러브레터를 들고가는 것처럼 심장이 두근거렸고, 모든 아이들이 그 심장소리를 들으며 박자를 맞춰 자신을 비웃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규민 스스로가 규민을 가장 심하게 비웃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걱정이 바보같다고 느껴질만큼 정욱은 규민이 찾아와 말을 걸어준 것에 감동을 받아 울먹이는 것에 가까운 표정까지 지었다. “끝나고 따로 얘기할까?”
 규민은 처음으로 용주가 아닌 친구와 단둘이 하교길을 걸었다. 정욱은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하게 그동안 규민이 미숙하게 행동했던 것들, 그리고 거기에 반 친구들이 마찬가지로 미숙하게 대응했던 것들에 대해 설명해주었고 사과를 했고 또 실용적인 도움들을 주었다.
 규민은 정욱과 단둘이 걸으며 이야기를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자존감이 정수리를 떠나 태양계 어딘가에 올라있음을 느꼈지만, 정욱의 조언은 보다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것들이었다. 규민은 그날 공터에 앉아 정욱이 시킨대로 목소리를 끊기지 않게 내는 연습을 하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보는 연습을 하고, 또 앞으로 공부와 운동을 열심히 하겠다고 약속했다.
 실제로 규민이 한시간 일찍 학교에 나오면 정욱과 그 친구들이 돌아가며 공부나 운동 등을 도와주었다. 그것으로 성적이 대단히 오르거나 체격이 좋아진 것은 아니었지만, 반 아이들과 일상적인 대화 소재를 공유하며 자기만의 세계를 벗어나도 안전하다는 확신을 갖는데에는 큰 도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