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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연재/연극이 끝난 후, Play for me (드라마, 관계)

연극이 끝난 후 (Play for me) - (1)

by 구운체리 2022. 1. 26.

1.
 “어휴 저 바보.” 정욱의 일침에 반 아이들이 와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담임인 창수는 그 분위기에 동조하지는 않았지만 별다른 저지를 하지도 않은 채 다만 소란을 진정시키고 진도를 나가려고 했다. “자, 자, 그만, 집중.”
 규민은 자신의 대답이 왜 바보같은 생각인지 몰랐지만, 반 전체의 놀림감이 되니 부끄러움에 어쩔 줄을 몰라 고개를 푹 숙였다. 자신이 반 아이들을 한번 크게 웃게 만들었노라 위안삼아보려 했지만, 기실 아이들을 웃게 만든 건 정욱의 공임을 알고 있었다. 자신을 놀림감삼아서.
 하루이틀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놀림감이 된 날은 수업이 끝나고 정욱이 항상 규민의 자리를 찾아왔다.
 “그냥 넘어가면 너가 괜히 무안할까봐, 내가 잘 무마한거야. 알지?”
 정욱은 공부도 제법 잘하고 어른에게 예의도 바르고 행실도 타의 모범이 되어, 아이들의 높은 지지와 선생님들의 총애를 받는 학생이었다. 그는 자신의 꿈이 대통령이라고 얘기하고 다녔는데, 벌써부터 선거 준비를 하는 듯이 사람들과 고루 어울리며 좋은 평판을 다지고 다녔다.
 그런 그의 곁에는 항상 영규와 성중이가 붙어다녔다. 정욱은 항상 뭐가 그렇게 바쁜지 규민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쌩하니 나가버렸는데, 그러고나면 꼭 영규가 종종걸음으로 따라와 한마디를 거들었다. “사람이 말을 하는데 대답을 해야지 임마. 너 졸업하고 나면 정욱이랑 말도 못 섞어, 응?”
 영규도 마찬가지로 대답을 기대하는 건 아니었다. 사실 규민이 반에서 말을 섞는 친구는 셋 정도 밖에 없었다. 가장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정근이와 애니메이션에 심취한 우중이, 그리고 행동이 크고 생각이 느려 종종 사고를 치곤하는 용주.
 정욱은 규민을 포함해 그렇게 넷을 싸잡아 ‘작은 결함이 있는 친구들’이라고 부르곤 했다. 규민은 아이들과 대화가 잘 되지 않았다. 규민이 무슨 말을 하거나 대답을 하면 상대방은 화가 나서 울분을 토하곤 했다. 언제부터, 왜,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대화 패턴은 유행이 되었다. 이제는 규민이 입을 열면 목소리가 나오기도 전에 먼저 화를 내고 자리를 떠나는 것이었다. 규민은 그래서 되도록 대답을 안하려고 노력했다.
 정근이나 우중이와는 그나마의 대화가 가능했다. 아니, 기능했다고 해야하나. 숙제 여부나 준비물을 물어보는 간단한 질의응답 이상의 수준의 대화를 나눠본 일이 없었고 그나마도 답을 서로 모르는 경우가 많았으니 회화 연습 정도의 의미가 아닌가.
 용주만은 예외였는데, 둘은 학교가 끝나면 서로 다른 하교길을 빙 돌아 다른 아이들이 사라지고 난 뒤에 중간에서 만나 하교를 같이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요새 유행하는 티비 프로나 게임, 그리고 일본에서 온 라이트 노블에 대한 이야기 꽃을 피우다보면 시간가는 줄을 몰랐는데 그런 이야기를 학교에서 하기에는 어쩐지 눈치가 보였던 것이다.
 무엇보다 규민이 무슨 말만 하려고들면 짐승처럼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고 싶어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짓궂은 녀석들이 있었기에, 규민은 수업시간에 억지로 대답해야 할 때가 아니면 되도록 목소리를 쓰지 않았다.
 한번은 수업 때에도 상덕이라는 친구가 그런 장난을 치다가 반 전체가 호통을 들었는데, 특히 반장인 정욱이 대표로 크게 혼쭐이 났다. 정욱이 혼나는 일은 거의 본 적이 없었기에 아이들은 수업이 끝나고 그를 위로하며 규민에게 보복을 하려했지만, 정욱이 오히려 씩씩하게 나서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중재를 맡겠다고 했다.
 그때부터, 수업시간에 규민이 어쩔 수 없이 어떤 대답을 하고 난 뒤면 정욱이 적절한 추임새로 정적을 메꾸는 패턴이 자리잡혔다. 정욱이 칭찬을 하면 아이들은 박수를 쳤고 우스운 반응을 보이면 폭소를 했고 날카롭게 반박을 하면 ‘오오’하며 휘파람을 불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면 꼭 정욱이 찾아와 규민의 머리를 푹 누르며 쓰다듬고는 밖으로 나갔다.
 용주와의 하교길만이 규민에게 있어 학교 생활의 유일한 낙이었다. 그나마도 경로를 반쯤 포기한 것은, 둘이 어울리는 것을 지켜보던 장군과 그의 패거리들이 어느 날 길을 지키고 서있던 것을 마주쳐 낭패를 본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동작이 큰 용주가 휘두른 백팩에 일부러 뛰어든 것이 분명한 상덕이 맞으며 시비를 걸었고, 규민이 무어라 대답을 하자마자 뒤에서 기회를 엿보던 지운이 “뭐 이 씨발놈아?”라고 욕을 퍼부으며 달려든 것이다. 세영마저 가담해 용주를 걷어차 쓰러트리고 나니 대장 격인 장군이 나타나 용건을 말했다.
 “가진 돈이나 다 내놓고 빨리 꺼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