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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연재/여행의 목적 (일상, 미스터리)

여행의 목적 - (2)

by 구운체리 2022. 7. 16.

13일 오후 1시
점심에는 스노콸미 산을 올랐다. 약 5마일정도 되는, 경사가 가파르지 않은 가벼운 코스였다. 봄이 한참 지났지만 시애틀은 북쪽에 있는 지역이고, 산을 오르며 지면의 복사열과 멀어질수록 기온은 더욱 떨어진다. 중턱 즈음부터는 겨울이었는데, 곳곳에 녹지않은 눈들이 쌓여있었고 저 멀리 높은 곳에는 영영 녹지않는 만년설이 드리웠다. 여름에도 스키를 탈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생태학에 문외한인 나에게 스노콸미 산의 색감은 그저 동화같았다. 서서히 녹아내리는 눈 때문에 다습한 환경이 유지가 되어 짙은 녹색의 이끼들이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 만연했다. 두꺼운 나무들이 군데군데 잘려나간채 쓰러져있었는데 속살이 새빨갰다. 가스관의 선명한 빨강색과는 달리, 생고기의 속살을 찢어 약간의 갈변과정이 일어나기를 기다린 듯한 색이었다. 나는 살아있는 나무가 몸이 두동강나며 비명을 지르는 상상을 했다.
가로막는 장애물이 없는 하이킹 코스의 정상은 바람이 특히 셌다. 점심으로 챙겨온 샌드위치를 씹어먹으며 배경을 감상했다. 압도적인 풍광이었다. 빽뺵한 침엽수들은 바람의 방향을 안내하듯 일제히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고 그 끝에 가장 높은 정상이 보였다. 만년설을 흰머리처럼 덮어쓴 봉우리 뒤로 희고 검은 구름이 터지는 폭죽같은 모양으로 산개해 있었는데, 눈보라가 덮쳐오다 멈춘 듯한 모양이었다.
대자연 앞에서 인간의 고뇌는 하찮았다. 저 거대한 우주를 마음에 품고 있노라면 오늘과 내일 사이의 구분은 아무래도 좋은 것이 되었다. 그것이 여행이 인간에게 주는 위로가 아닌가. 산을 내려가면 나는 다시 새로운 오늘을 살고, 친구는 오늘의 연장인 내일을 준비하겠지만 지금 당장 샌드위치를 씹는 동안에는 아 조금 쌀쌀한데, 하는 것만이 중요한 관심사였다.

13일 오후 4시
친구는 나를 도심에 내려주고 화상회의를 위해 먼저 집으로 향했다. 나는 여행자의 은행 업무를 보고 나오는 길에 급격한 피로감을 느꼈다. 친구의 환영과 여행의 설렘 속에서 잊고 있던 여독이 머리를 톡톡 건드는 기분이었다. 혼자였다면 절대 이렇게나 부지런히 움직이지 않았을것을. 나는 도심을 둘러보기로 한 계획을 대폭 축소하는 대신, 친구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보다 열심히 눈에 담아두기로 했다.
거리에는 어느 흑인 여성이 같은 문장을 반복해서 외치고 있었다. 홍보인가, 시위인가, 혹은 도움을 요청하는 것인가. 발음들이 뭉개져있어 한번에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지나가는 행인들은 때로 귀에서 이어폰을 빼고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기울이다가 도로 이어폰을 꽂고 빠르게 지나치곤 했다. 멈춰서는 기색이 보이면 그녀가 다가왔기 때문에 보다 빠른 보폭으로 지나쳐야 했다. 맞은 편 길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반복해 듣다보니, 그녀가 구걸하는 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곳은 구걸도 저렇게 꼿꼿하고 당당하게 해야 살아남는 곳인가. LA의 길거리에는 널려있던 노숙자들이 이곳 내가 지나온 길목에는 잘 보이지 않더라니.
시애틀의 버스는 LA의 그것보다는 평안했다. 흔들림이 적고, 승객들이 우호적이고, 안내가 친절했다. 까딱하여 정거장을 놓치더라도 곤란하지 않을 것 같았다. 최악의 경우에는 우버를 부르면 되었다. 나는 하루 묵었다고 익숙해진 듯한 동네에 도착해 언덕을 오르고 공기를 마시며 공기와의 유대감을 쌓았다. 전날에 골목에 내어놓고 거두어들이는 것을 깜박했다는 세대용 쓰레기통을 회수해 들어가며 동네사람이 된 것 같은 권태로움을 잠시 흉내내보았다. 흉내에 지나지 않을 땐 권태마저 즐거움이 된다.
친구의 회의는 생각보다 길어졌고 나는 까무룩히 깊은 잠에 빠졌다. 눈을 떠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흘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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