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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연재/래빗 헌팅 (일상)

래빗 헌팅 - (5)

by 구운체리 2023. 4. 8.

5) 승수
2층? 아니면 3층? 불 꺼진 왼쪽 집? 용 그림이 그려진 오른쪽 집? 고민하는게 의미가 있나. 아 군자는 큰 길로 가라고 했는데, 난 군자가 아니잖아. 하지만 이제부터 정말 군자로 살건데. 생겨먹은대로 가야해, 되고싶은 쪽으로 가야해? 이제 진짜 정신 차렸는데. 한번의 기회만 더 있어준다면.
나는 지금 무서운 형님들한테 쫓기는 중이다. 잡히면 아마 죽을 것이다. 내 앞에는 사다리가 있다. 들어갈 수 있는 발코니는 네군데가 있다. 넷 중의 무엇이 나를 살릴 수 있는 생문인지 모른다. 아니 생문이 존재하긴 하나. 어쨌든 움직여야해. 가만있으면 살 확률은 0이야.
나는 아무 곳에나 사다리를 걸치고 발코니에 올랐다. 이곳은 온갖 침묵들이 소음을 아득히 덮는 비밀스러운 곳. 인기척이 있는 것은 알고 있었다. 숨죽인 발소리가 들린다. 나는 기도한다, 부디 선의의 손길이기를. 살짝 발코니 문이 열리고 가느다란 손이 삐져나온다. 가느다란 손가락이 두번 위아래로 살짝 움직였다. 
옳다구나, 살았다! 나는 신이 나서 냅다 사다리를 걷어차고 호다닥 방 안으로 숨어들어갔다. 나를 구해준 젊은 여자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병신아... 사다리를 끌어올려놨어야지..."
아.
그러니까 내가 또 왜 이런 일에 휘말려있냐면. 후... 그러니까 나처럼 살지 말라고 했잖아요.

군대를 전역하고 나니 내 봄날의 절반이 지나갔다는 현실감각이 서늘하게 뒷덜미를 후려쳤다. 아버지는 종종 내 뒷통수를 후려쳤다. 기환이는 벌써 돈을 벌기 시작했고 기열이는 대학 졸업을 코앞에 두고 있으며 우선이는 잘생겼다고 좋아했다. 아니 그건 근데 왜, 내 와꾸의 절반은 아버지 책임도 있는데. 솔직히 저 아버지랑 젊을 때랑 똑같이 생겼잖아요. 엄마는 내가 그래도 좀 더 낫다던데.
그래도 우선이랑 나는 아직 동급이 아니냐고, 젊어서 노는 것도 같이 놀았다고 항변해봤지만 똑같이 놀았으면 잘생긴 놈이 승리하는게 인생의 법칙이긴 했다. 그리고 사실 놀기도 우선이가 더 잘 놀았다.
백날천날 게임만 붙들고 살던 나보다 가끔씩 두들기는 우선이가 더 실력이 좋기도 했고, 우선이는 게임 말고도 할 줄 아는 것들이 많았다. 그래서 여자들한테 인기도 많았다. 우선이와 함께라면 밤새고 가는 국밥집도 헌팅포차가 되었고, 타코트럭이 돌아다니는 왕십리는 로스앤젤레스가 되었다. 화장실 비좁은 복도는 런웨이가 되고 불규칙적인 숨소리는 여자애들 한정으로 웃음가스가 되었다. 나는 왕십리 국밥집의 좁은 화장실에서 불쾌하게 헐떡이는 잠재적 위협요소일 뿐일테고.
할머니들이 동네 옥상에 말리려고 널어놓은 건고추를 닮았다며 만취해서 나를 보고 깔깔웃던 승혜야 보고있니. 듣고서 기분상한 척 했지만 속으로 나도 웃었다. 자존심 상했어. 너 꿈이 개그우먼이라 그랬나, 소질있더라. 그러고는 나보고 자꾸 고추, 고추 하길래 잠깐 설레기도 했어. 근데 우선이랑 잤다며. 미안한데 우리 친구들 중에 별명이 고추인 애는 따로 있어. 이름에 성기가 들어가거든. 네가 내 스타일만 아니었더라면 찾아가서 배빵을 갈겼을거야. 물론 그냥 하는 말이야, 난 그럴 배짱도 없거든. 씨발, 사랑했었다.
친구들 중에 내가 제일 못난 것은 참을 수 있다. 참는게 아니고 그냥 아무렇지도 않다. 막막하지만 내 삶에 큰 불만은 아직 없거든. 딱 하나, 오직 나만이 나이 스물넷에 동정이라는 점만 뺀다면. 우선이가 내가 먼저 좋아한 여자 수십명과 먼저 자고 다녔다고 해도 질투는 나지 않는다. 내가 여자여도 그랬을테니까. 하지만 개중에 한명쯤은 특이 취향이 있어서 나 같은 것도 좋아해 줄 법하지 않나.
아니 좋아하지 않아도 그냥 궁금해서라도 한번정도 자줄법하지 않아? 저 따위로 인생 대충 사는 것 같은 애는 무슨 자신감이 있을까, 이 남자 침대에선 어떨까 궁금하지 않아? 사실 나도 알아, 내가 고추를 다섯 개를 달고 다닌다고 해도 인체의 신비전이 아닌 침대에서 나를 단둘이 보고싶지는 않겠지.
아무튼 그 단 하나의 열등감이 비극의 시발점이 아니었나 싶다.

기열이는 아직 늦지 않았다고 했다. 제일 먼저 졸업하고 돈 벌기 시작한 새끼가. 하지만 나도 나이가 들면서 철이 들었다. 누구나 속사정은 조금씩 있는 법이더라. 나는 기환이 녀석 집안 사정이 어려운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지만 누구에게도 내색하지 않고 남몰래 도왔다.
기환이는 성격도 사내놈답게 호방한 것이 어울릴 때 썩 재밌는 부분이 있었고 얼굴 생김새도 나랑 비슷한 것이 같이 다니면 나도 꿀릴 것이 없었다. 선천적으로 몸이 약한 내가 기환이와 절친이라는 이유로 잠재적인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은 일이 몇번 있어서 나는 기환이를 귀한 친구로 여겼다.
내가 기환이를 친구로 사귄다는 것을 아버지는 무척 뿌듯하게 여기셨다. 아니 나를 못마땅히 여겨셔 그러신지 모르겠지만 내 친구들을 전부 좋아했다. 여러번 말했다시피 기열이는 똑똑해서, 우선이는 잘생겨서. 하지만 아버지가 가장 좋아한 친구는 기환이인데, 기환이 아버지의 사내다운 기백이 그 중에 제일 훌륭한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시곤 했다.
주먹깨나 쓰던 위험한 과거가 있는 분이라는 소문에는, 어차피 우리 모두 방식은 달라도 다 누군가의 노예로 살게 되기 마련이나, 부끄러움과 거침이 없는 대장부의 기개를 유지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라고, 무슨 되도않는 억지를 끌어모아가며까지 그분을 존경했다. 그냥 힘센 사람 편이 되고 싶으셨던 걸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동네 어귀에서 두어번 시비가 걸렸을 때 지나가시던 기환이 아버지의 도움으로 원만히 해결된 적이 있던 걸로 안다.
기환이 집안 사정이 어렵다는 말을 듣고 아버지는 도리어 도울 것이 생겨 기쁘다는 기색을 비추셨다. 어머니는 탐탁치 않아했지만, 어쨌든 명목상으로 나의 독립을 돕기 위한 돈이니 기환이는 내 덕에 돈을 모아 자기 집안을 거들게 될 수 있었다. 나는 그런 비밀들을 아무에게도 누설하지 않았음에 자부심까지 있었는데, 어느 날 보니 다른 녀석들도 다들 기환이 집안 사정을 대충 아는 분위기더라. 본인이 떠들고 다닌건가? 아무튼 나는 아님.
기환이가 군대에서 돌아와 배빵 한대로 나를 다시 받아줘서 한편으로는 다행이었다. 아버지에게는 내가 어떤 계기로 4급 공익이 되었는지 솔직하게 말씀드리지 못했었다. 그냥 입소일에 발을 헛디뎠다 정도로 둘러댔는데, 아주 쉰소리는 아니지. 아무튼 작은 거짓말들이 쌓이다보니 내가 왜 이 자취방에 계속 당신 돈을 받아가며 살아야하는가에 대해 슬슬 소상히 소명해야할 때가 오고 있었는데 기환이와 다시 어울린 것이 자연스러운 핑계가 되어주었다.
기환이가 대학을 마저 다니지 않고 스스로 돈을 벌겠다고 했을 때 나는 기환이가 나를 용서하지 못한 줄 알았다. 방에서 기환이를 마주칠 일이 있을때마다 나는 속으로 딸꾹질을 삼켰지만 그게 내 삶을 긴장시키는 원동력이 되기는 했다. 내가 이룬 것 없이 몸도 망가진 채 삼수에 복학까지 한 처지라 그런 것도 있지만, 이젠 학교에서 친구들과 술을 먹고 동아리 활동을 하는 것도 예전만큼 흥이 나지 못했다. 매우 자연스럽게 공무원 시험을 알아보게 되었고, 기환이가 그것을 쪼르르 일러바쳤는지 기열이가 이런저런 도움을 주기도 했다.
세번째 학고를 맞은 건 순전히 실수였다. 그러니까, 원래부터 공무원 시험 준비에 온 힘을 쏟을 생각이었는데 그러려면 휴학을 하던지 수업을 듣던지 했어야 된다는 것을 꽤 많이 늦게 깨달아버린 것이다. 처음에는 복학의 설렘에 가득 차있었기 때문에 수강신청도 잔뜩 해두었다. 대개 신입생들과 어울려듣는 일이 많은 과목들이었는데, 그렇다보니 상대평가 과목들이 많았다. 몇몇 과목들은 과제를 말없이 몇 개 안 냈더니 F학점이 확정되어 있었다.
예전에는 나중에 수습하면 되지, 이따위 생각을 했다면 이제는 명치 한 부분이 찌르르 하고 떨렸다. 나이먹고 생긴 최소한의 책임감인지, 그냥 기환이한테 맞은 후유증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명치가 떨리면 기환이 주먹이 생각이 났고 내 양팔을 붙잡던 다른 두 놈의 억센 기운과 성난 숨소리가 생각이 났다. 친구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공포에 떨면서 공부에 매진했다. 학교에서 쫓겨난 이젠 돌이킬 수 없었다.
이년 만에 9급에 붙었다. 기열이는 7급을 도전하지 않겠느냐고 한번 제안했지만, 두번은 하지 않았다. 나는 대신 대학이나 마저 졸업하고 싶어졌다. 이런 이야기들을 어렵게 용기내어 아버지께 말씀드리니 옛날부터 다 알고 있었느니라 얘기하며 그래도 남자가 대학은 나와야지, 하셨다. 대장부답게 잘못을 먼저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일이 얼마나 칭찬받을만한 자세인지 아버지가 몇번 훈계하신 적이 있어서, 살면서 한번 정도 통할 것이라 믿었는데 역시나 통했다.
사실 어제 어머니가 먼저 처음 들으시고 아버지를 진정시켜 둔 것도 알고 있었다. 겨우 맘 잡고 살아보려는 애 괜히 겁줘서 또 망치지 말라고 드물게 역정을 내셨다고.
그래, 서로 간의 이런 객관화에 기반한 애정이란 너무 감사하고 편안하네요. 제가 호강은 못 시켜드려도 당신들 노후에 짐이 되지는 않겠습니다 부모님.

다시 들어간 학교에서 새로 만나는 친구들은 어리고, 원래 친구들은 바쁘고, 나는 나이만 먹었지 숙맥인데, 몸은 한창인데. 다들 경력직을 우대하는데 나는 타이밍을 놓친 생초짜란 말이지. 그렇다고 돈 주고 하고 싶지는 않았다. 도덕적인 가치관 때문은 아니고 그냥 겁이 많아서. 섹스말이야 섹스.
사실 얘기 들어보면 그런데는 친구들이나 형님들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던데 내 친구라고 셋 있는 놈 중에 그런 쪽으로 날 리드해 줄 놈이 없었다. 우선이는 너무 잘났고 기열이는 너무 샌님이고 기환이는 너무 고지식해서. 그래서 혼자 검색을 막 해봤다. 당연하게도 검색이 안 되었다. 아니 우리나라 성매매 시장이 그렇게 활발하다면서 다들 어디서들 그렇게 알아가지고 막 하고다니고 그러냐, 응?
그러다 문득 기열이가 말한 공무원의 품위유지 어쩌고가 생각났다. 혹시 누가 내 됨됨이 검증한다고 검색 기록이라도 뒤져보면 어쩌지? 혹시 나를 고객으로 맞았던 누군가 민원 신고하러 동사무소 왔다가 날 알아보면 어쩌지? 그런데 설치된 몰카에 찍힌 내 사진이 인터넷에 돌게 되면 어쩌지? 나는 그렇게 거기에서 마음을 접고 있었다.
검색기록 때문일까, 겁에 질린 나를 살살 달래면서 자극으로 이끌어내는 광고들의 노출 비율이 많아진 것 같다고 느꼈다. 개중에 어떤 것은 성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동네 친구를 찾아준다는 식으로 광고를 했다. 동네 친구 찾는 어플이 십수개는 되는 것 같은데, 다섯 개 즈음에서 나는 시도하는 것을 멈추었었다. 그나마 매칭이 되는 것들은 죄다 진짜 친목을 도와주는 것들이었다. 맛집이나 운동메이트 같은 것들.
다 무슨 소용이야, 내가 진짜 친구 찾으려는 것도 아닌데.
그런데 어느 한 광고에서 보여주는 앱은 대놓고 야릇한 냄새를 흘리면서 과금을 유도했다. 내 사진을 노출하지 않고 상대의 사진만을 보고 말을 걸 수 있는 프리미엄 기능을 사용할때만 돈을 내는 구조였는데, 반대로 그만큼 매력적인 사람은 상대의 결제를 유도해 돈을 벌 수도 있다고 했다. 대놓고 '너는 매력이 부족하니 돈이라도 써서 메꾸라'는 메세지였지만, 그 솔직함이 오히려 심금을 울렸다. 그렇게 첫 수렁에 발을 담갔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이백만원의 돈을 투자해 매칭된 여자와의 끈적한 전화통화에까지 이르를 수 있었다. 가슴골을 드러내고 몸매를 부각시키는 야시시한 속옷들로 프로필 사진들이 도배가 되어있을때 어딘가 불건전한 목적으로 설계된 플랫폼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야 했지만, 그저 돈을 벌 기회 때문에 자발적으로 다들 벗어제낀 것이겠거니 스스로 합리화를 한 것이다.
사적인 접촉은 권장하지만, 사후에 벌어지는 일에 대한 일체의 책임은 지지 않으니 스스로 주의하라는 문구가 로딩때마다 작게 떴지만 다음 화면을 빨리 봐야했기 때문에 화면을 연달아 두들기며 넘기기에 바빴다. 한번 대화 이상의 접촉을 한 대상의 프로필을 랜덤한 데이터 세계 너머로 보내지 않고 내 목록에 유지하기 위해서는 돈을 내야했다. 거기까지 오십만원이 나갔다.
전화가 연결되고 실제 여성의 목소리가 들리자 내 남은 이성이 조금 더 날아갔나보다. 수염난 중국인 아저씨가 런닝차림으로 조작된 채팅과 사진을 보내고 있는 가능성을 의심했었던 것이다. 영상통화를 하기 위해 오십만원을 더 썼고, 다음 오십만원은 그녀의 벗은 뒷태를 보기 위해 썼다. 마지막 오십만원은 그녀를 실제로 만나기 위한 돈이었다.
나는 들떠있었다. 다른 지저분한 수컷들과 달리 점잖게 수줍음타는 나의 말투가 호감이었다고 했다. 자신을 사람으로 존중하며 대해주어 고맙다고 했다. 그 뻔하고 뻔뻔한 수법에 홀릴 정도로 나는 조금 미쳐있었다. 여자는 가증스러운 암내를 살살 흘리면서 나를 천천히 꾀어냈다. 냄새의 농도가 너무 짙었거나, 조금만 빠르게 그물을 던졌더라면 나는 그 수상한 곳까지 남몰래 찾아가는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원체 겁이 많아서.
그러니까 그들은 아주 노련한 경험을 바탕으로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사냥꾼들이었다. 마지막 순간에 팬티를 내리기 전에 퍼뜩 생각난 기열이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내가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아직은 진짜로 모르겠는데 되도록 알게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고 말하던 기열이에게 나는 내일 우리 집에 오면 공짜 점심을 대접해주겠다고 대답했었다. 한심한 표정조차 귀찮다는 말투로 '너 언젠가 한번 사고칠 거 같으니까 조심'하라며 특히 여자 조심하라고 그랬었지. 어느 모르는 여자가 너 같은 놈한테 팬티를 보여주면 그건 네 겉모습이 아니라 가죽 속에 들어있는 것들이 값나가기 때문이라고. 장기기증 당한다고.
어떻게 알았지?
그러니까 그 여자가 오른손으로 팬티를 벗으면서 왼손이 다른 어딘가로 움직이고 얼굴에 띄우던 억지 야릇함 대신 '이제 퇴근이다' 하는 표정이 슬그머니 올라오는 것을 발견하자마자 나는 팬티 한장만 걸치고 미친듯이 뛰었다. 여자는 팬티를 두 다리에 걸치고 누워있는 자세였기 때문에 바로 추격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혹시 몰라서 배를 존나 세게 한대 치고 나오기는 했다. 다리 다친걸로 군대도 공익으로 다녀온 마당이라 그렇게라도 최선을 다해봐야만 했다.
난 이제 여자도 때려본 등신이 됐다.
그래서 그렇게 됐다.

바닥에 떨어진 사다리를 발견한 누군가가 내가 이 건물로 숨어들었을 수 있다고 판단해 건물을 뒤지고 다니기 시작했다. 구석에서 웅크리고 벌벌 떨고 있는데 날 구해준 여자가 내 머리채를 잡고 끌어다 침대에 눕히더니 자기 옷을 훌렁 벗어던졌다. 본능적으로 새까만 젖꼭지 한쌍과 눈을 마주쳤다.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라 정신이 아득해질 줄 알았는데 축 늘어진 젖꼭지가 나를 한심하다는 듯 노려보는 것 같아 눈을 피하게됐다.
여자는 얼빠진 표정과 팬티 속에서 빳빳해진 내 물건을 경멸스럽다는 듯이 번갈아 쳐다보더니 '살고 싶으면 아무짓도 하지말고 얌전히 누워있으라'며 뺨을 한대 갈기고는 내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소리를 지르면서 몸을 앞뒤로 흔들기 시작했다. 뭐야 이 미친 여자는, 아프잖아?
미친 여자가 질러대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에 귀가 멍멍했고 올라탄 몸무게에 짓이겨지듯이 비벼지는 성기에서는 고통과 쾌감이 번갈아가면서 느껴졌다. 심장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고 와중에도 최대한 고통은 줄이고 쾌감을 극대화하려고 허리를 꿈틀대는 본능이 이제는 스스로한테도 징그럽게 느껴졌다. 대체 무슨 상황이지 이게.
현관문이 벌컥하고 열리며 왜소한 남자가 성큼성큼 들어왔지만 여자는 지랄발작하듯이 움직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싸구려 야동에서나 들어봄직한 대사들까지 사이사이 섞고 있었다. 이 여자가 갑자기 진짜로 발정이 났나 생각이 들었는데 남자가 가까이 올 수록 두손으로 내 얼굴을 비벼뭉개듯이 덮으며 가려줄때서야 눈치를 챘다.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나는 눈을 감았다. 여자는 이제서야 인기척을 눈치챈 듯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뭐야 오빠, 다음 손님 바로왔어?"
"혜정이 일하는데 뭐하냐 등신같은 새끼야, 그만 쳐다보고 안 나와?"
"밖에 사고가 있어서, 실례했습니다. 좋은 밤 되십쇼."
남자들이 다시 나가면서 문을 닫을때까지 혜정이라고 불린 여자는 원래 하던 일을 계속했다. 그리고 잠시 뒤 조용히 내 몸에서 내려와 옷을 입었다.
"무슨 사정인지 안 궁금한데, 목숨 살린 줄 알아."
"혹시... 남는 옷은...?"
혜정은 내 가랑이 쪽의 안 좋은 사정을 흘깃 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그새 쌌냐? 대단한 토끼 납셨네. 원래 돈받아야 되는데... 살다살다 이런 그지새끼한테 적선을 다 해보네. 대충 주워입고 어디 찌그러져있다가 해뜨면 꺼져. 그 사이에 내 몸에 손대면 죽인다. 그냥 안 죽이고 아프게 죽일거야."

그렇게 저는 또 하루 살아남았답니다. 인생 최고의 사다리를 탔고, 조금 이상한 모양이긴 했지만 공짜 점심도 먹었네요. 이제는 정말, 새사람이 되어 국가에 헌신하는 일꾼으로 성실하게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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