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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연재/래빗 헌팅 (일상)

래빗 헌팅 - (6)

by 구운체리 2023. 4. 11.

6) 우선
아침에는 네개, 점심에는 두개, 저녁에는 세개가 되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내가 어제 산 코인 가격이다. 잠결에 스트롱인지 스트리퍼인지 뭔지하는 코인을 백달러어치 사뒀는데 일어나보니 사백이었고, 지금은 삼백이 되어있다. 이런저런 수수료를 떼고도 이십만원 정도를 벌었다. 업비트에 가입하고 하루만에 쥐어본 수익이었다.

그날도 내 방송에는 다섯 명 정도밖에 들어오지 않았고 후원은 한푼도 터지지 않았다. 그 중 두개는 손님이 조금이라도 있어보이려고 내가 만든 부계정으로 접속한 것이니, 세 명이 다녀간 셈이다. 그 중 마지막 녀석이 퇴장하면서 ‘포람페 뱅온. ㅂㅂ’ 하고 채팅을 치기에 나도 방송을 접고 따라가봤다.
포람페라는 예명은 ‘포르쉐, 람보르기니, 페라리’의 앞글자를 따온 이름이다. 세가지 스포츠카를 한대씩 구매할만큼 돈을 벌면 인증샷을 올리고 방송을 은퇴하겠다는 컨셉이었다. 상단에는 목표달성률이 막대그래프 형태로 떠있었다. 이미 포르쉐와 람보르기니의 게이지는 가득찼고, 페라리의 게이지가 1/3정도 차있었다. 그의 방송 인삿말은 ‘은퇴하기 딱 좋은 날입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였다.
그다지 매력적인 방송이 아니라고 생각됐지만 뭐에 홀린 듯이 한시간 정도를 지켜봤다. 꽤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시청자가 몇천명이 넘었기 때문이다. 놀리기 좋게생긴 외모와 그럴싸한 입담을 제외하면 하는 일이라고는 특별할 것 없어보였는데, 댓글 창은 광신도들 집단 같았다.
아니, 정확히는 두가지 신을 각각 섬기는 집단들이 모여 남북전쟁이라도 벌이는 것 같아보였다. 알 수 없는 용어들을 써가며 롱이니 숏이니 떠드는 것들이 투자에 관련된 용어라는 것을 알아채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페라리의 달성률은 실시간으로 오르락내리락 했는데 1/2 정도까지 올랐을때는 포람페가 작별노래를 틀었고 댓글창에는 ‘안녕’, ‘엿 먹어’ 이모티콘이 반반정도 비율로 뒤덮였다. 그러다가 페라리의 달성률이 0까지 떨어지고 람보르기니의 달성률 막대가 움직이기 시작했을때는 조롱의 의미를 담은 ’포람상조, 십억을 잃었습니다’와 '니 수준엔 모담세가 딱이야'로 댓글창이 뒤덮였다. 노래는 '다시만난세계'가 나왔다.
'모담세'는 모닝, 다마스, 세발자전거의 앞글자를 따온 이름이다.
마치 운동회라도 하는 듯한 시청자들의 단합력이 우선 재미요소였고, 포람페가 딸깍거리면서 하는 그래프 게임 같은 것도 제법 중독성이 있어보였다. 하지만 방송 상단의 게이지가 실시간으로 차고 빠지는 것이 비유적인 게임머니가 아닌 실제 현금가치의 등락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아채고나자 작은 충격을 먹었다.
업비트에 지갑을 만들고 돈을 넣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방송에서 나왔던 종목을 검색해서 매수버튼을 눌렀다. 정확한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서 st로 검색해서 나오는 것들 중에 시가 총액이 제일 높다고 나온 녀석으로 샀던 것 같다. 포람페도 ‘오늘은 페라리 채워야하니까 P로 시작하는 것들 좀 지켜볼게요’ 이러면서 아무거나 사대더만.
페라리는 F로 시작한다.

알고보니 주변에 내 또래 중에 코인투자를 시작하지 않은 사람들이라곤 나와 내 친구들 무리 밖에 없는 것 같았다. 비트코인 어쩌구 하는 뉴스는 몇번 들어서 알았지만 다른 세상 얘기인줄로만 알았는데 이제서야 눈이 띄인 기분이었다. 내 통장에 있는 이백만원을 전부 넣었더라면 나는 지금 육백만원을 들고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과, 람보르기니가 반토막나있는 포람페의 방송창을 보며 그래도 역시 조심은 해야겠지 하는 두려움이 동시에 들었다.
운좋게 번 돈 이십만원은 친구들을 위해 썼다. 아니 쓰려고했다. 항상 모이던 대학가가 아닌 청담동에 있는 이자카야에서 밥을 사겠노라 불러냈다. 폼 좀 잡아보고 싶었는데, 가격대가 내 생각보다도 두배는 비싸서 조금 놀라긴했다. 소주가 오천원인게 말이 되나 싶었지만 내가 샀다 팔았던 코인이 지금은 백만원을 넘어선 것 보다는 말이 되긴 했다. 머릿속에서는 가진 돈 이백을 전부 부었으면 손에 있었을 이천만원이 아련하게 지나갔다. 이래서 포람페 보는구나.
코인 얘기를 꺼내니 예상대로 기환이는 여윳돈이 없다면서 별다른 흥미를 보이지 않았고, 승수는 뭐랄까 사람이 좀 달라져있었다. 좋게 말하면 차분한 쪽으로 나쁘게 말하면 얼이 빠진 쪽으로. 이새끼 어디서 약에 손을 댔나. 턱에서 침이 줄줄 새는 것 같은 표정으로 ‘난 성실한 일꾼이 될거야’라는 말만 반복하길래 질려버려서 그러라고 했다. 하지만 기열이의 반응은 다소 의외였다.
요새 회사에서도 사람들끼리 코주부, 즉 코인, 주식, 부동산 얘기만 한다고 한숨을 쉬면서 자기도 코인을 몇개 사봤더라는 것이다. 그걸 너 혼자만 알고 있었느냐고 멱살이라도 쥐고 따지고 싶었다. 보통 이럴 때는 승수가 먼저 나서주곤 했었는데 오늘은 너무 얌전하길래 나도 타이밍을 약간 놓쳤다.
‘그래서 너는 얼마 벌었는데’ 물어보니 이백정도 벌고는 손을 털었다나. 오늘 술값 니가 내라 이새끼야.

그렇게 돌아오는 길에 나만 멈춰있다는 생각이 평소보다 훨씬 강하게 들었다. 기열이가 나보다 먼저 코인판에 들어가서 열 배의 수익을 올렸기 때문만이 아니다. 승수와 기환이 놈도 그저 일할 곳이 정해진 것 외에도 어딘가 달라졌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승수 놈 인생은 하락장인 듯 보이긴했지만, 포람페 말대로 하락장이 멈춘 장보다는 나았다. 어쨌든 직장도 구해놨고. 음봉에는 숏이라도 들지만 죽어버린 그래프는 답이 없다지.
물론 자기 인생의 하락장에서 숏 포지션을 어떻게 쥐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얌전히 죽어가느니 크게 한번 모험이라도 걸어보는게 성격에 맞았다. 그날 나는 가진 돈의 절반을 스트롱에 부었다.
그리고 하룻밤사이 스트롱 코인의 개발자가 사망했다.
정확히는 내가 산 코인과 철자 하나가 다른 유사한 이름 코인의 개발자가 병으로 죽은건데, 내가 지금도 그 이름을 헷갈리듯이 사람들도 그랬는가보다. 비슷한 이름을 가진 모든 코인들의 가치는 패닉어택을 맞았다. 나는 그렇게 오십만원을 잃었고, 몇가지 교훈들을 얻었다.
돈 놓고 돈 먹는 투기놀음 쯤으로 생각했던 이 바닥에도 최소한의 규칙과 이론들이 있었다. 강의를 몇개 찾아서 들어봤다. 정답은 없더라도 확실한 오답들은 있었는데, 내가 자칫 잘못했으면 샀을법한 어떤 코인들이 스캠이라는 것을 알고나니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가하면 작전세력들이 주무르기 좋은 사이즈의 시장이 있다는 것도 알게됐다.

작전주를 피하라는 요지의 강의내용이었지만, 어쩐지 나에게는 새로운 기회처럼 들렸다. 세력의 어깨 위에 올라타있다가 손해나기 전에 넉넉히 뛰어내리면 눈감고 빨간불 파란불 베팅하는 것보다 안전하게 벌 수 있는거 아니야? 그런 생각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다보니 어렵지 않게 작전방 몇군데서 초대를 받을 수 있었다.
물론 대놓고 작전방이라고 광고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견적이 딱 그랬다. 나는 모험을 걸겠노라고 기열이에게 선언했다. 일종의 선전포고와도 같았다. 내가 금방 총자산으로 너의 근로소득을 뛰어넘어줄게, 같은. 케케묵은 열등감 같은게 있어서 이겨먹으려는 생각은 아니었고, 다만 그런 목표라도 있어줘야 재미가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래야 멈출 수도 있을 것 같았고. 도박을 할 때는 하루에 따고 일어날 금액을 정해두지 않으면 결국 잃을 때까지 게임을 하게되는 법이라고 했다. 기열이가 좋아하는 포커플레이어가 한 말이라고 했던가. BJ포람페가 스포츠카 세대를 살 돈 모아서 질러버리고 은퇴하겠다는 목표도 그런 맥락이겠지. 유지비나 세금은 조상님이 내주시나보다.
기열이가 조언이랍시고 하는 말들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나는 맞는 말은 수용할줄도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보다 합리적인 계산식을 세울 줄도 아는 사람이다. 기열이가 돈을 얼마나 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정확히는 모아둔 돈이 아니라 일년치 연봉을 뛰어넘어볼 생각이었다. 대충 사천만원정도?
그러려면 종잣돈이 필요했다. 건강한 은행에서는 나같이 입지가 불안정한 놈한테 돈을 잘 빌려주지 않는다. 기열이 돈을 빌려서 기열이를 넘어서는 맹랑하고 괘씸한 상상을 잠깐 해보고 실행에도 옮겼는데 칼같이 거절당했다. 사업을 작게 해보려고 한다고 운을 띄웠더니 ‘너 코인하려고 그러지’라며 간파당한 것이다. 재수없는 놈. 사업 아이템이라도 대충 꾸며내서 시도해볼걸.
와중에 내 통장에는 삼백만원 정도가 모여있었다. 알바비와 코인으로 다시 번 돈이 쌓였고, 생긴 목표에 맞게 지출을 줄이다보니 또 제법 금방 돈이 모이기 시작했다. 한 칠백 정도만 더 있으면 좋겠는데.
나는 큰 기대없이 우리의 단톡방에 돈 좀 빌려달라고 올려봤고, 기열이에게는 내 다음 모험이 될 종목과 시기를 알려줬다. 모험이 성공했을때 자랑하려는 목적이 반, 내심 기열이도 혹해서 같이 돈 좀 벌었으면 하는 마음이 반이었다. 조언처럼 얘기하면 안 들을게 뻔하니까. 나한테 안 빌려줄 돈이라도 불어날 기회가 있는걸 아는데 친구 손에 묶여있는걸 지켜보고만 있자니 어쩐지 아쉬웠었다.
그러자 기열이에게서 연락이 왔다.
“야, 내가 빌려줄테니까 애들 돈 빌리지 마라.”
“좆열, 니가 어쩐 일이냐? 야 그러지말고 너도 들어와. 돈 더 있잖아. 장작이 많아야 성공확률도 높아져.”
“쿠퍼액 역류하는 소리하지말고. 천칠백 빌려달라고? 그렇게 큰 돈은 그냥 주고받으면 감사들어오는거 알지?”
“모르는데. 코인으로 바꿔서 주면 되잖아 그냥. 너 코인이 뭔지는 아는거지?”
“어 됐고, 종목이랑 타이밍만 알려주면 내가 내 돈으로 넣을게. 따면 원금만 빼고 다 니가 가져가. 잃으면 원금은 니가 다 갚아야 되는거야.”
“콜.”
“좀 이따 문자로 차용증 보낼테니까 답장하고. 너 다른데서 돈 더 빌리지 마라.”
“롸져.”
그렇게 전화를 끊고나니 어쩐지 기열이가 나한테 힌트를 주는 것처럼 들렸다. 이천으로 오천을 벌 수 있다면, 사천으로는 일억을 벌 수 있잖아? 나같은 사람한테도 일이천 정도는 빌려주는 곳이 있잖아? 대충 24시간 정도 이내로 승부처가 찾아온다는 분석이 있었다. 나는 여기저기 검색을 해보기 시작했다…

총 오백여명의 피해자가 천억원대의 손실을 본 사건은 제법 크게 뉴스에 났다. 세명으로 구성된 ‘토끼덫’이라는 이름의 사기조직단이 개미들의 투자금액을 고스란히 가로채서 어딘가로 잠적해버린 것이다.
사채 빚까지 끌어다가 십억을 그대로 꼬라박은 어느 가장은 마지막 도피의 선택마저 마포대교 위에서 제지당했다. 누군가의 제보로 미리 잠복해있던 경찰들이 몇군데의 한강다리에서 잠복하다 사고를 예방했다. 그게 그들에게 구원은 아니었겠지만. 나는 어째서인지 그 제보자가 기열이가 아닐까 생각이 된다. 이례적인 자살사고 예방에 대한 사례를 하고자했지만 제보자는 익명 뒤에 남기를 원했다.
나도 그 오백명 중의 한명이었다. 나는 삼십만원을 잃었다.
막상 사채를 쓰려고 전화까지 걸었는데 받는 여자 목소리가 너무 친절해서 오히려 위화감이 느껴지고 무서워졌다. 선이자가 얼마고 이율이 얼마고 설명해주는 목소리가 나긋나긋해서 잠이 왔는데 그렇게 잠이 들었다 눈을 뜨면 장기가 몇 개 없어져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돈은 더 안 빌리기로 했다.
어차피 돈을 더 안 빌릴거면, 기열이가 대신 해주기로 한 천칠백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었다. 일이 잘 안 되면 남겨둔 내 돈으로 먼저 조금 갚고 나머지는 차차 갚아나가야 하지 않을까. 좀 천천히 갚아도 기열이라면 이해해주지 않을까하는 겁쟁이같은 생각이 들었는데 그렇다고 한푼도 안 넣기는 자존심이 상해서 삼백중에 삼십만원만 부었다.
그리고 개같이 망했다. 정신이 아득해져서 손발이 덜덜 떨리고 걸려오는 기열이 전화를 애써 무시하고 있으니 기열이가 카톡을 보냈다는 알림창이 떴다. 읽음 표시가 나지않게 미리보기를 슬쩍 눌러봤다.
‘돈 안 넣었으니까 쫄지말고 전화 좀 받아.’

이새끼 애초부터 이럴 생각이었어 못 믿을 놈의 새끼.
후... 아찔하다.
난 이제부터 기열이 형님의 종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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