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단편 연재/래빗 헌팅 (일상)

래빗 헌팅 - (7)

by 구운체리 2023. 4. 13.

7) 기열
사람은 왜 살까?

나는 일찍부터 철이 들엇다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또래 아이들이 천방지축 왁자지껄 이런 수식어를 달고 자랄 때부터 나는 입신양명 같은 네글자를 가슴에 아로새기며 살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했던 단어는 ‘전교일등’이었다.
세상은 언제나 일등만 기억하고, 기억되지 않는 삶은 의미가 없다고 배웠다. 부모님은 내 우주였고 그들의 말씀은 반박의 여지가 없는 교리였기 때문에 나는 내 생각을 언제 어디서나 드러내도 되는 줄로만 알았는데, 이차성징이 지나고 머리통이 굵어진 친구들은 나를 때론 힘으로 어떨 때는 논리로 무너뜨리고는 했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PC방 근처에도 못가본 나는 그곳에 어둠의 마나 같은게 흐르는 줄로만 알았고, 컴퓨터 게임은 마약과 살인에 버금가는 사회악인줄로 알았다. 그래서 친구들이 ‘그럼 홍진호는 뭐냐’고 물어볼 때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학년이 점차 올라가면서 나의 세계관은 조금씩 침범당했고 부모님은 거기까지였다. 그분들은 앵무새처럼 ‘조금더 노력해서 전교일등’이라는 슬로건을 반복할 뿐, 방법도 목적도 제시해주지 못하셨다. 특히 수학, 과학같은 과목들에서는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벽을 느끼게 하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때 느낀 절망감은 누구에게도 공감받을 수 없었다.
나는 전교일등을 한번도 놓치지 않고 지켜냈다. 수학 과학을 괴물처럼 잘하던 친구들은 과학고에 진학해야 한다며 고등학교 입시에 반영되지 않는 과목들을 비교적 소홀히 대했고, 나는 수학 과학에서 소폭 뒤진 점수들을 체육이나 일본어같은 과목들에서 거뜬히 넘겼기 때문이다. 그렇게 졸업식에서 대표연설을 했지만 전혀 뿌듯하지는 않았다.

중3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 중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한 친구들이 몇 있었는데, 정신차리고보니 그중 세명이랑 붙어다니고 있었다. 한창 마음이 좋지 않던 고등학교 시절 내내 나의 괴벽에 질리지 않고 견뎌내준 고마운 친구들이다. 내가 습관처럼 뱉어내는 우울이 그들에게 전혀 공명하는 지점이 없기 때문에 어울릴 수 있었던 것 같기도하다. 하나같이 공부랑은 담을 쌓은 애들이라.
어머니는 세 친구 모두 하나같이 못마땅해하셨지만, 아버지는 생긴게 정감이 간다며 다들 좋아하셨다. 특히 승수네 아버지와는 둘도 없는 술친구가 되셨는데, 고주망태가 되어 돌아다니다 곤경에 처한 것을 기환이 아버지가 몇번 구해주시곤 했기 때문에 아버지가 내 친구들을 좋아하셨던 것 같기도하다. 당신들의 식견이 통하던 세상과는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인지한 것인지, 부모님은 더이상 내게 진로에 관련하여 잔소리를 하는 일이 없어졌다.
고장난 나침반이 사라진 것은 분명 긍정적인 일이지만, 아무 도구도 없이 망망대해 내던져진 기분은 썩 좋지 못했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하나, 삼년 내내 내가 이 질문을 던지면 친구들은 성대구조가 고장나 한 단어 밖에 뱉지 못하는 포켓몬들처럼 각자의 두 음절들을 뱉어댔다.
섹스! 음악! 근육!
저새끼들은 왜 살지, 아니 왜 저러고 살지라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하지만 내 세계가 자명한 경위를 따라 침잠하여 흐릿해져갈 때 옆에서 그 지랄들을 해준 덕분에 내가 그들의 얕지만 뚜렷한 세계에 기대어 기어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머니가 언젠가 내 커리어의 오점이자 짐짝이 될거라던 그 친구들은 내가 사회에 진출한 뒤에 오히려 더 도움이 되었다.

나는 섹스에도 음악에도 근육에도 진심이지 못했다. 할 줄 아는거라곤 공부 하나인데, 공부? 그게 대체 뭐지. 나는 남들보다 연표를 잘 외워서 조선시대 어느 왕이 몇년도에 무슨 정책을 펼쳤는지 누구보다 빠르게 대답할 수 있지만, 그가 단 하루도 깊은 잠에 들지 못했다는 실록의 문장에서 멋진 이야기를 뽑아내는 능력은 없었다. 모두가 최고 성능의 컴퓨터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요즘 시대에 더 필요한 건 후자의 능력이다.
그러니까, 나는 도통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대답하지 못했다.
열여덟에 섹스를 입에 달고살던 승수는 스물 둘에도 같은 걸 입에 달고 살았지만 여전히 동정이었다. 기환이는 원하는 만큼의 근육을 얻었지만 기환이를 위한 최소한의 삶은 기환이 혼자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의 것보다 많은 것을 대가로 요구했다. 우선이는 음악을 접고 새로운 꿈을 좇는다는 핑계로 자기 삶을 수렁에 쳐박고 있었다. 그들에겐 내가 필요했다. 그들의 필요가 되는 것이 내 삶의 목적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친구들을 이용했다. 그 녀석들은 가방끈이 긴 내 말이라면 아무리 진부하고 영양가없어도 일단 숭배하듯이 받아들이고 봤다.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하면 그놈들은 이제 콩으로 메주를 쑤는 모든 사람들을 상대로 싸움을 벌이고 다닐 것이다.
나는 순전한 선의를 가장해 아주 계산적인 선에서의 호의들을 베풀었다. 돈이라면 아끼지않고 썼지만 시간은 되도록 아껴서 썼다. 대가로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고 했지만 내가 어떤 것들을 베풀었는지를 일기에 적어두고 매일 밤마다 곱씹으며 오르가즘에 가까운 희열을 느꼈다. 그러고나면 가벼운 현기증이 찾아왔다. 진짜로 성적 흥분을 한 건 아니지만, 마치 친구들을 상상하며 자위를 한 것만 같은 죄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 죄책감마저도 점점 무뎌졌다.
다니는 회사에서 무료로 제공해주는 정신상담에서 이런 얘기들을 해봤지만 선생님은 나에게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했다. 나의 위선을 비웃고 때려부숴주기를 바랬는데, 어째서 순수함밖에 남지않은 선의를 위악으로 포장하고 싶어하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러고나자 보다 분명해졌다. 나는 본능적으로 선생님 앞에서도 겸손을 떨었다. 내가 얼마나 교만한 놈인지를 밝히지 않았다. 일부러 나보다 못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상대적 우월감에 취해있어야만 하루하루를 버텨낼 수 있다고 고백하지 못했다.
나 같은 건 정말 왜 사는걸까.

친구들과 갖는 술자리를 나는 진심으로 좋아한다. 그들의 삶에는 언제나 불확정성과 모험이 있다. 모험의 위험은 낮은 성공확률, 보상은 큰 이득. 물론 기댓값을 계산해봤을 때 명백한 손해라고 생각은 하지만, 세상은 수학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확률적으로 밑지는 걸 알면서도 매주 로또를 사는 많은 사람들은 그 혹시모를 당첨을 기다리는 순간의 두근거림을, 그 희망으로 가득찬 한 주에 대한 지불을 하는 것이다. 파란 약 대신 빨간 약을 먹어버린 나같은 사람은 영영 소비할 수 없는 종류의 기쁨들.
나는 평생 조금의 위험도 감수할 수 없는 성격임을 알기 때문에 친구들의 삶을 지켜보며 대리만족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내심, 그 어떤 모험이 성공해서 나보다 잘나가는 친구가 생기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한다. 너희들을 우러러보며 ‘나도 해볼걸’이라는 회한에 잠기는 순간 나는 마지막 남은 삶의 동력마저 잃어버릴 것만 같다.
언젠가부터 친구들이 평소보다 더욱 나에게 친절해지기 시작했다. 점점 식어가는 내 삶의 온도를 눈치챈 것일까. 내 얄팍한 시혜적인 마음을 위해 유지하는 어울림이 이제 나에게 너무도 절실한 동아줄이 되어버렸다. 오래가자 친구들아. 그렇게 오래도록 날 우러러봐줘. 내가 너희들을 내려다보며 힘을 얻을 수 있게.

나같은 건 정말 왜 사는걸까. 나도 이런 내가 참 싫다.

'단편 연재 > 래빗 헌팅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래빗 헌팅 - (8), 끝  (0) 2023.04.15
래빗 헌팅 - (6)  (0) 2023.04.11
래빗 헌팅 - (5)  (1) 2023.04.08
래빗 헌팅 - (4)  (0) 2023.04.06
래빗 헌팅 - (3)  (0) 2023.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