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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연재/바다에 빠진 목탁 (일상, 관계)

바다에 빠진 목탁 - (3)

by 구운체리 2021. 11. 12.

3.
 내가 첫 연애를 하기 전, 예의 그 토론 동아리에서 친해진 남자 선배가 있었다. 빠른 년생에 현역으로 들어와 나보다 나이로는 어렸지만, 개중에 나이치고 그나마 성숙한 편이기는 했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지금까지 만나 본 사람들을 전부 통틀어서 가장 또라이 같은 사람이었다.
 특유의 말과 행동 습관이 몇 가지가 있어 주변 사람들이 성대모사 하듯이 그걸 유행어처럼 따라하는데, 정작 본인은 그게 자신인 줄을 몰랐다. 완전히 생뚱맞은 지점에서 극도로 분노하는 성격은 나랑 통하는 구석이 있었다. 목탁 들고 다니는 내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지만 얘는 무슨 지게를 지고 다닌다. 항상 로봇처럼 똑같은 표정으로 술이 만취해도 얼굴 표정이나 색은 하나도 안 변하는데 몸이랑 정신은 취해서 남들이 시키는 대로 별 이상한 춤을 춰대기도 했다.
 스스로 만든 이미지에 갇힌 게 아니라, 진짜였다. 본인이 그걸 진심으로 모르고 있다는 점이 더더욱 그 캐릭터를 부각시켰다.

 이름부터도 특이하게 ‘바다’였다. 바다 같은 마음을 가지라고 지음 받은 이름이라는데, 이름 값을 하는 것일까. 가끔 단둘이 이야기하다보면 아득한 바다에 대고 떠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좋은 쪽으로도 나쁜 쪽으로도. 마음이 편하게 놓이다가도 내가 지금 누구랑 떠들고 있나 난데없는 외로움이 전염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교회 다닌다는 년이 심장으로 목탁을 하도 두드려대는 게 시끄러워 부처가 현신까지는 아니고 대리인을 보냈다면 이 사람이겠구나 싶었다. 그래 역시 불교는 나랑 안 맞아.
 동아리 면접을 보러 가서 처음 봤는데 웬 놈이 앳된 얼굴로 세상 다 산 표정을 하고 앉아있더라. 명찰을 보고 이름이 눈에 띄었는데 긴장 푼다고 딴생각을 한다는 게 이름 때문에 자꾸 ‘바다 바닥에서 받아쓰기 열 번’ 이런 잡생각을 하다 이 놈이 갑자기 말을 걸어서 ‘바다닥?’하고 대답할 뻔했다. 목탁을 끊던가 해야지.
 원래 긴장은 잘 안 하는데, 그 날 엄마가 전화로 한바탕 쏟아낸 감정을 받아내고 오던 차라 고요한 정신을 유지하려다보니 힘이 좀 달렸던 것이다. 무심히 던진 게 분명할, 별 것 아닌 마지막 말이 머릿속에서 밀려나지가 않고 있는 탓에.
 ‘너는 시간이 남아 도는구나. 남들보다 일 년 늦게 들어갔으면 조급할 법도 한데, 누가 내주는 돈으로 공부하니까 여유가 넘치네. 그 동아리 선배들 취직은 잘 한다니?’
 전화 끊는다고 동아리 면접 얘기 꺼낸 내가 등신이야 그래. 겨우 맘 잡고 면접 보려는데 이새끼가 질문이랍시고 갑자기 엄마 얘기를 꺼내네? 목탁, 목탁이 필요하다. 유쾌한 생각을 하려고 애쓰는 마음이 무색하게 몸은 한계치를 넘어 북받쳐버렸다. 무슨 얘기를 더 했는지 기억이 안 나고, 바다새끼는 얼 타서 쳐다보는데 양 옆에 언니들이 나를 달랜다고 분주했던 기억이 난다.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누르려고 애쓰다보면 몸과 생각은 고요한데 모든 울분이 눈물로 새는 듯 줄줄 흘러넘칠 때가 있다. 전화로 보는 면접이었으면 저 사람들은 내가 울고 있는 줄도 몰랐을거야. 부끄러움에 마음을 추스르려고 할수록 쥐어짠 듯 더 많은 눈물이 새어나왔고, 와중에 나는 손수건을 건네는 손길을 정중히 거절하며 목소리만큼은 멀쩡한 상태로 면접을 마무리짓고 나왔다.
  당연하게 면접은 조졌다고 생각하고 포기한 채 목탁이나 두들기려는데, 자취방 건물의 현관문이 기어이 고장이 났네. 안전장치라고 설치된 전자식 개폐장치가 나를 도리어 밖에 가두어두는 장치가 되어있었다. 거기에 관리실은 비어있고 전화도 받지를 않아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하마터면 힘으로 문을 부술 뻔했다. 동아리 면접이야 아무래도 좋았지만, 내 집에 내가 못 들어가? 월세랑 관리비를 얼마를 내는데 내가?
 무단침입이 감지되어 경찰과 안전업체가 와서 내 신상조사를 마치고 문을 열어주었다. 나는 얌전히 조사를 받고도 한 시간이나 지난 뒤 방에 들어가서야 빌어먹을 목탁을 두들길 수 있었다. 바다닥 이 개새끼하며 엄한데다 화풀이를 했다. 내가 괜한 심술을 품었던 탓인지 바다 선배랑 말을 놓고 친해지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다.
 사적으로 말을 한 번을 안 걸어주네 하고 새초롬해 있던 스스로에게 놀라 어느 날 충동적으로 술 먹자고 해버렸다. 내가 친해지고 싶으면 내가 연락하면 되지, 무슨 말도 안 되는 도끼병에 취해있었담. 내가 우리 엄마의 악담과는 달리, 남자들한테 제법 매력이 통하는 편이었구나 알게 되면서 나도 모르게 특권에 젖어 있었는가보다. 그게 삶에 미치는 불편함이 훨씬 크다고 느끼고 있었기에, 보상심리로 특권 행사 또한 당연한 내 권리라고 치부해 왔던 것이다. 바다는 그런 면에서 내게 무해했고, 그래서 내가 먼저 다가갔어야 하는 친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