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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연재/바다에 빠진 목탁 (일상, 관계)

바다에 빠진 목탁 - (5)

by 구운체리 2021. 11. 14.

5.
 소문은 상상력을 먹고 자란다. 상상은 귀에서 다시 입으로 재생산되는 과정에서 이야기의 빈 부분에 살을 덧대는 역할을 한다. 상상이 쉬어가는 그 공백을 채워주고 또 입 밖으로 뱉는 과정에 도덕적인 불편함을 심어주면 길 잃은 소문은 곧 그 올바른 자리를 찾아가게 된다. 나는 보란 듯이 바다와 가까운 거리를 유지했다. 사람 많은 곳에서 단둘이 밥을 먹었고 캠퍼스에서는 바짝 붙어서 길을 걸었으며 종종 술도 같이 먹었다.
 우리를 연인으로 인식하는 모르는 사람들은 금세 흥미를 잃었다. 바다의 매력을 평가하는 사람이나 우리의 연애를 관음하는 사람들에게는 잘 별러진 대자보를 통해 혼꾸녕을 내줬다. 나와 가까운 사람들은 내 편이 되어주었지만, 간혹 충고를 덧붙이기도 했다. 마음이 없는 남자와 단둘이 술을 먹거나 특히 술에 취해 그 자취방에서 자는 것은 여러모로 위험하다고.

 술에 취해 잠든 나를 처음 써보는 지게에 싣고 날랐어야 할 바다의 그날을 돌이켜 상상해보면 야릇하기보다 역시 갸륵한 마음이 드는 게 맞지. 무슨 일이 있었을 줄 어떻게 아냐는 언니들에게, 바다는 적어도 범죄를 종의 본능으로 포장하려는 환상을 갖고 있는 머저리는 아니라는 대답은 의미가 없었다.
 번듯하게 직장 다니며 결혼까지 한 사촌 오빠에게 명절날 노래방에서 추행을 당했다는 언니와 주변 모두의 우상인 동아리 선배에게 이른바 ‘먹버’를 당했다는 언니는 어느 남자도 믿지 않았다. 나는 바다의 비범죄성을 판단하는 것이 믿음이 아니라 이해에 기반한 것이라 변호하려 했지만 합리적 이성도 결국은 믿음 위에 세워진 것이라는 믿음의 논리에 굴복했다.
 내 한 몸 스스로 건사하지 못한 건 어쨌든 떳떳한 일은 아니었으니 당당하지 못하기도 했고. 믿음을 배반하고 이성을 유린하는 사건들은 분명 비일비재하니까.

 언니들은 내 걱정에 이어 바다를 걱정했다. 너 같이 매력적인 친구가 자꾸 그렇게 치대면 없던 연애감정도 생길 것인데, 그때에 가서 거리를 둔다면 너는 썅년이 된다. 너도 너지만 바다에게도 못할 짓이 아니겠나. 그 관계를 소중히 여긴다면 여지주지 말고 선을 확실히 그어두라고.
 여러모로 잘 모르겠다. 바다가 나를 연애상대로 여길는지, 혹은 내가 정말 바다를 연애상대로는 여기지 못할는지, 둘 다에 대해. 그저 괜찮은 사람으로 서로의 삶을 공유하는 관계로 만족했던 자연스러운 일상에,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연애적 케미스트리로 인해 벽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 영 마뜩찮았다.
 그래서 우선, 연애를 시작하기로 했다. 언니들에게 부탁해 소개팅을 몇 개 잡았고 나의 연애가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나와 바다의 관계를 정의하고 정리해 줄 것이라 생각했다. 연애 그 자체에 대한 환상도 분명 있었고. 그렇게 나의 첫 남자친구 J를 만났고, 생각보다 별로인 연애가 또 기대보다 괜찮게 흘러가 제법 그럴듯한 첫 연애가 완성되었다.
 J가 소문의 연적인 바다를 질투해서 나와 바다의 사이에는 약간의 턱이 생겼지만 벽이 될만큼 높지는 아니했다. 일상적이고 지루한 인간관계에 무료함을 느낄 때마다 나는 바다를 찾았고 그는 늘 거기에 있었다.
 그 정도 거리에서 바다는 나에게 의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