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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연재/바다에 빠진 목탁 (일상, 관계)

바다에 빠진 목탁 - (7)

by 구운체리 2021. 11. 16.

7.
 두 번째 연애의 시작과 끝은 예의 그 술집이었다.
 첫 연애가 끝난 날 바다를 불러 술을 먹는데, 자꾸 우리 쪽을 쳐다보던 남자 둘이 수군거린다 싶더니 바다가 잠시 화장실 간 사이 내 번호를 따갔고, 연락을 주고받다 연인이 되었다. 저돌적이고 화끈한 성격의 남자라 사귈 때도 헤어질 때도 쿨했다. 본인의 욕망과 표현에 충실한 사람이라 함께 있으면서 나도 많은 것을 배우고 긍정적인 영향을 받은 것 같다.
 나의 욕망을 살피고 존중해준다는 느낌은 받지 못해 일 년 정도 연애 기간을 채우고 권태가 오자마자 외로워져서 헤어졌지만, 지금 돌이켜봐도 즐거운 기억이 많은 제법 재미있는 연애였다. 사람 자체가 유머 감각도 뛰어나기도 했고, 워낙 관심사가 많아 나에게 그 짧은 시간에 다양한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던 것이다.
 본인에 대한 자존감이 워낙 높다보니 나를 구속하거나 질투심으로 묶어두려는 일도 없었다. 가장 좋았던 것은 바다를 비롯한 나의 다양한 좋은 친구들과 나만의 새로운 세상을 쌓아가는 일에 있어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었다는 것. 그래서 함께할 때도 함께하지 않을 때도 나의 세상은 항상 팽창하고 채워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음은 내가 먼저 떴지만, 차이기는 내가 차였다. 사실상 마지막 한 달 간 우리의 길이 갈라지는 때가 왔다는 것을 서로 알고 있었지만, 이별을 선언하는 불편함을 맡기에 아직은 만남의 시간이 썩 나쁘지 않아 한 달의 시간과 네 번의 만남을 유예한 결과였다.
 우리가 처음 만나 번호를 교환한 그 빌어먹을 술집에, 지긋지긋한 추억을 하나 추가해버렸다.

 내 남은 이십대의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애지중지하던 목탁은 나를 편안하게 내려놓을 수 있는 술자리가 드물어짐에 따라 몇 번의 이삿짐을 거쳐 풀지도 못한 어느 깊숙한 상자 속에 숨어버렸다. 사람들의 시선이 탐하는 내 본연의 모습을 진하고 진부한 화장 뒤에 숨기는 것에 익숙해짐에 따라 나는 내 몸과 이름을 기대어 계좌를 채워줄 곳을 찾아 몇 천 글자 분량의 자기소개서가 되어 세상을 떠돌았다. 
 지루함에 비로소 어른이 된 것 같아 스스로가 대견했다.

 세상은 어디에서나 여전히 무례하고 지독했다.
 IT 계열의 나름 젊은 분위기의 회사를 들어가게 되었는데, 최종 면접에서 나를 심사한 상사의 학교 후배가 나를 안다고 했단다. 재수학원에서 소문으로 만난 적이 있다고. 나에게는 하도 오래된 기억이라 헛웃음이 났고 반갑기마저 했다.
 일종의 평판 검증을 한 모양이다. 징그럽게 무슨 재수학원 동기를 찾아내지, IT회사라 그런가. 무슨 소문을 들으셨냐 물어보니, 의외로 말을 돌리지 않고 직설적으로 이야기했다.
 몸 헤프게 굴린 걸로 유명했다더라고.
 후배를 혼을 냈다고 했다. 사실이든 아니든 그렇게 입에 담을 만한 이야기가 아니며, 연애만 해도 여자는 창녀로 몰아가는 그 나이 대 그 환경의 분위기가 눈에 선하지 않느냐고. 그런 저속한 분위기가 특히 남초 분위기가 강한 집단에 여성이 진출하는 것을 방해하는 요인이 되며, 본인은 그런 문제의식을 통렬히 느끼고 있다고. 팀을 운영하는데 참고할 수 있도록 관련하여 애로사항이 있다면 언제든지 알려달라는 뭐 그런.
 그렇게라도 해주시니 다행인 것 같다가도, 이게 콕 집어 말로 설명되지 않는 문제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썩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대학에 다닐 때는 내가 거의 쉼 없이 연애 중이기도 했거니와, 그 상태가 여기저기 공유되고 있었기에 무작위한 대쉬나 플러팅을 받은 적은 거의 없었다. 캣콜링을 당한 적은 몇 번 있지만, 도가 지나치면 언제든 고소할 준비가 되어있는 나에게는 오히려 그 약한 수위가 아쉬울 따름이었다.
 회사라는 조직에 속하게 되자 사람들은 플러팅을 그럴 듯한 낭만으로 포장하려는 겉치레조차 하지 않았다. 매주 새로운 사람들에게 밥 한 번 먹자는 연락이 왔다. 업무적인 친분이 필요할 수도, 배울 점이 있을 수도 있는 사람들이니 거절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목적은 뚜렷했다. 나는 그들의 잠재적 연애상대였다. 명확히 선을 그으면 도리어 더 먼 사이가 되어 불편함이 생겼고 여지를 남기면 어장관리하는 모양이 되어 평판이 떨어졌다.
 상사는 아마도 나에 대한 평판 조사에서 들은 소문을 어디에 공유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지만, 그 소문이 아직 살아남아 있다는 자체만으로 나에게는 스트레스였다.
 괜찮은 동료가 되어 내 몫을 다해내는 사람이면 충분할 줄 알았지만, 이 사회에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여자였다. 나를 좀 여자가 아닌 무성의 동료로 대해줬으면 싶었지만, 나부터도 어떻게 하는건지 모르는 걸 고쳐내라고 상사에게 떼를 쓸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내가 그들에게 여자임을 받아들이고 최소한 괜찮은 여자라도 되는 것. 그러려면 어디 밖에서 애인을 물어오거나 회사를 때려치거나 둘 중에 하나였다. 비슷한 처지의 여자 선배의 조언이기도 했다.
 어디 나가서 얼굴을 아스팔트에 갈고 오던지, 연애를 시작하던지 하라고. 자기는 풍기는 분위기가 있어서 살 좀 찌우거나 옷이나 화장 대충 걸치는 정도로는 안 될 거야. 기본 매너는 좋은 사람들이니 임자 있는 사람한테는 마음 두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난 둘 다 하게 되었다. 연애와 퇴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