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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연재/바다에 빠진 목탁 (일상, 관계)

바다에 빠진 목탁 - (6)

by 구운체리 2021. 11. 15.

6.
 엄밀히 말하자면 J가 첫 번째 연인은 아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본다면 스무 살 재수하던 시절 교제하던 친구를 연인으로 세어야겠지. 그때를 생각하면 아련하고 또 가슴이 아리다. 첫사랑이라고 하기에 억울할 것은 없었다. 다만 나는 그 사람을 사랑했다기 보다 그때의 상황을 사랑했던 것 같고, 그 시절의 우울함에 대한 동경이 남아있는 것 같다.
 그 친구의 얼굴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때의 나는 어렸고 외로웠고 우울했다. 집에 돌아가서 잠들기 전에는 항상 엄마가 한 마디씩 나의 우울을 더욱이 안으로 쑤셔넣기 위해 찾아왔다. 본인의 우울을 나에게 꺼내보이며 나의 우울을 용납하지 않았고 괘씸하게 여겼다. 하루는 울고 있는 나에게 그냥 나가서 몸이나 팔라고 쏘아붙였고, 나는 이미 창녀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일사부재리로, 내가 몸을 버리면 이유 없는 이 불쾌함에 정당성이 생긴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다. 다음 날 학원에서 정말 아무라도 붙잡고 한 번 해버려야겠다고 결심하고 같이 수업 듣던 동갑내기 친구에게 말을 걸었다.
 서로 우울한 두 마리의 짐승이 공명하는데에는 많은 조건이 필요하지 않았다. 마음은 미성년이지만 몸은 법적으로 성인이었던 우리는 하루 수업을 빼고 멀지 않은 모텔을 갔다. 근처에 모텔이 있는 재수학원이라니 이 무슨. 모텔에 보통 콘돔이 있다는 것도 몰라서 서로 부끄러워하며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 사람이 망을 보는 동안 진 사람이 지하철 자판기에서 콘돔을 샀다. 혹시나 누가 짐 검사라도 할까 겁이 났는지 휴지를 산 척 하기 위해 휴지와 콘돔을 같이 샀다.
 같이 자자는 말은 쉽게도 했으면서 무슨 부끄러움이 그렇게 많았는지, 대낮에 내 벗은 몸을 보이는 게 부끄러워 최소한으로 필요한 부분만 드러낸 채 첫 경험을 했다. 추리닝에 가까운 청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가능하다면 다리 사이에 칼로 조그만 구멍만 뚫고 일을 치르고 싶은 기분이었다.
 서툴고 서둘렀으며 서로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지만, 새로운 무언가를 함께 헤쳐나간다는 생각만으로 외로움이 가시는 것 같았고, 그 감정에 부쳐 그 아이가 좋아졌다.

 우리는 곧 관계에 익숙해졌고, 나는 충동적인 우울이 가라앉자 정서적인 안정을 공유하게 되기를 원했는데 그 친구는 중독이라도 된 것처럼 더 자주 내 몸을 원했다. 학원에 소문도 난 것 같았다. 이때는 내가 어렸기도 하지만 근거 없는 소문도 아니었으니 현명한 대처를 하지 못했다.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쟤랑 잤으면, 뭐 어쩌게?
 두 가지 이유에서 우리는 멀어졌는데 첫째로 나는 어쨌든 내 집을 물리적으로 탈출하기 위해 목표하는 대학에 꼭 붙어야 했는데 자꾸 수업을 빠지는 게 영 내키지 않아 관계를 거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둘째로는 그 소문에 살이 붙으니, 살(虄)이 되어 나를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그 친구와 소원해진 틈을 타 자기와도 한 번 하자고 들러붙는 놈이 있는가하면, 화장실이나 학원 벽지에 내 이름이 들어간 저속한 낙서들이 쓰여있곤 했다. 나중에는 남자 선생들의 뜻 없는 친절에도 몸서리가 올랐다.
 결정적으로, 정작 나랑 말도 섞어본 적 없는 어떤 아이 어머니가 학원에 찾아와 다짜고짜 내 따귀를 후려치더니 학원에 민원을 넣어 나를 쫓겨나게끔 했다. 창녀가 면학분위기 흐린다고. 학원에서는 소동에 대해서는 그 어머니를 말리고 나를 위로했지만, 결국에 너도 잘한 것 없다며 전액 환불해줄테니 학원을 옮기거나 혹은 본인들이 운영하는 새끼 학원의 프리미엄 그룹 과외로 마무리 준비를 하는 건 어떻겠느냐 제안했다.
 어느 쪽이든 나는 학원을 더 다닐 수 없었고, 그 친구는 나를 모른 척 했다. 내 엄마는 그 얘기를 듣더니 일단 내 뺨을 후리며 악담을 하고 봤지만, 학원에서 나를 모욕한 그 여자를 상대로는 cctv에 녹화된 영상을 근거로 고소를 했다. 미친 년 잡는 미친 년이 뭔지 제대로 보여주며 합의금을 잔뜩 타냈고, 죄 없는 나를 상대로 부당한 대우를 한 학원에는 각종 협박을 섞어 프리미엄 과외를 무료에 가깝게 받을 수 있도록 협상을 이끌었다.
 덕분에 나는 더욱 외로워졌고, 강해졌으며, 대학에도 붙었다. 나를 내려놓는 것에 무던해졌고 싸움을 불사하는 강경한 기세가 배었다. 가정과 연애 아닌 연애에서 받은 상처로부터 관계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잃은 것이 오히려 초연함이 되었고 나를 능숙한 어른으로 보이게 했다. 대학에 간 이후에는 통학시간을 핑계로 자취를 시작하며 집으로부터 해방이 되니 상대적인 조증마저 생겨 제법 유쾌한 삶을 살게 된 것 같다.
 엄마의 신경질적인 히스테리를 받아내는 나를 방관해오던 아버지가 미안함의 의미로 경제적인 지원을 해주며 나의 독립을 지지해주어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