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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연재/당신의 이웃 vol 1. 변호 (범죄)

당신의 이웃 (1)

by 구운체리 2021. 10. 26.


 김한, 그는 당신의 이웃이다. 평범한 성씨에 조금 독특한 외자 이름을 쓰지만, ‘한이’ 하고 발음할 때 맴도는 울림이 깊지 않아 그다지 기억할만한 이름은 되지 못한다.
 학창시절 ‘기만자’라는 별명으로 가끔 불리기는 했지만 그마저도 썩 자주 쓰인 것은 아니다. 우선은 그에게 단어 뜻대로 남을 기만할만할 특별한 재능이나 성취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애초에 친구도 별로 없었다. 무엇보다 재미가 없었다. 김한 씨는 심심한 사람이었다.
 아무런 맛도 냄새도 나지 않아, 인간들의 칵테일에 무던하게 섞여있다 자연스럽게 빠져나오는 그런 머릿수 1이었다. 외모도 성격도 성실함도 딱 중간, 가장 보통의 사람을 찾는 대회를 연다면 7명 중에 4번째 보통이라 메달권에 호명되지 못할 완벽한 애매함이 되려 그의 특별함이다.
 다른 어떤 이야기를 기대하는가? 억지로 찾아내려 할 수는 있겠지만, 학창시절의 그에 대한 단상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가 저지른 일들에 대한 가치판단은 반영하지 않았을 때 말이다.
 닿을 수 있는 김한의 주변 사람들이 들려준 기억의 조각들을 모아보면 김한은 꽤나 유식하고 유복한 인물이었다. 김한의 부모 본인들은 각각 비교적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스스로의 운과 노력으로 가난의 대물림을 끊어냈다.
 부친의 경우 정권이 변할 때마다 본인의 스탠스를 잘 옮겨 타며 나라의 이쁨을 받았기에 삶이 호되지는 않았다. 꽤나 건실한 중견기업에서 장기근속을 하며 큰 탈 없이 제 가족 정도는 먹여 살렸다는 것 같다.
 모친의 경우 그보다는 조금 어려운 삶을 지나왔지만, 없는 사정에 빚내서 얻은 땅값이 일생의 모든 운을 타고 제법 오른 덕에 가난의 굴레를 끊어낸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그녀에게 자식을 선택할 수 있는 운이 조금 더 필요했다고 생각하는가? 혹은 그녀에게도 책임을 물을 어떤 인과관계가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가?
 분명 김한의 편집증적인 강박과 집념은 모친의 영향이 있다. 부족함 없이 자란 그에게 어째서 악착같은 소유욕이 남아있었을까. 그녀는 무언가를 얻기로 한 목표에 대해 실패하는 법이 없었고 손에 쥔 것을 놓치는 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그녀가 가져서 안 되는 것을 목표로 삼은 적은 없었다. 아, 거의 없었다, 라는 표현이 보다 적절하겠다. 길에서 앞서가던 누군가가 물건을 흘리는 것을 보면 그것은 그녀의 것이었다. 필요하지도 않은 의약품이나 쓸 줄도 모르는 전자제품을 주워오고는, 누군가 주인을 찾아주어야지 않겠느냐 물으면 비웃으며 욕으로 응수했다. 물건을 흘린 사람의 칠칠맞음에 책임이 있다, 라는 것이 그녀의 지론이었다.
 그래 물론 그녀도 ‘점유이탈물횡령죄’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여덟 자의 한자가 각각 무슨 뜻이고 그것을 조합한 단어가 어떤 뜻이 되는지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법리적 해석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한자로 쓸 줄은 몰랐지만. 그래서, 알고도 행하는 위법의 유전자를 김한이 물려받았다고 해석하기에는 너무 비약의 폭이 넓지 않겠는가? 바늘 도둑에 소도둑이 되긴 하지만, 그 소도둑이 사람도 죽이곤 했다면 애초에 속담이 좀 더 과격한 언어로 쓰였을 것이다.
 부친과 부대낀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일이 제법 바빴고, 몸에 밴 성실함을 노년까지 유지하기에 건강이 충분하지 않아 자주 앓아누웠다. 가정에 얼마나 애정이 있었는지는 감히 판단할 문제가 아니겠지만, 일을 하고 있지 않거나 앓아 누워있지 않을 때 가정에서의 역할을 분담함에 있어 본인의 가장으로써의 권위나 남성으로써의 권력 등을 내세우려고 하지는 않는 성격이었다.
 지금에서야 가정에서 성역할의 평등이 보다 보편화된 가치이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음을 감안하여 굳이 덧대어 서술하였다.
 정해진 위치가 어디에 있건 최선을 다해 성실한, 그런 사람인 것이다. 사소한 삶의 특이점들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려고 하지 않았거나, 거기에 진심으로 마음을 쏟지 않았다고 그를 비난할 수 있겠는가? 김한이 부친에게 받은 사랑이 모자랐다고 보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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